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일보=이승연 기자] 금융 당국이 개혁의 첫 번째 과제로 ‘금융회사의 검사·제재 개혁’을 들고 나왔다. 22일 오전 진행된 제2차 금융개혁회의를 통해 첫 번째 과제를 선정하고 개혁방안의 주요 내용에 합의했다.
민상기 금융개혁회의 의장과 서태종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은 회의를 마친 후 이날 오후 금융감독원에서 브리핑을 열고 개혁방안의 내용을 발표했다.
민상기 의장은 “먼저 감독 당국부터 솔선수범으로 변해야 한다는 각오로 금감원의 검사·제재 관행을 개혁하기로 했다”고 과제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개혁안은 최대한 빨리 시행에 나설 것”이라며 “향후 (기존처럼 규제 완화 추진 중 금융사고가 발생할 경우) 또 다른 규제가 생겨나지 않도록 스탠드스틸(stand-still) 조치를 도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검사·제재 관행의 선진화를 위한 노력을 추진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위기 및 대형 금융사고 발생 등으로 추진력이 약화되면서 금융현장에서는 검사·제재방식에 대한 불만과 개선의 필요성이 지속 제기돼 왔다.
이 같은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수용해 솔선수범의 의미로 금감원이 먼저 대대적인 개편에 나선다. 개편 방안은 크게 ▲검사 틀의 전환 ▲검사 방식·절차 쇄신 ▲제재 방식·절차 쇄신 ▲금융회사 권익보호 강화 ▲금융사 내부통제시스템 강화 ▲금감원 검사인력 역량 제고 ▲관계기관과의 협력 강화 등으로 나뉜다.
가장 큰 변화는 50여년간 지속되어온 검사 틀의 근본적인 전환이다. 이제는 현장검사보다 ‘상시감시’가 대폭 강화된다. ‘사전예방 금융감독시스템(FREIS)’ 보완 등을 통해 금융회사 경영실태에 대한 상시감시를 강화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상시감시보다 현장검사(종합·부문검사)에 치중함으로써 검사가 과중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점을 고려한 판단이다.
이에 따라 ‘현장검사’는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실시한다. 또한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건전성검사와 준법성검사를 분리해 진행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현장검사는 건전성과 준법성 검사로 명확히 구분해 진행한다. 특히 건전성 검사는 제재의 목적이 아닌 ‘컨설팅 방식’임을 명확히 해서 현장검사가 ‘제재 목적’이라는 인식을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이상징후 발견 시 기관에 대해 경영개선에 필요한 조치만 하고 개인에 대한 제재는 배제한다.
준법성검사는 중대하거나 반복적인 법규 위반 점검을 목적으로 실시해 사실확인 및 위법성 검토 방식으로 진행한다. 검사결과 위법성의 경중에 따라 기관 및 개인에 대해 제재조치를 내리지만 개인의 경우 금융위·금감원은 원칙적으로 임원만 직접 제재하고, 직원에 대해서는 금융사 자체적으로 조치하게끔 한다.
검사방식 및 절차의 쇄신 방안으로는 검사결과 입증을 위해 확인서·문답서를 징구하던 관행을 폐기하기로 했다. 대신 검사반장 명의의 ‘검사의견서’를 해당 금유회사에 교부하게 한다는 방침이다. 또 검사기간 중 검사권 오남용 사례가 존재한다는 비판이 상존하는 현실을 고려해 금융사와 의사소통 강화 차원에서 ▲검사간담회 개최 ▲검사애로호소 핫라인 유지 ▲사외이사 면담 확대 등의 방안을 마련했다.
그간 150일가량 소요되던 검사처리기간도 건전성검사는 60일(2개월) 이내, 준법성검사는 90일(3개월) 이내에 처리를 완료하는 것으로 단축한다. 또 검사결과 진행상황 통지제도 도입, 검사품질관리 강화, 검사원 면책 근거 마련 등의 방안들도 함께 추진한다.
제재방식 및 절차 쇄신을 위해서는 우선 제재의 중심축을 ‘개인·신분’에서 ‘기관·금전’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과징금 액수가 턱없이 낮은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해 과징금은 현 수준보다 월등히 많게 상향 조정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그간 금융당국이 직접 제재하던 것을 금융회사가 자체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자율성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금융회사의 권익보호도 강화한다. 그간 고압적인 검사태도, 일방적 검사진행 등에 대한 금융회사의 불만이 지속돼 왔다. 또한 검사원 복무수칙이나 권익보호담당역제도 등 검사권 오남용 방지 대책이 진행됐음에도 실효성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검사원 예절 관련 수칙들을 검사단계별로 체계적으로 통합·보완해 검사단계별 수칙을 철저히 숙지, 수검자의 권익을 보호할 계획이다. 검사 시 권익보호담당역 제도에 대한 안내도 의무화해 실효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내부통제체제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재의 중심이 기관 및 금전제재로 바뀌고 금융사의 자율을 확대할 경우 금융사고와 금융부실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금융사 내부통제시스템은 더 강화한다. 내부감사협의체 등을 통해 금융사의 자율시정기능을 강화하고 금감원 ‘검사 아카데미’ 등을 금융사에 개방해 자체 내부통제기능을 강화할 수 있게 돕는다. 금융사의 자체조치 확대 등 책임성 강화를 위해 원칙적으로 개별여신 및 금융사고에 대한 점검·조치 등도 위임한다. 단 예외적으로 조직적 불법여신, 배임·횡령, 중대한 금융소비자 권익 침해 등의 경우에는 금감원이 직접 검사한다.
금감원 검사 인력에 대해서도 역량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했다. 그간 잦은 순환보직(2~3년), 리스크분야별 전문검사역제도 미운영 등으로 검사역의 전문성이 부족한 현실이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금감원 조직의 구성 및 인력 운영 방안을 전면 개편하는 등 검사인력 전문화를 위한 인프라를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금감원 서태종 수석부원장은 “내년부터 개혁안이 본격 추진된다는 점을 고려해 금감원의 조직개편도 그 전엔 마무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마지막으로 관계기관과의 협력 강화를 위한 방안도 마련했다. 현재는 금감원이 관계기관의 요구에 따라 불가피하게 금융사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거나 검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금융사에서는 이를 금감원의 과중한 자료요구나 검사로 인식하고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감독당국의 자료 중복요구를 최소화하고 금감원이 고유의 ‘감독·검사 목적 외’에는 금융사에게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서 수석부원장은 “이번 개혁방안은 선진국사례를 벤치마킹하되 우리나라 현실적 특성을 고려해 ‘실천가능한 방안’으로 강구했다”며 “비합리적 방식과 절차는 과감히 쇄신해 금융사의 부담을 줄이고 중대·반복적 법규 위반 금융사는 엄중 제재해 금융시장에서 ‘신상필벌의 원칙’을 확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각 방안의 세부적인 내용은 추진일정에 따라 진행될 것”이라며 “개혁 방안이 금융현장에서 뿌리내리고 정착하기 위해 금융사의 자체적인 내부통제강화시스템 마련과 협조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