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에 벗어난 판결
보통 노역 일당의 만 배
유전무죄 무전유죄논란
누구를 위한 법인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왜 이리도 시대를 역행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지구 어딘가에 있는 나라가 아닌,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국 사회에는 도덕적 해이(모럴헤저드)가 만연하다. 죄를 지었으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함에도 암암리에 암묵적으로 묵인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일이 누구에게나 허용되는 것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돈과 권력에 좌지우지되는 것이 현실이다. 말 그대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되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황제 노역논란이 일파만파다. 하루 노역의 일당이 5억 원이라고 하니 혀를 찰 노릇이다. 하루 노역 일당으로 계산하면 허 전 회장은 벌금 249억 원이라는 금액을 49일 만에 탕감 받게 되는 꼴이다.

허 전 회장은 지난 20101500억 원을 탈세하고 100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이에 광주고등법원은 허 전 회장에게 벌금 254억을 선고하면서 벌금을 내지 않고 노역을 할 경우 하루 일당을 5억 원으로 계산했다. 법원이 보통 노역 일당을 5만 원 선으로 정하는 것과 비교하면 1만 배나 큰 금액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15600원을 훔친 죄로 징역 3년을 받을 노숙자가 있는 반면 수백 억 원에 달하는 돈을 탈세하고 횡령하고서도 49일 노역만 살면 되는 어처구니가 없는 사회가 되고야 만 것이다.

대놓고 불법을 저지르고도 황송한 대접을 받는 꼴이다.

황제 노역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자 허 전 회장에게 일당 5억 원 노역판결을 내린 판사에 대한 비난 여론도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당 정책위원회는 일당 5억 원 노역은 FC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보다 일당이 10배나 높은 수준이라며 재판부의 판결을 질타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의 벌금형 기준은 총액벌금제로 같은 죄에 대해선 같은 벌금을 내리게 돼 있다. 개인의 재산, 경제활동 능력, 신체조건 들의 차이는 고려하지 않고 동종 범죄에 균일한 벌칙을 정한 것으로 지금처럼 형평성의 논란을 가져올 수 있다.

그 예로 삼성 특검 당시 이건희 회장에게 부관된 벌금의 노역환산액은 일당 11천만 원이었으며 시도상선 권혁 회장은 일당 3억 원, 손길승 전 SK 회장은 일당 1억 원, 두산의 박용성 전 회장은 일당 1천만 원이었다. 돈 많은 사람은 죄를 지어도 사법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는 점이다.

죄를 지었으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수억, 수백 억 원에 달하는 돈을 탈세하거나 횡령하고도 떵떵거리며 사는 이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많다. 정작 세금을 내라고 하면 먹고 죽을 돈도 없다고 발뺌을 하는 것이 또한 다반사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더 늦기 전에 바로잡아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모든 일에 있어 정정당당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상은 절대로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위에서 불릴 줄만 알고 누릴 줄만 알지, 다른 이들과 공존하는 법을 모른다면 그 나중은 불 보듯 훤하다.

온갖 범죄를 저지르면서 호화를 누리고 사는 것을 택하겠다면야 어쩔 수 없지만, 훗날 역사는 그 죄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죽어 이름을 남기더라도 영예로운 사람으로 기억돼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를 팔아넘긴 가룟 유다처럼 영원히 회자되길 바라는가.

진정 대한민국을 앞에서 이끄는 선두주자가 되고 싶다면 먼저 양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또한 법조계에서도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야 할 것이다. 이번 황제 노역과 관련해 법관의 재량권 범위와 지역법관(향판鄕判)제도가 도마 위에 오른 만큼 법조계 내에서도 자정의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내야 한다. 형평성에 어긋나는 법은 뜯어 고쳐야 한다.

관례도 판례도 상식선에서야 가능한 얘기다. 상식을 벗어난 법마저 법이 되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이치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당연히 이치를 벗어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번 일당 5억 황제 노역 문제로 다시금 불거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한국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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