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냉철해야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지금은 월드스타로 활약하고 있는 이병헌은 1992년 KBS 드라마 ‘내일은 사랑’에 고소영과 출연해 풋풋한 대학생의 로맨스를 선보이며 청춘스타가 됐다. 앞서 1987년에 시작해 1991년까지 계속된 KBS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서는 최재성 최수종 신애라 최수지 오현경 등과 같은 청춘스타들이 활약했다. 1990년에는 MBC ‘우리들의 천국’이 공전의 히트를 했는데 홍학표 장동건 한석규 최진실 염정아 등이 1994년까지 몇 기를 거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런 대학생들의 캠퍼스 드라마 코드는 시트콤으로도 이어졌다. MBC ‘남자 셋 여자 셋’은 1996년부터 1999년까지 크게 인기를 끌었다. 이 외에도 대학생들이 등장하는 드라마와 영화, 시트콤은 1990년대 내내 인기를 끌었다.
이렇게 대학생들의 캠퍼스 라이프를 다룬 드라마와 시트콤이 인기를 끈 것은 아무래도 대학생들에 대한 동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성장을 기록하던 그때는 대학교 졸업장이 있으면 취업과 고용이 보장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특히 입시교육의 고교와 다른 여유와 낭만이 있어 보였다. 더구나 진로가 소망스러우니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고교와 달리 대학교의 핵심 체제는 학점제다. 대학은 학과에 따라 진학하고 그것에 맞춰 특정 학점을 이수하면 졸업한다. 전공과목과 교양과목으로 나뉘고 전공은 필수 전공과 선택 전공과목으로 구분되며 이런 구분은 교양과목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교양과목보다는 전공과목을 더 많이 들어야 하며 필수 과목을 이수하지 않으면 졸업할 수 없었다. 또한 학점 평점이 높아야 취업과 대학원 진학 등에 유리한 면이 있었다.
나중에 이조차 한계가 있어 학과 제도에 기반을 둔 학점제를 학부 제도 기반으로 바꿨다. 이를 통해 계열 학과의 다양한 과목을 이수하게 했는데 나중에 연계전공이나 복수전공으로 바꾸게 했다. 심지어 다른 학교와 연계하거나 해외 대학과도 학점 교류를 할 수 있게 했다.
결국 이런 학점제 변용은 학생들의 미래 진로에 도움이 되도록 여러 과목을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조차도 학생들의 적성과 진로에 도움이 덜 되기 때문에 고민과 논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1980년대나 1990년대에 비해 학생들의 진로에 도움이 되도록 대학 체제가 바뀌었지만 학생들은 대학에 대한 선망이 더 이상 없다. 대학생들이 등장하는 드라마와 영화는 물론이고 시트콤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간혹 공간이나 캐릭터로 등장한다 해도 낭만과 로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취업 전쟁의 풍경만 스친다. 다만 메디컬 드라마에서 의과생들의 단편적인 모습은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와중에 시행된 고교 학점제에 대해 최근 교원 단체 등이 집단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이념적이거나 정치적인 정체성을 넘어서 지적했기 때문에 근본적인 모순이 있는 셈이다.
고교 학점제도 대학의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특정 학점을 이수하면 고교를 졸업할 수 있는 제도이다. 대학도 그렇지만 이 제도의 취지대로 과목을 다양하게 듣는다고 해서 적성이 계발되고 미래 진로에 도움이 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대학에서 이미 고교 학점제보다 더 다양한 시도를 해왔지만 그 성과를 높이 평가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미 70%가 넘는 고교 학생들이 수시 전형으로 진학하고 있다.
다양한 교과목을 이수하려면 현장에서 강사 인력이 확보돼야 한다. 하지만 이미 대학들도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현실은 매우 기형적이었다. 당연히 일선 현장의 개별 고등학교에서 시행하기에 버거울 수밖에 없으며 교사들의 과중한 부담과 스트레스가 불 보듯 빤할 수밖에 없다.
제도 고교 교육에서 이를 커버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사교육 시장이 팽창하는 데 불쏘시개 역할을 하게 된다. 사교육 시장을 제어하겠다는 교육 당국과 정부의 논리와 모순 관계에 있다. 사교육 시장이 팽창하게 된다면 가난한 집 자녀들은 더욱 어려움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학점을 이수하면 졸업을 할 수 있다지만, 평균 학점은 또 하나의 평가 기준이 되고 우열이 결정된다. 고교 학점을 아예 포기하고 검정고시를 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이러한 점은 공교육의 역할에 의문점을 다시 제기하는 것이다.
과거에 캠퍼스 라이프 드라마들이 인기 있었던 것은 사회적인 입지를 얻는 데 있어 대학생들의 상황이 부러웠던 대중심리의 반영 때문이다. 그런 무턱대고 하는 선망은 다시 생각할 수 없다. 이제 21세기에 학부모와 학생들이 바라는 것은 적성을 정확하게 발굴하고 이를 장래의 직업과 연결해 주는 작업이다. 이런 작업이 없어서 확실한 것 같은 의대 진학에 목을 매고 있는 셈이다. 그들의 고민은 무조건 학과목을 다양하게 이수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또 하나의 부담과 기준이 돼 학생과 학부모를 양극화 구조에 신음하게 한다.
고교 학점제 교육을 확보하는 것보다 적성과 진로 지도에 특화된 1대 1 교육 인력과 매칭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확충하는 것이 낫다. 생성형 AI 시대에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학점제에 낭만을 갖는 이들은 아마도 20세기에 대학을 다녔을 것이며 21세기의 교육 문화 감수성과는 먼 것 같다. 불과 얼마 전까지 코딩 교육이 미래 전도유망하다고 법석이던 20세기 마인드가 다시금 환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