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의사, 평화의 불씨 지펴
전향적 외교관계 고려돼야
이 시대 평화는 하늘의 뜻

 
이 시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얘기가 있다. 바로 동양평화론이요 평화의 노래. 과연 동양의 평화는 오려는가. 지난 326일 아침! 이 날은 안중근 의사가 서거한 지 104주기를 맞는 날이며, 동양의 평화를 위해 원흉 이등방문의 오른쪽 가슴에 흉탄을 안기고 흰 옷을 입고 마지막 순국의 형장으로 사라진 날이다. 또 옥중에서 집필을 시작한 동양평화론을 채 완성하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하는 안 의사의 안타까운 마음이 여운으로 남아 있는 날이기도 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 한 세기를 넘긴 지금, 한중일 3국은 동양평화론을 주창한 안 의사를 놓고 다시 갑론을박하고 있다. 발단은 지난해 7월 한중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안 의사 기념관 건립을 주문한 데서 시작된다. 그 후 중국에선 영웅의 칭호를 들을 만큼 안 의사의 위상이 높아진 반면, 일본에선 관반장관의 말을 빌리자면 안중근 기념관은 범죄자(테러리스트) 기념관이라며 극단적 평가로 맞받아쳤다.

얼마 전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또다시 만난 한중 정상은 안 의사 기념관 관련 내가 직접 지시했다는 시진핑 주석의 작심한 듯한 인사말로 시작해 한중 간의 밀월관계가 형성되고 있음을 조심스럽게 점치게 했다. 반면 북핵 저지를 위해 회동한 한미일 정상이 만난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한일 정상의 어색한 만남은 대조를 이뤘다. 이러한 분위기는 중일 간의 직접적인 날선 설전으로 이어졌다. 지난달 28일 독일 베를린에서 진행된 공개강연에서 시 주석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군국주의 침략전쟁으로 중국 군인과 민간인 3500여만 명이 죽거나 다치는 인간 참극이 벌어졌다, 특히 “30여만 명의 난징대학살은 전대미문의 사건이라며 계획된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 이에 일본은 즉각 주일 중국대사관 공사를 불러 항의했으며, 나아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중국 지도자의 제3국에서의 적절치 못한 발언에 대해 강도 높게 비난했다.

말하고자 함은 동북아의 중심에는 한중일이 있다. 이 한중일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가 장차 온 세계를 이끌어 갈 주역이라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 104년 전 영웅 안중근 의사는 동양3국의 평화를 주창했던 것이며 내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은 무엇보다 동양의 평화를 깨트린 죄를 진 죄인이기 때문이다는 말과 함께, 마지막 할 말을 묻는 말에 오직 동양의 평화를 바랄 뿐이다며 한결같은 유언을 남겼다.

안 의사의 바람과는 달리, 현재 동양3국은 과거사문제, 영토문제 등으로 불신과 감정의 골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 그런데다 북한과 미국의 각 입장에서 바라본 동양3국과의 미묘하게 얽힌 외교적 함수관계는 동양평화의 실타래를 풀지 못하는 충분한 이유가 돼 있다.

민족주의적 사고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각국의 현실, 그렇다 할지라도 동양평화라는 우주적 차원의 높은 이상 아래 동양3국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盡人事待天命)’고 했으니, 믿음이 평화라는 현실을 만들어 낸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북한은 안 의사가 태어나고 구국활동과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받아 종교적 차원의 평화활동을 해 온 동양평화의 산실이다. 미국은 안 의사가 원흉을 저격할 당시의 생생한 동영상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안 의사의 평화사상에 새삼 고무돼 있는 대표적 나라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일본인 스가와라 토시노부, 그는 1995년부터 구리하라시 사담회 즉, 역사모임을 조직해 회장직을 맡아 오며, 일본인을 상대로 안 의사 추모비 건립을 위한 모금활동과 안 의사 정신(동양평화) 계승을 위해 지속적인 활동을 해 온 인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과 일련의 반응과 분위기는 안 의사의 동양평화는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갖게 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는 안 의사가 주창한 동양평화는 일본의 과거사 인정이 우선이냐, 아니면 대화를 통해 인정하게 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기로에서 원칙과 현실을 냉정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역사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한 발만 물러설 수 있는 여유 즉, 전향적 자세를 우리가 먼저 갖는다면, 그 자체가 일본으로 하여금 과거사를 인정하게 하는 첩경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재앙과 환란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는 성서의 말씀처럼, 동양의 평화 나아가 인류의 평화는 이 시대 모두가 함께 부르고 마땅히 이루어질 노래였다. 외교적 관계보다 우위에 있는 게 바로 하늘의 뜻이다. 그 뜻은 이 시대 이 땅에 평화가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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