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때문만은 아닌 다른 요인들 주목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요즘 ‘뮷즈(뮤지엄+굿즈)’가 연일 화제의 품절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덕에 호랑이까지 뮷즈가 완판의 연속이고, 예능 ‘월드 오브 스우파’에서 범접이 만든 ‘몽경’이라는 뮤직비디오로 인해 흑립 갓 볼펜도 품절이다. 18도 이하의 액체를 담으면 선비의 얼굴이 붉어지는 유리잔은 계속 품절이고, 소스가 들어가면 표정이 짙어지는 기와 무늬 그릇도 새롭게 품절 행렬에 동참했다. 석굴암을 활용한 스탠드 조명도 눈길을 끌고 있다. 무엇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한 호랑이 더피(Duffy) 굿즈는 넷플릭스조차 예상하지 못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의 호랑이-까치 굿즈가 생각지 못하게 동이 났다. 물론 넷플릭스도 부랴부랴 굿즈 제작에 들어가야 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의 호랑이-까치 굿즈 인기는 여전히 뜨겁다.
사실 국립중앙박물관의 굿즈 이름인 ‘뮷즈’는 특히 K-Pop과 인연이 많다. 우선 2022년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이 반가사유상 굿즈를 구입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RM은 반가사유상 굿즈만 산 게 아니라 반가사유상이 실제 전시된 사유의 방을 방문했고, 이후 젊은 세대의 방문이 크게 늘었다. 당연히 이들 젊은 방문자들 안에 전 세계에서 한국을 찾은 K-Pop 팬들이 들어 있었다. 애초에 국보 83호인 반가사유상을 작게 축소한 미니어처가 이렇게 인기를 끌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K-Pop 스타 때문에 주목을 받게 됐을 뿐이다.
이렇게 유명인을 통해 전통에 기반을 둔 힙트레디션의 사례인 뮷즈를 구입하는 집단 심리는 헤일로(Halo Effect)효과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을 좋게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좋게 볼 수 있는데 그가 입는 옷, 음식 그리고 취향이나 구매한 물품까지도 좋게 보이는 법이다. 아이돌 팬덤 효과일 수도 있다. 특히 코어 팬덤 효과가 이에 해당한다. 그냥 좋아하는 수준의 라이트 팬이 아니라 매우 열렬하게 좋아할 경우 스타의 모든 것을 다 보유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코어 팬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찐팬이라는 자기 스스로 만족감을 추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드러내는 현시 효과나 공유 욕구가 작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특정 아이돌 그룹의 영향이 아니라도 뮷즈의 인기는 계속됐다. 그 예로 국립 중앙박물관의 또 다른 뮷즈인 백제금동대향로 미니어처, 취객 선비 3인방 변색 잔 세트, 덕수궁의 오얏꽃 오일 램프 세트 등이 있다. 취객 선비 3인방 변색 잔 세트는 인기가 더 뜨거워 리뉴얼 버전도 제작됐고, 2025년 3D프린팅 ‘석굴암 조명’도 품귀현상을 빚었다. 2020년 고려청자 에어팟도 그 자체로 인기가 있었다. 이런 뮷즈들에는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는 포인트들이 분명하게 있다.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굿즈는 방탄 소년단 RM 이전에도 인기가 있었다. 그렇다면 뮷즈에 어떤 특징이 있는지 헤아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굿즈는 Z세대의 정체성이자, 분신이다. 자신의 가치관·세계관 그리고 문화적 의식까지 드러낼 수 있는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고, 그 시그니처는 SNS를 통해서 문화적 취향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 개별적인 것이 다시 집단화되는 특징을 갖는다. 다른 이들과 다른 무엇인가를 모색하지만 한편으로 차별화되는 시그니처로 같이 유유상종하는 특징을 형성하게 된다. 개별적인 특징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이런 취향의 공동체 형성, SNS를 통한 연대와 소통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개인 보다는 집단의 힘이 권위를 갖게 하는 법이다. 다만 아는 사람들이 아니고 모르는 사람끼리 느슨하게 시그니처 즉 굿즈를 통해 결집할수록 더 객관적 권위를 갖게 된다.
잘파세대는 실용적인 세대이면서 포미(For me)족의 특징을 보인다. 그들은 유행이나 트렌드를 따라가거나 애써 추구하지 않는다. 이는 X세대가 개인의 자유를 언급하며 정작 유행이나 트렌드에 민감했던 것과 다른 면모라고 할 수 있다. 남을 의식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긍정의 방향으로 물꼬를 터 보인다. 신박한 점이 있을수록 매력을 느낀다. 자신에게 좋은 점이 있다면 낡은 것이건 철 지난 고물이건 관계가 없다.
아울러 재미와 흥미 포인트가 있다면 더욱더 집중한다. SNS 공유의 중요한 동기이기 때문이다. 펀슈머의 특징을 갖고 있으면서 유희성이나 게이미피케이션을 생각할 수 있다.
이천 쌀겨를 활용해 구수한 향기가 나는 부뚜막 인센스 세트, 잔에 액체가 들어갈 때 색이 변하는 취객 선비 3인방 변색 잔 세트, 소스의 양에 따라 미소가 짙어지는 신라의 미소 소스볼 세트 등이 이에 해당한다. SNS 소통과 향유에는 이런 면이 더 부합할 수 있다.
뮷즈 소비를 힙트레디션이라고도 부르는 이런 현상은 외국인에게도 옮겨붙은 지 오래다. 국내 국외를 떠나 그 중심에는 10대·20대, 즉 잘파 세대가 있기 때문이다. 전통 자체는 계속 미래적으로 재해석되면서 진화하는 게 문화역사의 법칙이다. 전통을 트렌디 하게 만드는 우리에게 책임이 있을 뿐 고리타분하다고 여겨지기 쉬운 전통, 그 자체는 죄가 없다. 무엇보다 기존의 편견이나 선입견과 관계없이 그 자체로 가치와 의미를 찾는 일은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한국인이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닌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