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주필)

 
국회는 이른바 천심(天心)이라 일컫는 민의(民意)의 전당이다. 국회의원의 활동과 국회의 입법 권한은 이 같은 민의를 충실히 반영하는 것이어야 함은 더 말할 것이 없다. 뿐만 아니라 국회는 국리민복과 민주 헌정 질서의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한다. 국회가 이런 일들을 해야만 하는 곳이기에 국회를 신성한 곳이라 말해도 듣기에 별로 거북하지가 않다. 선량(選良)은 엘리트(Elite)를 뜻한다. 국회의원을 선량이라 부르는 것은 그들이 그 같은 신성하고 특별한 일을 해낼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은 당연히 엘리트를 국회의원으로 뽑으려 하지 아무나를 국회의원으로 뽑으려 하지는 않는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 음모 및 선동 혐의를 접하면서 국민이 선량을 뽑아 애써 지키려하는 국회의 신성성이 어느 순간에 형편없이 망가지고 오염(汚染)돼버렸다는 심각한 우려를 갖는다. 국정원이 밝힌 그의 혐의 내용대로라면 그는 대한민국 국민을 섬기며 민주 헌정질서를 준수하고 동시에 파수(把守)해야 하는 신성한 소임을 맡을 선량의 자격이 없다. 그는 북한의 폭력 공산 혁명노선을 추종하고 김일성의 대를 잇는 북한 정권에 충성하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이 점에 대해 그의 패거리를 제외한 국민들 절대 다수는 아무 의심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국정원이 밝혀낸 혐의 내용에 대해 ‘날조’이며 국정원의 공안 탄압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가 속한 통합진보당과 그와 함께 국회에 진출한 같은 당의 의원들의 주장도 그것과 일치한다. 그렇지만 그가 주도하는 공산 혁명 단체인 이른바 RO(Revolutionary Organization) 회합에서의 발언 녹취는 그의 혐의 내용을 사실로 입증하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국민들이 전혀 그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이유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얼굴에 철판이라도 깐 듯 너무 뻔뻔하다. 사태가 이쯤 되면 그는 벌써 국민 앞에 의당 무릎을 꿇고 사죄함과 동시에 국회의원의 특권뿐 아니라 국회의원직을 버리고 당국의 조사에 성실히 임했어야 한다. 이 정도의 민주 국가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도리마저 외면한 것으로 보아 그의 눈에는 애초에 국회의원의 존재 근거인 국민은 없었다는 것이 자명해진다.

그는 국회를 ‘혁명의 최전선’이라 했다. ‘RO’모임에서는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때 그에 호응해 저유소, 통신시설, 철도, 지하철, 전기 철탑 등의 국가 기간 전략 시설을 파괴할 것을 조직원들에게 선동 내지 지시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조직원들로 하여금 북의 해괴한 충성 논리인 ‘한 자루 권총 사상’으로 무장할 것을 독려했다. ‘한 자루 권총 사상’의 권총은 믿거나 말거나 김일성이 6.25전쟁 중이던 1953년 최고 사령부 작전실에서 당시 11살이던 김정일에게 물려주었다는 그 권총이다. 김일성의 권총을 받은 그 김정일이 ‘RO’ 조직원들의 ‘수(首 우두머리)’다.

내란 음모 혐의에 맞서면서 이석기는 자신을 민주인사이며 평화주의자라고 했다. 가면이고 위장이다. 그가 ‘RO’를 주도하며 조직원들에게 한 말이 그것을 웅변하고도 남는다. 당국의 조사가 나오기 전에는 확증을 댈 수는 없지만 심증으로 이런 가면을 쓴 사람들이 도처에 많다. 이들의 은밀한 조직화, 지하 조직은 민주 질서와 사회 평화를 해치는 종양과 같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국정원과 같은 정보기관의 철폐를 부르짖지만 이들의 이 같은 정보기관 혐오증은 도리어 국정원과 같은 정보기관의 존재 이유를 부각시켜준다.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이 말해주듯이 자유 민주주의가 활짝 꽃을 피운 나라일수록 그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정보기관은 더 막강하다. 모든 조직이 그러하듯이 조직의 역기능적 측면은 개선해나가면 되면 것이지 양단간의 존폐를 쉽게 거론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RO’ 조직원들은 국회에 국회의원이나 혹은 그들 보좌관으로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혹여 그들 역시 이석기의 사상이나 행각과 궤를 같이하며 국회를 오염시키는 사람들이라면 국회는 더는 ‘신성한 곳’이 될 수 없다. 이들에 대한 종북(從北) 의심이 국민들로부터 가시지 않는 한 이들은 스스로 진퇴의 거취를 결정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최선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국회가 진정 신성한 민의의 전당이며 민주 헌정 질서의 파수꾼으로 바로 서기 위해 국회 차원의 자율적인 오염 정화 작업이 절박하며 시급하다.

국회가 모처럼 이석기의 체포 동의안 처리에 있어 한목소리를 낸 것은 국회가 자율 정화 내지 본연의 참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역동성과 자생력, 당파 지양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희망을 국민에게 안겨주었다. 민주당이 여당과 함께 민주 헌정 질서의 수호 의지를 엄정히 밝히고 의기투합한 것은 야당의 건강성을 과시한 것이 된다. 이 역시 국민에게 희망과 안도감을 안겨주었음이 분명하다.

이석기가 국회에 진출한 것은 야당끼리의 연대, 즉 정치 공학 덕택이다. 그것이 국회에 들어와 국회를 ‘공산 혁명의 교두보’ ‘혁명의 최전선’으로 활용하려 한 이석기와 ‘RO’의 집요하고 음험한 야심을 이루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야당은 이로 인해 국민 사이에 인 의심과 불신을 달라지게 할 기회로 이석기 사태를 순발력 있게 활용한 셈이 된다. ‘먹을 가까이 하면 검은 물이 든다(近墨者黑/근묵자흑)’ 했다. 이 말대로 민의가 아니거나 헌정질서가 요구하는 것이 아니면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이석기가 소속한 통합진보당은 연일 이석기의 변호에 바쁘다. 그들은 이석기의 혐의가 날조이며 당국의 공안 탄압이라고 줄기차게 외친다. 그럴수록 국민들로부터는 더욱 고립과 격리가 심화돼가는 것 같다. 그들에게는 스테레오타입의 이 같은 주장보다 이석기 사건에 대해 국민에게 진솔하게 해명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 최우선의 일이 아닌가.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의 추이는 국민이 예의 지켜볼 것이다. 하지만 정치 선량은 그런 혐의를 받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섬겨야 하는 국민에게 큰 죄를 짓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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