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제 언론인

올겨울 A형 독감이 유행하면서 코로나19(코비드) 악몽이 되살아났다. 독감 걸린 환자들이 코로나 환자와 유사하게 큰 고역을 치르며,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속출했다.

코로나와 독감 증상이 엇비슷하니 자연계에서 바이러스 변종이 계속 이뤄지는가 싶었다. 그러나 최근 대학생 기자들과 함께 의학 바이오 분야를 취재하면서 독감과 코로나 족보가 다르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됐다.

두 개체의 유전정보를 한눈에 알려주는 게놈(genome‧유전자와 염색체의 합성어) 배열에 큰 차이가 있었다. 바이러스 내부에서 mRNA를 만드는 방식에 따라 7종류로 나눠진다고 한다. 1971년 발표된 볼티모아의 바이러스 게놈 분류법에 따르면 코로나19는 소아마비, C형간염과 같은 ‘양성 단일 가닥 RNA 바이러스’다.

반면 독감과 에볼라는 ‘음성 단일 가닥 RNA 바이러스’ 계열이다. 천연두, 감기, 장염, 홍반, 에이즈 바이러스도 단일 가닥 혹은 두 가닥 DNA 바이러스, 역전사 바이러스 등에 속한다. 독감, 감기, 코로나19가 인간에게 엇비슷한 증상을 일으키는 듯 하지만 이들의 생명 활동 설계도는 엄연히 다르고 제각각인 것이다.

이런 연구 결과를 토대로 신약 개발에 나서는 바이오 기업과 연구소, 대학, 병원이 몰려 있는 곳이 인천 송도국제도시다. 국내 ‘빅3’ 바이오 기업으로 불리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SK바이오사이언스가 송도에 집결했다.

삼성바이오와 셀트리온이 세계 최대 바이오 생산공장을 가동 중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올해 말 글로벌 연구 및 공정개발센터를 완공하면 판교 본사를 이전할 예정이고, 롯데바이오로직스가 항체의약품 공장 3개를 짓고 있다.

해외 유명 바이오기업들도 송도에 진출하고 있다. 벨기에 얀센 합작사인 한국 얀센의 송도 공장에서 백신과 항암제를 생산하고 있다. 독일의 머크사가 세포배양배지를 공급하고 있고, 생명과학기업인 싸토리우스가 투자를 결정했다. 이들처럼 바이오 소재·부품·장비 기업인 아미코젠, 동아에스티도 가세했다.

또 대형병원도 송도 주변에 속속 들어서고 있다. 2026년 개원할 연세대 송도세브란스병원에 이어 서울대병원, 아산병원이 배곧신도시와 청라국제도시에서 800~900병상 규모로 건축 중이다.

이처럼 국내 최대의 산‧학‧연‧병(병원) 단지가 조성되고 있으니 ‘바이오’가 송도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1000여개 이상의 바이오테크 기업을 비롯한 명문 대학, 연구소, 병원이 들어서 세계 최고 바이오 클러스터를 자랑하는 미국 보스턴을 꿈꾸게 됐다.

필자는 기자, PD를 꿈꾸는 대학생 3명에게 현장 실습 위주로 다양한 취재 경험을 쌓게 하는 ‘멘토’인 덕분에 얼마 전 송도의 연세대 국제캠퍼스 내 ‘K-바이오랩 허브사업단’을 동행 취재할 수 있었다.

정부 지원으로 설립된 이 기관은 바이오 R&D 구축, 바이오 전문가 멘토링, 창업 특화 지원 프로그램 개발을 주도하면서 글로벌 의약 바이오 스타트업 기업체를 육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유타대 아시아캠퍼스 설립 총장을 지냈던 K-바이오랩 허브사업단장 A씨가 대학생 기자 2명과 2시간 넘게 인터뷰를 하면서 한국 바이오 현주소를 상세히 설명해 줬다.

A 단장은 “송도에 이미 ‘신약 파이프라인’이 구축돼 있기에 바이오기업 10개 정도만 잘 키우면 마치 ‘삼성전자’ 같은 세계 굴지의 글로벌기업 10개를 탄생시키는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에 바이오 기업이 약 2만 8000개에 달하는데, 그중 한국이 10% 정도인 2500~3000개 차지한다고 해요. 그런데 한국의 바이오 관련 매출은 전 세계 2% 수준에 불과해요. 세계 시장 25%를 점유한 반도체 분야처럼 한국 바이오산업도 비약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지요. 골프, 양궁, K팝처럼 세계가 주목할 겁니다”라고 강조했다.

A 단장이 바이오업계 실상과 미래에 대한 장황한 설명에 이어 “송도 바이오 생산기지가 확대되고 있어 인력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다. 바이오 관련 전공 지식이나 경험이 있으면 100%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다”고 전하자 대학생 기자들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대학생 여기자가 “K-바이오랩 허브사업단이 취업 연계 인턴십 프로그램을 강화하면 좋겠다”고 건의하자 A 단장이 ‘좋은 의견’이라며 수첩에 메모했다.

대학생 기자들이 열심히 바이오 분야를 취재하는 모습을 보니 든든했다. 12.3 계엄 사태 이후 더 심각해진 정국 혼란에다 트럼프 2.0의 미국 우선주의까지 가중되는 내우외환 시대를 돌파할 성장동력이 바이오 분야에서 싹틀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송도국제도시는 2000년대 중반 시스코와 함께 세계 최초로 ‘유비쿼터스 도시’ 조성을 선도했으나 스마트도시 성공 모델로 진전시키지 못한 채 쓴맛을 본 적이 있었다. 이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바이오 강국’을 향한 깃발을 힘차게, 지속적으로 흔들어주는 발원지가 되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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