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내 생산기술연구소 지하에서 근무 중이던 협력업체 직원 김모 씨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숨진 김 씨는 이날 동일한 장소에서 발생한 소방설비 오작동으로 현장을 점검하기 위해 나갔던 사내 소방대원들에 의해 발견됐다. 아주대학교병원에 마련된 김 씨의 영안실의 모습. 삼성전자가 보낸 조화 뒤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입구에 앉아 있는 유가족의 모습이 보인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삼성 설명 못 믿겠다” 진입시간·발견지점 ‘엇박자’ 주장

[천지일보=이승연 기자] 27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내 생산기술연구소에서 발생한 협력업체(F사) 직원 김모 씨의 사망사고와 관련해 유가족이 ‘삼성 측이 사건경위를 조작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삼성전자의 브리핑에 따르면, 이날 오전 5시 9분경 삼성전자 생산기술연구소 지하 변전실에서 소방설비가 오작동을 일으켜 소화용 이산화탄소가 살포됐다. 이 변전실에는 45㎏들이 액화 이산화탄소 탱크 50개가 연결돼 있으며, 오작동으로 탱크 내 가스가 살포된 것으로 파악됐다.

변전실에서 소화용 가스가 살포된 것으로 확인한 삼성전자 사내소방대는 자동신고가 접수된 직후인 오전 5시 11분경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지하실로 진입하는 문이 잠겨 있어 30여 분간 문을 열 방법을 찾다가 40분경에 문을 부수고 사고 현장으로 진입했다.

김 씨가 발견된 시점은 진입 후 30분가량이 더 흐른 6시 15분이다. 화재가 난 것으로 추정됐던 변전실의 상황을 점검하고 나오던 소방대원은 F사 현장소장 안모 씨로부터 내부에 야간 당직자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다시 현장에 진입했고 6분 후 변전실에서 20~30m 떨어진 스팀밸브 근처에서 김 씨를 발견했다고 전했다. 또한 김 씨를 발견한 직후 근처 아주대병원 응급실로 후송했지만, 결국 오전 7시 8분경 사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례식장에서 기자와 만난 김 씨의 유가족 백모 씨는 삼성전자 측이 설명한 사건경위가 ‘말맞추기’일 가능성이 있다며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유가족은 ▲지하실 진입시간 ▲소방대원이 만났다는 F사 현장소장 ▲김 씨 발견위치 등과 관련해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진입 시각 5시 40분 아닐 수도”

백 씨는 “2분 만에 바로 현장에 도착할 정도로 준비된 삼성전자 소방대가 문을 부술 장비가 없어 30분을 지체했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면서 “40분에 문을 열고 진입했다고 했지만 이것도 아닌 것 같다”고 의문 부호를 달았다.

그는 고인의 동료인 홍모 씨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이 같은 의혹을 제기했다.

▲ 27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내 생산기술연구소에서 발생한 협력업체(F사) 직원 김모 씨 사망사고와 관련해 유가족이 ‘삼성 측이 사건경위를 조작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유가족 백모 씨가 의혹의 근거로 공개한 F사 직원 홍모 씨가 보낸 문자. (사진출처: 김모 씨 휴대폰 화면 캡쳐) ⓒ천지일보(뉴스천지)

백 씨가 공개한 고인의 휴대폰에는 홍 씨가 ‘김 대리 소방대에서 출입문 앞에 있으니 빨리 지하실 여세요’라고 보낸 메시지가 5시 41분에 도착한 것으로 돼 있다.

삼성 측은 40분경에 문을 부수고 진입했다고 했지만, 문자의 내용으로 미뤄 이때까지 홍 씨와 삼성전자 사내 소방대와 연락을 주고받았으며 사고 현장에도 들어가진 못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백 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듯 삼성전자가 현장인 지하실에 진입했다고 밝힌 40분 이후에도 홍 씨의 메시지는 이어졌다. 그는 고인에게 6시 14분까지 총 8개의 문자를 남겼다. ▲5시 42분 ‘빨리 급함’ ▲45분 ‘김 대리 빨리 지하실문 여세요’ ▲46분 ‘빨리 여세요’ ▲6시 3분 ‘김 대리 전화 요망’ ▲6시 3분 ‘지하실문 여세요’ ▲4분 ‘빨리 좀 문 여세요’ ▲13분 ‘김 대리 전화 요망’ ▲14분 ‘김 대리 빨리 좀 전화하세요 긴급’이라는 메시지가 연달아 남겨져 있었다.

문을 열라는 문자를 계속 보낸 것으로 봤을 때 6시 14분까지 내부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게 유가족의 주장이다. 유가족은 “삼성전자가 김 씨를 발견했다고 발표한 시각(6시 15분) 1분 전까지도 문이 열리지 않았던 것”이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삼성의 발표대로 문이 열렸다면 홍 씨가 이런 문자를 보낼 이유가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

◆다른 인물로 교체된 현장소장

이상한 점은 또 있다. 유가족이 알고 있던 현장소장과 삼성 측이 공개한 현장소장이 다른 인물이라는 것.

삼성전자 사내 소방대 측과 연락하며 김 씨에게 메시지를 보냈던 인물은 홍 씨였다. 유가족 역시 F사를 통해 확인한 결과, 홍 씨가 현장소장이라는 답을 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삼성 측이 공개한 소방대와 연락을 주고받은 F사 관계자는 안모 소장이었다. 김 씨를 다시 찾으러 들어간 데 대해서도 현장을 찾은 안 소장의 얘기를 듣고 지하실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백 씨는 “고인의 휴대폰을 확인한 이후 회사 측에 물었을 때 홍 씨가 현장소장이라고 들었다”고 설명하며 “하지만 삼성은 나중에 현장을 빠져나오면서 만난 F사의 현장소장은 ‘안모 씨’라고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고인 발견지점‧사망시간도 ‘오락가락’

고인이 발견된 지점도 유가족이 들었던 것과 달랐다. 백 씨는 “아침에는 김 씨가 조작판넬 근처에서 쓰러져 있었다고 했지만, 나중에는 조작판넬 근처가 아닌 스팀밸브가 있는 쪽에서 발견된 것으로 설명이 바뀌었다”고 했다.

사망시간도 삼성의 발표 시각과 진료 차트에 표기된 시각이 달랐다. 삼성전자는 7시 8분경 고인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병원의 진료 기록에 따르면 김 씨의 사망시각은 6시 30분 이전으로 기록돼 있던 것. 본지가 입수한 사망진단서에도 고인의 사망일시는 6시 30분 이전으로 적혀 있었다.

▲ 27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내 생산기술연구소에서 발생한 협력업체(F사) 직원 김모 씨 사망사고와 관련해 유가족이 ‘삼성 측이 사건경위를 조작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유가족 측은 삼성이 발표한 고인의 사망 시간(오전 7시 8분)과 병원 측의 진단 시간(6시 30분 이전)도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본지가 확보한 시체확인서에서도 김 씨의 사망시간은 일치하지 않았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다른 유가족은 이에 대해 “(삼성의 설명은) 핵심은 모두 빠져 있고 논리에도 안 맞는다”며 “삼성전자가 유족에게는 진실하게 다가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또 “아직 책임자의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다”며 “언론에 브리핑할 시간이 있었다면 이곳을 먼저 찾아와야 하는 게 맞지 않겠느냐”고 비난했다.

유가족 측은 “삼성이 사후(死後)에 말맞추기로 경위를 조작했을 수 있다”며 “더욱 정확한 사건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내일 경찰에 삼성전자와 F사를 대상으로 고발장을 접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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