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방글라데시 정치가 격변의 시기를 맞고 있다. 작년 8월, 아와미 연맹 정권이 학생운동의 물결 속에 붕괴한 이후 과도정부가 출범하고 각 정당이 재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학생운동에서 출발한 전국시민당(NCP)은 정당으로 변모해 전국 행진을 시작했지만 기존 여당의 근거지에서 유혈 충돌을 겪으며 정치적 시험대에 올랐다. 동시에 오랜 침묵 끝에 자마트이슬라미가 재등장해 대규모 집회를 열고 ‘헌법 개정’과 ‘비례대표제 도입’을 포함한 7대 요구를 내걸었다.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BNP)은 자마트와 거리를 두며 조기 선거에 집중하는 입장으로 야권 내 노선 차이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현지 매체 라이징bd 기자인 입눌 카얌 소니는 2026년 총선을 앞두고 누가 개혁의 주도권을 쥘 것인지 방글라데시 정치는 중대한 분기점에 서 있다고 짚었다.

 

입눌 카얌 소니(Ibnul Qayum Sony), Assistant News Editor & National Desk In-charge. risingbd.com, Bangladesh ⓒ천지일보
입눌 카얌 소니(Ibnul Qayum Sony), Assistant News Editor & National Desk In-charge. risingbd.com, Bangladesh ⓒ천지일보

과도정부 출범 1년, 방글라 정치 향배는

 

10년 침묵 깨고 존재감 과시하는 자마트

‘독립 반대·전범 정당’ 낙인 극복 미지수

대규모 집회 열어… 정계 재편 ‘신호탄’

 

주요 정당들 비례대표제 놓고 대립 격화

자마트·전국시민당 vs 민족주의당 구도

BNP, 맞불 대신 침묵… 다카 집회 계획

2024년 8월 아와미 연맹 정부가 무너지면서 방글라데시 정치에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차별 반대 학생운동이라는 대중적 참여 속에 정부가 붕괴된 이후 여러 정당들은 마치 자신들이 15년 동안 집권해온 강력한 정권을 무너뜨린 주역인 양 공을 내세웠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그들 정당과 지지자들은 그동안 어디에 있었는가? 왜 그들의 지도자들과 당원들은 기회주의적으로 색깔을 바꾸며 기존 권력의 우산 아래로 숨어들었는가? 왜 예전에는 정부 퇴진을 요구하는 저항을 하지 않았는가?

지난해 8월 5일 아와미 연맹 정부가 붕괴된 직후, 노벨상 수상자인 무함마드 유누스 박사를 수석 고문으로 하는 과도정부가 급히 출범했다. 그리고 6개월 뒤인 2025년 2월 28일, 차별 반대 학생운동과 전국시민위원회 출신 인사들이 중심이 돼 ‘전국시민당(National Citizen Party, NCP)’이라는 신당이 창당됐다.

창당 이후 NCP는 뚜렷한 정치 활동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당 지도부에 대한 부패 의혹이 제기됐다. 당의 공동 사무총장 중 한 명은 재정 비리로 인해 해임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NCP 중앙 지도부는 전국적인 행진을 시작했다. 이미 여러 지역에서 대중 집회를 열었으며 7월 항쟁 참여자들과 희생자 유족들을 방문하고 다양한 약속을 내걸며 지지층 확대에 나섰다.

이런 활동 중 지난 16일, 아와미 연맹의 본거지로 알려진 고팔간지 지역에서 강한 저항에 직면했다.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의 아버지인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의 고향이자 아와미 연맹의 상징적 지역인 이곳에서 NCP 집회를 앞두고 아와미 연맹 지지자들과 연계 단체들이 경찰차에 불을 지르고 사다르 우파질라의 행정관 차량을 공격한 뒤 불태웠다. 집회 직전에는 행사장 훼손과 사제 폭탄 투척도 있었다.

이 사건 후 고팔간지 전역에서 경찰과 가해자들 간 충돌이 이어졌다. NCP 지도부는 집회를 마치고 철수하려던 중 공격을 받았고 이후 합동 군경 병력이 투입돼 상황을 진압했다.

하시나 전 총리의 실각과 도주 이후 고팔간지에서는 군부 공격, 자원봉사당 중앙 간부 피살, 경찰서 및 경찰관 공격 등이 발생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인도로 도피하지 못한 아와미 연맹 간부 및 범죄자들이 고팔간지에 은신 중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이들을 처벌하면서도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지만 정부는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정부가 고팔간지 지역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알고도 NCP의 방문을 막지 않았다면 이는 국가 안보 차원의 중대한 실패다. 왜 정부는 이 같은 상황 발생을 허용했는가?

또 다른 질문도 제기됐다. 전국 행진을 한다던 NCP는 왜 하필 고팔간지를 선택했는가?

어쨌든 그날의 충돌로 총격에 5명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이 부상했다. 군의 도움으로 NCP 지도부는 현장에서 구조됐다. 다음 날 파리드푸르와 마닉간지에서는 오히려 NCP 행진에 대한 대중 지지가 폭발적으로 나타났다. 반면 지난 19일에는 콕스바자르에서 다시 저항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NCP는 7월 한 달간 행진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행보로 NCP가 과연 단독 과반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26년 4월~6월로 예고된 선거 시점까지 전국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내년 치러질 선거를 앞두고 방글라데시 이슬람 정당인 자마트이슬라미의 지지자 수천 명이 지난 19일(현지시간)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해 힘을 과시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내년 치러질 선거를 앞두고 방글라데시 이슬람 정당인 자마트이슬라미의 지지자 수천 명이 지난 19일(현지시간)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해 힘을 과시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자마트, 개혁·비례대표제 주장

한편 8월 5일 이후 방글라데시에서 한때 금지된 정당인 자마트이슬라미(Jamaat-e-Islami)가 풀뿌리 활동을 재개하며 주목받고 있다. 1971년 전쟁범죄로 지목됐던 이 정당은 오랜 기간 단독 정당으로는 활동하지 않았고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BNP)과 연합 형태로 정치에 참여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독자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조직 내부적으로는 상당히 정비된 모습이며 지난 19일 역사적인 경마장 광장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는 수십만 명이 모였다.

이 집회에서 자마트이슬라미의 최고 지도자인 샤피쿠르 라흐만 박사는 “모든 과거는 개혁돼야 한다. 개혁 없는 시도는 실패한 과거의 반복이다. 헌법은 다시 써야 하며 7월 대학살의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마트이슬라미는 이 집회를 통해 ▲2024년 8월 5일 및 기타 시기의 대학살 책임자 처벌 ▲국가 전반의 근본적 개혁 ▲역사적 7월 선언문과 강령의 완전한 이행 ▲7월 봉기로 인해 희생된 유가족과 부상자에 대한 보상 ▲비례대표제(PR)를 통한 총선 실시 ▲해외 거주 방글라데시인의 투표권 보장 ▲모든 정당과 후보에게 공정한 선거 환경 조성 등 총 7가지 요구를 제시했다. 연설 도중 라흐만 박사는 무대 위에서 갑자기 쓰러졌으나 이후 앉은 채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이 집회에는 NCP, 이슬라미 안돌란 방글라데시, 공권운동위원회(고노 오디카르 파리샤드) 등이 초청돼 참석했다. 이들 정당은 PR 방식 선거 등 자마트이슬라미의 주요 요구에 공감한 정당들이다. 그러나 오랜 동맹인 BNP는 집회에 초대받지 못했다. 아마르 방글라데시당(AB당), 좌파 정당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방글라데시 정치에 새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일까.

초대 손님인 이슬라미 안돌란 방글라데시의 아타우르 라흐만 가지 사무총장은 “우리는 모두 7가지 요구를 지지하며 근본 개혁 없는 선거로는 아무 변화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우리는 새 정치 질서와 공정한 선거를 원하며 이번 집회를 통해 정치적 분열 구도가 명확해졌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결국, 정권 교체 이후 스스로를 차기 정부로 간주하며 조기 선거를 추진하고 있는 BNP를 겨냥한 것이다. BNP는 최근 금품갈취, 살인, 성폭행 등 각종 범죄에 연루됐으며 다른 정당들은 그들의 공격적인 태도 때문에 대중의 지지를 잃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6월 13일 BNP 실질 당수 타리크 라흐만은 런던에서 무함마드 유누스 수석고문과 회동하면서 개혁에 동참할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실제로 당의 주된 초점은 개혁보다는 신속한 선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과도정부에게 개혁 없는 선거를 압박하고 있다. 이에 반해 자마트이슬라미와 NCP는 개혁 없는 선거는 없다고 맞서고 있다.

정치 분석가 자헤드 우르 라흐만 박사는 “모든 정당이 개혁을 말하지만 자마트이슬라미와 NCP는 비례대표제, 선거 환경, 공정성 등에서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마트이슬라미는 원래 이슬람 정당 중심의 야권 연합을 추구해왔고 이번에 과거 갈등 관계였던 카우미 마드라사 계열과도 손잡고 NCP 같은 신생 정당도 함께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자마트이슬라미는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파키스탄과 협력해 학살에 가담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앞서 아와미 연맹 정권은 방글라데시의 국제전범재판소를 통해 자마트 지도부를 재판에 넘겼고 일부는 처형되기도 했다.

정치 분석가 마수드 카말 기자는 최근 도이체벨레(DW)와의 인터뷰에서 “자마트이슬라미는 1971년 전쟁 책임을 인정한 적이 없다. 당시 이들은 단순한 동조 세력이 아니라 직접 동참했다. 동파키스탄 정부의 산업부 장관, 상무부 장관, 교육부 장관 모두 자마트이슬라미 출신이었다. 자마트이슬라미는 그 정권의 일부였고 따라서 동파키스탄이 저지른 모든 범죄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입장을 견지한 자마트이슬라미 산하 학생조직 이슬라미 차트라 시비르의 전 위원장이었던 무지부르 라흐만 몬주는 2019년 제명됐고 이듬해 그는 ‘아마르 방글라데시당(AB당)’을 창당했다. 현재 AB당도 비례대표제를 지지하지만 자마트이슬라미 집회에는 초청받지 못했다.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BNP) 활동가들이 5월 28일 다카의 거리에 모여 12월 총선을 요구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BNP) 활동가들이 5월 28일 다카의 거리에 모여 12월 총선을 요구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최대 정당 BNP는 조기 선거 촉구

비례대표제(Proportional Representation)란 무엇인가. 기존 소선거구 단순다수제(FPTP, First-Past-The-Post)는 소수 득표로도 다수 의석을 차지할 수 있는 구조다. 반면 비례대표제는 정당의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대표성과 공정성이 더 높다. 현재 전 세계 170개 민주주의 국가 중 91개국이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BNP는 기존의 FPTP 방식을 고수하며 비례대표제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과거 24년간의 선거 동맹 파트너였던 자마트로부터도 초청받지 못했다. BNP 상임위원 살라후딘 아흐메드는 “비례대표제와 지방선거를 주장하는 자들은 선거를 지연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비판했다.

분석가들은 이번 자마트의 집회를 통해 자마트이슬라미가 새로운 연대 구성을 위한 정치력을 과시했다고 본다. 그들의 연설 자체가 사실상 선거 유세였다. 동시에 7월 봉기 희생자들을 기리는 내용도 강조됐다.

1980년대 이후 자마트가 이처럼 대규모 집회를 열고 대규모 인파를 모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분석가들은 이것이 정치계에 큰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정치 구도가 요동치는 가운데 BNP가 단독으로 선거에 나설지 아니면 동맹과 함께 출마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BNP는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크고 인기 있는 정당이다. 다만 BNP는 자마트이슬라미의 집회에 맞불을 놓지 않기로 했다. 자칫 스스로의 약점을 드러내고 상대를 부각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BNP는 현재 7월~8월 대중봉기 기념행사를 진행 중이며 오는 8월 6일 다카에서 가장 큰 승리 행진을 계획 중이다. 이는 최근 자마트이슬라미나 이슬라미 안돌란의 집회를 능가하는 규모로 준비되고 있으며 정부에 대한 압박 수단이 될 전망이다.

결론적으로 하시나 정권하에서 10년 넘게 억눌렸던 자마트이슬라미의 복귀는 방글라데시 정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과거 독립 반대 전력이라는 짐을 짊어진 이 정당의 재등장은 선거판의 분열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제 이 새로운 정치적 바람이 방글라데시를 어디로 이끌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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