[천지일보·천지TV=황금중 기자] 광복 8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의 후손 윤용 매헌윤봉길의사숭모회 회장을 만나 증언을 들어봤습니다.
(증언록)
윤봉길 의사님은 우리 아버님의 육촌 형님이고 그리고 이제 촌수로 따지면 재당숙 아저씨고 우리 아버님이 찢어지게 가난했기 때문에 윤 의사님 댁에서 아예 먹고 자고 한 거예요.
윤 의사님은 아주 천재로 태어나셨어요. 삼국지도 한 사흘 밤에 다 읽어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기억력이 엄청나고 총명하게 이를 데 없고 선생님한테서 배우면은 선생님을 곧 뛰어넘기 때문에 선생님을 다시 구해야 됐다.
우리 아버님이 아시는 것만 해도 그런 선생님들이 한 서너 분 그렇게 천재일 수가 없었대요. 보통학교 2학년 학생이 됐는데 강의 때마다 닛폰도 칼을 차고서 들어오는 거야. 누가요? 선생이.
그걸 보고서 여기서 내가 어떻게 공부를 하겠냐. 가방 싸 가지고 집으로 왔어요. 그때 자퇴한 거예요. 엄청나게 영특한 분이었지. 늘 얘기 듣고 아버님한테. 윤 의사님 참 대단한 분이셨다.
이제 중국 청도를 가는데 노자(路資)가 드는 거야. 차비가 없는 거야. 장롱에서 꼬깃꼬깃 뭉쳐놓은 그걸 이제 빼냈는데 그 차비가 월진회 회원들 입회비야.
의거하기 이틀 전에 송금을 한 거야. 월진회로 이러이러해서 돈을 내가 회비를 썼는데 이렇게 회비를 갚습니다. 우편으로 갚았어요.
이분은 자기가 터득한 학문과 행실이 항상 일치했어요.
그래서 마지막으로는 자기의 목숨을 던져서 자기의 배움을 결론적으로 보여준 거예요. 의거 자금을 만들기 위해서 피땀 흘려 리어카 운전기사도 했고 뭐 모자 공장에서 일도 했고 그 폭탄 던지기 전날 그 잔디밭에 가서 이제 봤거든요. 아이고 내가 좀 쉬었다가 내년에 결정하자 이런 식으로 얼마든지 자기의 계획을 변경하거나 취소할 수 있었다고 한 번도 그런 기색을 낸 적이 없었고 그럴 마음도 추호도 없었다.
이거야 초지일관 그걸 우리가 배워야 돼요.
홍구공원에서 행사가 아니라 만일에 다른 공원에서 비슷한 행사를 해도 윤 의사님은 뛰어들었을 거예요.
(취재: 황금중 기자, 촬영/편집: 황금중·김미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