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제 언론인

봄날이 돌아오니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며칠 전 충북 괴산지역을 돌아다니다 도로 위 ‘각연사’라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운전을 멈추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3월에 가볼 만한 각연사, 너도바람꽃 흐드러지게 피었어요”라고 쓰인 블로거 여행기에 끌려 곧바로 각연사로 향했다.

신라 애장왕 때 창건된 천년고찰이라는데, 한적하고 고즈넉한 속리산 산길을 따라 자동차로도 한참을 올라갔다.

각연사를 소개한 블로그 사진 속에선 너도바람꽃이 민들레처럼 땅 위에 널리듯 흰색 꽃을 피운 모습이었으나 절에 당도하니 이미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사찰의 어느 보살에게 물어보니 “눈 녹은 계곡 옆길 따라 1~2주 정도 꽃망울을 터트리다 어느덧 바람처럼 사라지는 꽃”이라고 말해준다.

작고 소담스러운 너도바람꽃 대신 노란색 계열의 꽃봉오리를 틔우는 야생 꽃나무를 만났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벌과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 이른 봄에 가장 빨리 피는 꽃인 노란 산수유, 생강나무, 개나리, 복수초 등이다.

햇빛을 잘 흡수해 꽃 온도를 높여주기도 하지만 눈에 잘 띄어 곤충을 매개로 꽃가루받이 번식에도 유리한 게 노란색이란다. 자연 속 색을 통해 에너지효율이나 생존 법칙의 섭리를 가늠해 본다.

대웅전 뒷마당에 핀 노란색 산수유 꽃망울을 한참 들여다보다 9~10세기 통일신라 시대에 조각된 석조 불상(보물 제433호)을 모신 비로전으로 들어섰다. 전각 한가운데의 비로자나 불상은 단아한 모습이었는데, 얼굴의 붉은 입술과 까만 눈썹이 아주 세련돼 보였다.

각연사가 ‘연못에서의 깨우침으로 창건된 절’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서인지, 절을 둘러보면서 여행이 주는 작은 깨우침을 얻었다. ‘여행과 지리의 힘’은 실로 대단한 듯하다.

국내에선 ‘지리’ 과목이 수능시험 대상에 끼지 못하고 홀대받는 처지이지만 미주, 유럽은 물론 가까운 중국, 일본에서조차 아주 중요시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초등생 때 고향 지리를 익힌 뒤 중학교에서 매년 지리학 기본 원리와 개념을 배운다. 고교에선 환경지리, 여행지리, 해양지리, 우주지리 등 지리 선택과목만 8, 9개 달한다.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를 잇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중국몽을 그냥 그리는 게 아니다.

중국과 한국으로부터 야만국가 취급을 받았던 일본 또한 포루투칼, 네덜란드와 교류하면서 지도국가로 성장해왔다. 일본인들은 여전히 지리 중시 전통을 이어온다. 위대한 미국 대통령들의 공통점은 뛰어난 지리적 감각이다.

1대 대통령 워싱턴은 측량사였고, 독립선언서 작성을 주도한 3대 제퍼슨 대통령은 지도를 그리는 집안 출신이다. 링컨 대통령도 측량사였고, 루즈벨트 대통령은 지구본 옆에서 사진 찍기를 좋아했다. 지도광이었던 케네디 대통령은 우주 진출을 위해 ‘존 F. 케네디 우주센터’를 만들었다.

‘지도력(地圖力)’이란 책을 펴낸 K 지리학 교수는 “지도를 읽을 줄 알면 부와 권력의 미래가 보인다. 세상을 바꾼 지리적 상상력이 지도에 담겨 있다”고 늘 강조한다. K 교수와 얘기를 나누다 아랍인들이 탁월한 지리 감각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데 감탄했다. 핵심 열쇠는 하루 다섯 번의 예배 ‘살라트(salat)’ 같다.

무슬림들은 해 뜨기 한 시간 전에 ‘파즈르’, 정오 시간의 두 번째 ‘주흐르’, 오후 3~4시경 ‘아스르’, 일몰 예배 ‘마그립’, 마지막 취침 전 ‘이샤’ 등 하루 5차례 예배드리며 신을 생각하고, 신의 뜻을 놓치지 않겠다고 마음 다짐을 한다.

신자 모두가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카바 신전 방향을 향해 절을 한다. 그들은 7세기부터 1400년 넘게 이어오는 ‘하루 다섯 번의 예배 의례’를 통해 하나로 뭉친다.

네비게이션에 과도히 의지해 살아가면 방향 감각, 길 찾기 능력을 점점 상실해 갈 수밖에 없다. 청소년들이 지구본을 돌려보며 관심 끄는 지역, 교류하고 싶은 나라를 꼽아보고, 세계 20억명이 사용한다는 ‘왓스앱’ 메신저 같은 SNS를 통해 펜팔 친구를 많이 사귀면 좋을 듯싶다.

그리고 여행 탐험에도 틈틈이 나서 책이 아닌 거리에서 ‘아날로그’ 경험을 풍부히 쌓아가면 어떨까. 속리산 노란 꽃들이 알려준 ‘여행 꿀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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