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자살률 낮은 사회복지비용
복잡한 제도·절차 단순화 시켜야
어려워도 함께 공존하며 살아야

 
최근 생활고와 신병 비관 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건이 연일 잇따르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민생을 챙겨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복지의 사각지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주위에 많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세 모녀가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으로 남긴 돈과 편지는 이 사건을 접한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다. 왜 이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에 있으면서도 정작 도움을 받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비단 이들 세 모녀뿐만은 아니다. 절차와 행정만을 앞세워 현실을 반영하지도 직시하지 못하는 안일함이 이런 참극을 만들어낸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세 모녀 사건에 이어 네 살배기 아들과 함께 동두천시 상패동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된 윤모 여인도 생활고에 못 이겨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씨의 옷에서 미안하다는 내용의 글이 적힌 세금고지서가 발견됐다. 모자의 안타까운 죽음이 전해진 다음날에는 경기도 광주 초월읍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이모 씨가 자신의 딸, 아들과 함께 목숨을 끊은 비보가 전해졌다. 지체장애 2급인 딸을 키우는 데 있어 어려움이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간한 ‘2012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표준 인구로 계산한 자살률이 29.1명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반면 OECD 회원국 중 GDP 대비 사회복지비용이 최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사람들은 흔히들 자살할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로 살아가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느끼는 빈곤과 어려움, 견딜 수 있는 한계는 분명 다르다. 내가 처해보지 않은 환경을 두고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 또한 섣부른 행동일 것이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 수 없고,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모든 이들에게 물질적 지원을 해주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다만 좀 더 현실적인 대처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지금 정해놓은 제도적 방침으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는 말과 다름없다. 제도가 정해놓은 자격 조건에 부합하지 못하면 하루 밥 한 끼 먹기 힘든 사람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최근 생활고로 인한 자살이 잇따르는 것과 관련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부족한 사회복지 예산과 불안정한 사회 안전망을 들었다.

특히 제도적인 문제와 관련해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제도가 복잡하면 결국 혜택을 받지 말라는 것과 같은 뜻이라며 사각지대에 있는 410만여 명의 빈곤층을 구제하기 위한 제도의 단순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 또한 국무회의를 통해 정부의 긴급 복지지원 제도에 대해 국민이 몰라서 이용하지 못한다면 사실상 없는 제도나 마찬가지라며, 있는 제도부터 제대로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접근도 용이하게 만들어 복지의 사각지대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고 언급할 정도다.

최근 들어 이 같은 소식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 전해졌다 뿐이지 사실상 복지의 사각지대에 살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세상이 흉흉하기에 주변 사람들 일에 함부로 관여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최소한 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한다.

지금 당장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선택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와의 사이에서 갈등을 느낄지도 모른다. 과연 어떤 것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좋은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정부만이 아닌 국민이 다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복지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많은 세상이다. 일부 젊은이들 중에는 자신들의 세금이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복지에 쓰이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기도 한다. 이는 현재가 과거 없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피와 땀을 흘려가며 일궈낸 어르신들이 있었다는 것을, 그분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존재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상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다. 공존이라는 것이 때로는 어렵고 힘들지만,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에 세상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내가 열 개의 사과를 살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한 개의 사과를 더 사는 것. 하나의 사과밖에 살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내가 가진 사과를 하나 준다면 상대방은 두 개의 사과, 두 배의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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