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2023년 7월, 서울 서이초등학교의 젊은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은 대한민국 교육계에 깊은 충격을 안겼다.

교육부는 즉각적으로 ‘교권 회복·보호 강화 종합 방안’을 발표하며 민원 대응팀 설치, 교육청의 직접 개입 등을 골자로 한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대책들이 실제 학교 현장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 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팽배하다. 결국 2년여 만에 다시 제주도의 한 중학교 교사가 학부모의 민원을 견디다 못해 세상을 떠났다.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다.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는 절박하다. 학부모의 악성 민원은 여전히 교사의 개인 휴대전화로 걸려 오고, 새벽이나 심야를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교사에게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서 공포로 다가온다.

사소한 생활지도조차 아동학대나 언어폭력으로 확대 해석해 고소·고발의 빌미가 된다. 제주도 교사의 사례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흡연하는 학생’을 교사가 생활지도조차 마음 놓고 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 학교 현실이다.

민원 내용을 정리해 전달하는 역할에 머무르는 민원 대응팀의 실효성을 체감으로 느낄 수 없다. 갑자기 학교를 찾아와 소리치거나, 학사 일정에 극성스럽게 항의하는 행위, 근거 없는 아동학대 고발 등 악성 민원에 속수무책이다.

사실상 제도는 있으되, 기능은 없는 셈이다. 교육청에 설치된 교권보호위원회조차 할 수 있는 게 ‘서면 사과’ ‘특별 교육 이수’ 등의 조치가 전부다.

학교 현장을 더욱 어렵게 하는 건 아동학대처벌법이 교사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적용된다는 점이다. 무혐의 처분을 받아도 무고죄는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악의적인 고소를 막을 장치가 없다.

교원을 대상으로 한 아동학대 신고 중 95% 이상이 무혐의로 종결됐다는 통계에도 불구하고 교사는 수개월에 걸친 조사와 정신적 고통, 막대한 변호사 비용을 감내해야 한다. 법이 교사를 보호하기는커녕 가장 먼저 상처 입히고 있는 셈이다.

‘교사 소송 국가책임제’와 같은 실질적인 보호 장치의 도입이 시급하다. 공무 수행 중에 생긴 법적 분쟁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지는 것은 상식이다. 교사는 단순한 직장인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공공의 가치를 수행하는 전문가다. 교권이 무너지면 교육이 흔들리고, 교육이 무너지면 결국 국가의 미래가 무너진다는 점을 명심하고 국가가 나서서 보호해야 한다.

교사 개인의 연락처를 학생이나 학부모와 공유하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이 반드시 정착돼야 한다. 지금처럼 교사의 휴대전화가 민원의 1차 타깃이 되는 구조를 방치하는 한, 교사는 24시간 불안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모든 상담은 학교 전용 플랫폼을 통해 이뤄지도록 하고 사적 연락은 전면 금지해야 한다. 학교 출입에 대한 기준도 엄격히 마련돼 정당한 절차 없이 학교로 무단 침입하는 학부모에게는 법적제재를 가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의 인권만 강조되고 교권은 무시되는 시스템이 학교 붕괴를 초래했다. 교권은 교사의 권리를 넘어 ‘교육을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교사의 전문성과 판단이 존중돼야 하며 보호받아야 한다.

교사의 정당한 훈계와 교육적 지도를 ‘학대’라며 문제 삼는 문화가 고착된다면 교육은 방향을 잃게 된다. 무분별한 민원과 고발, 지나친 학부모 간섭 속에서 교사가 위축되고 떠나간다면 그 피해는 결국 우리 아이들이 입게 된다.

교육은 지식 전달 이상의 가치, 인성과 태도까지 함양하는 종합적인 과정임을 다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선생님이 신이 나야 학교 교육이 산다”는 말이 있다. 교사에게 강한 멘탈을 요구할 게 아니라, 강한 시스템으로 지켜주는 나라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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