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이석기 의원이 모반혐의를 받고 있다. 정치적인 계산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중대한 사건임은 분명하다. 정치적 신념에 충실하려면 당당해야 하지만 변명에 급급한 것 같아서 궁색하게 보인다. 정치적 혐의에도 불구하고 당당했던 한 사람이 떠오른다. 우겸(于謙)은 1398년 지금의 절강성 항주(杭州)에서 태어났다. 항주에는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2개의 상투를 튼 소년 우겸이 난고춘(蘭古春)이라는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신동으로 소문난 우겸을 시험해보려고 “소대가리에 웃기게도 용의 뿔이 났구나!”라고 말을 걸었다. 우겸은 빙그레 웃으며 “개아가리에서 어찌 상아가 나오겠는가?”라고 대답했다. 우겸이 일부러 3개의 상투를 틀고 다니자 난고춘은 “상투 3개에 북을 걸었으면 좋겠구나!”라고 시비를 걸었다. 우겸은 곧바로 “중의 머리는 북채로 썼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난고춘은 우겸이 큰 인물로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겸은 몽고군과 싸웠던 송의 문천상(文天祥)을 존경했다. 그의 운명도 몽고군과의 투쟁에 따라 결정되었다.

24세에 진사가 된 그는 어사, 순안강서(巡按江西)를 거쳐 33세에 병부시랑이 되어 하남과 산서를 순무하면서 10여년을 보냈다. 황폐한 농지와 수리시설을 확충하여 경제적 고충을 해결해준 그를 사랑한 백성들은 송대의 명판관 포증(包拯)에 비유하여 우청천(于靑天)이라 불렀다. 1435년, 9세의 주기진(朱祁鎭)이 영종(英宗)으로 즉위하자 환관 왕진(王振)이 권력을 장악했다. 군주의 무능은 정치를 부패하게 만들었다. 뇌물이 공공연히 횡행하고 변방은 허술해졌다. 사회적 모순이 첨예화되자 명왕조는 급속히 기울었다. 중원의 정치적 혼란이 북방민족의 침입으로 연결되는 것은 중국사의 공식이다. 1450년, 북방으로 밀렸던 몽고족이 야선(也先)을 중심으로 세력을 규합하여 침공했다. 전쟁놀이를 즐기던 영종은 장난처럼 군대를 이끌고 나갔다가 지금의 하북(河北) 회래현(懷來縣)에 있던 토목보(土木堡)에서 50만 대군이 전멸하고 포로가 되고 말았다. ‘토목보의 변’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북송의 희종과 흠종이 여진족에게 끌려간 사건과 함께 중국인이 가장 치욕으로 여긴다.

명태조 주원장은 환관의 정치개입을 금지했다. 그러나 9세에 불과한 영종의 즉위로 그의 시중을 들었던 환관 왕진이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비판을 의식한 왕진은 공을 세워 여론을 잠재우려고 했지만 그것이 하필이면 전쟁이었던 것이 문제였다. 1441년 15만의 병력을 동원한 그는 운남에서 세력을 떨치던 사임발(思任發)을 토벌하러 갔다가 대패했다. 실패를 만회하려던 그는 영종에게 친정을 부추겼다. 영종을 인질로 확보한 야선이 재침했을 때 북경은 불만투성이의 10만 병력이 지키고 있었다. 시강(侍講) 서정(徐珵)이 남쪽으로 천도하자고 주장하자 우겸은 가볍게 움직였다가는 대세가 무너진다고 반대했다. 황태후는 우겸을 지지하는 주기옥(朱祁鈺)을 경종(景宗)으로 추대했다. 병권을 장악한 우겸은 야선에게 이용당한 영종의 음모를 방지하려고 ‘사직이 중요하고 군왕은 중요하지 않다(社稷爲重君爲輕)’는 구호를 걸고 항전을 시작했다. 영종은 한을 품었다.

우겸은 몽고군의 공격을 잘 방어했다. 적이 물러나자 우겸은 주기옥을 경종으로 옹립했지만, 명의 내분을 노린 야선이 영종을 돌려보냈다. 영종의 복위를 노리는 자들이 준동했다. 경종이 조금만 유능했다면 우겸의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경종은 태자였던 영종의 아들 주견심(朱見深)을 폐하고 자신의 아들 주견제(朱見濟)를 태자로 삼았다. 그러나 주견제가 죽자 영종의 복위운동이 촉발되었다. 1457년, 경종이 병환으로 일어나지 못하자, 서정, 장월(張軏), 석형(石亨), 환관 조길상(曹吉祥)이 영종의 복위를 선언하고 경종을 서궁에 유폐시켰다. 우겸은 외번을 끌어들여 모반을 일으켰다는 죄명으로 체포되었다. 극형이 논의되자 영종은 우겸의 공은 인정해야 한다고 애매하게 변호하다가 모른 척 승인했다. 1357년 정월 23일, 영종이 복위된 지 5일 만에 우겸은 모반죄를 받아 죽었다. 죽는 순간에도 우겸은 당당했다. 30년 동안 요직을 거친 우겸에게는 약간의 서책만 남아있었다. 이석기 정도가 따를 경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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