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 포토존에서 바라본 화순적벽. 날씨·계절·시간에 따라 그 느낌이 매우 다르다고 한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지난해 10월 23일… 30년만에 ‘개방’
화순적벽 “일부 물에 수몰됐지만, 여전히 경관 빼어나”
망향정 15개 마을 유래비 “광주시민과 화순군민 식수를 위해 고향 떠나”

[천지일보=이진욱 기자] “무등산고송하재(無等山高松下在). 무등산이 높다더니 소나무가지 아래에 있고 적벽강심사상유(赤壁江深沙上流). 적벽강이 깊다더니 모래 위에 흐르더라”

위 시구는 방랑자 김삿갓으로 더 유명한 김병연이 화순적벽에 와서 지은 시(詩)다.

바쁜 일상 속에 자연의 품이 그토록 그리웠던 것일까. 화순의 천하제일경으로 유명한 화순적벽을 만나기 위해 지난 19일 소원풀이 하듯 모든 일정을 뒤로하고 훌쩍 버스에 오른다. 비록 적벽 앞에 허락한 20분이란 제한된 짧은 시간이 아쉬웠지만 맑은 초가을 날씨 망향정 앞에서 김삿갓이 애찬한 적벽의 위상과 그 신비로움을 막상 마주하니 과연 ‘천하제일경’이다.

백아산에서 발원한 창랑천과 무등산의 동쪽에서 발원한 영신천이 합류된 동복천(지금은 동복댐)에 자리한 화순적벽. 지난 30년간 광주시민에게 식수를 제공하기 위해 상수도보호 차원에서 출입이 엄격히 제한돼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마치 상상 속 명승지나 성지와도 같았던 이곳.

하지만 적벽의 아름다움은 더는 감추어지지 못하고 작년 10월 23부터 적벽을 그리워하던 이들과 광주시와 화순군의 상생발전을 위해 개방이 이뤄져 매주 수, 토, 일 3차례에 거쳐 전국에서 선택받은(사전예약제) 하루 300여명의 관광객들에게 그 아름다움을 자랑함은 물론 ‘특별하고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적벽을 휘감고 흐르던 동복천(달천, 적벽강)에 위치한 화순적벽. 이곳은 화순에서 대표되는 절경이자 방랑시인 김삿갓의 낙사(落死)지로도 유명한 곳으로 투어버스 탐방 2시간으로는 아쉬움이 클 만큼 스토리텔링이 많다.

▲ 제2 포토존에서 바라본 화순적벽 ⓒ천지일보(뉴스천지)

◆예로부터 청정지역과 빼어난 경관으로 사랑받았던 화순적벽

양해숙 문화해설사의 설명에 의하면 화순적벽은 동복댐 상류서부터 약 7㎞ 구간에 형성된 절벽경관을 말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동복댐 상류에 있는 물염적벽, 창랑적벽, 보산적벽, 장항적벽(화순적벽) 등 4개 군으로 나뉘어 있다.

보통 화순적벽이라 하면 장항적벽(노루목 적벽이라고도 함. 노루가 자주 출몰, 지형 세가 노루 모양)을 말하며 이서면에 있어 이서적벽이라고도 한다. 특히 노루목은 높이 90m 직각으로 깎아지른 듯한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1519년 기묘사화 후 동복으로 유배 왔던 신재 최산두가 이곳을 보고 중국의 적벽보다 아름답다 하여 적벽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원래 이곳은 쏘가리, 메기, 가물치 등 담수어의 보고라 할 만큼 청정한 곳이어서 사진작가는 물론 낚시가, 미식가에게도 잘 알려진 곳이었다. 수몰되기 전까지 이 일대는 이서면 서리, 월산리 1구, 월평마을 2구, 장월마을 등 15개 마을이 터를 잡고 살아왔다. 그 장면을 잠시 상상해 보니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실로 평화롭고 풍요로워 보인다.

▲ 망향정 옆에 마련된 마을유래비. 관광객들이 망향가를 읽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광주시민과 화순읍민의 식수원 제공을 위해 ‘수몰’된 15개 마을과 ‘망향정’

이 청정한 강을 막아 광주시민과 화순읍의 식수난을 해결하기 시작한 것은 1968년도로 거슬러 올라가 이후 총 3차례의 대규모 공사가 진행된다. 화순군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동복댐 1차 공사는 1970년에 완공되었으나 수원의 부족으로 1981년 10월에 2차 공사가 국내 최초의 고무 튜브공법으로 이뤄져 담수능력을 360만톤에서 670만톤으로 올리게 된다.

하지만 계속된 식수난으로 인해 1984년 확장공사를 하게 되고 애초 댐 높이 19.5m에서 44.7m로 높이고 제방길이 188.1m에 담수능력 9200만톤를 저수하게 되었고 1일 취수량은 32만톤, 수몰면적은 6.6㎢에 이르게 된다.

이때 이 지역의 수몰로 주거지의 이거가 불가피해 15개 마을 587가구에 2654명의 인구가 이주하게 된다. 1984년 이들은 고향과 선산을 뒤로하고, 매년 4월 초파일이면 하던 적벽낙화놀이(적벽 위에서 짚에 불을 붙여 떨어뜨리는 불꽃놀이)와 추억도 함께 이곳에 수몰하고 떠나야 했다.

적벽을 바라보고 있는 망향정, 마을유래비엔 이러한 그들의 사연이 담겨있다.

망향(望鄕)정은 돌 석축으로 기반을 닦고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에 검정 기와를 올린 전형적인 누정의 형태지만 원래 이 터는 예전에 기우제와 풍년제 등 백성들의 안녕을 빌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소도(蘇塗)로서 신성한 지역이라니 절로 엄숙해지는 시간이다.

고향을 떠난 이들의 설움과 그리움은 망향정 오른편엔 15개 마을의 이력을 각각 기록해 놓은 마을유래비를 통해 알 수 있다. 전국에 흩어져 사는 이들은 해마다 선산에 제사를 지낼 때면 배를 타거나 허가된 별도의 산길을 통해 특별출입허가증을 들고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나그네 길가다 목마르면 화순군 이서면 적벽 절승 망향정 난간에 기대보라. 하늘과 땅이 손을 맞잡아 천고의 시름을 속삭이고 흙과 바위꽃과 사람이 한데 어울려 춤. 춤을 보리라”

마을유래비 뒤에 새겨진 문병란씨의 망향가의 글귀가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이 밖에도 화순적벽 투어엔 볼거리와 생동하는 이야기가 그야말로 풍성하다. 이곳을 찾은 많은 시인과 역사 이야기를 비롯해 소원을 성취해주는 거북섬, 운이 좋으면 멀리 백아산 하늘다리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적벽투어 버스 출발지인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마을에선 기다리는 동안 오래된 느티나무와 은행나무를 볼 수 있고 규암박물관에선 소중한 옛 지도(하백원의 만국전도와 동국지도)를 만날 수 있으며 유일한 ‘시골빵집’에선 누룩으로 하루 225개만 만든다는 특별한 발효빵도 맛볼 수 있다.

이번 주말,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특별히 갈 곳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특색 있는 스토리를 만날 수 있는 화순군 이서면 적벽투어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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