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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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여제’ 김연경이 2017년 출간한 자신의 에세이 ‘아직 끝이 아니다’는 처음 배구를 시작했던 순간부터 세계 최정상급 선수로 우뚝 서기까지의 성장 과정을 적어 내려간 자전적 이야기다. 김연경은 원래 마르고 왜소하며 키가 또래에 비해 작은 선수였다. 그래서 남보다 배구를 잘 하기 위해 수비를 기본으로 해 착실히 실력을 키웠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 다행히도 키가 자라줘 1m92, 72kg로 여자배구로서 뛰어난 외형적 조건과 막강한 공격력을 갖추게 됐지만 그의 경쟁력은 튼튼한 기본기에서 나올 수 있었다고 에세이에서 밝혔다.

그의 에세이가 떠오른 것은 김연경이 2020 도쿄올림픽에서 여자배구가 4강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돌아와 지난 6일 기자들과 가진 화상인터뷰에서 국가대표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하면서였다. 2005년 수원 한일전산여고 3학년 때 처음 태극마크를 단 이후 16년 만에 대표팀과 작별하기로 한 것이다. 그의 대표선수 은퇴는 도쿄올림픽이 끝난 직후부터 나돌았지만 이날 비로소 공식화했다.

그가 대표선수를 그만두기로 한 것은 대표팀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자유롭게 생활하며 선수생활을 이어 나가고 싶기 때문이다. 2020도쿄올림픽에서 도미니카, 일본과의 예선전과 터키와의 8강전에서 풀세트 접전까지 치르는 힘겨운 승부 끝에 극적인 승리를 거둘 때 그가 보여줬던 긍정적인 자세 등은 많은 국민들에게 감동과 기쁨을 줬다. “여기서 끝내기는 정말 아쉽다. 한번 끝까지 해보자”며 팀 주장으로 동료와 후배들을 다독이는 그의 모습은 믿음과 신뢰를 주기에 충분했다.

비록 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과 승부욕을 보여준 여자배구는 4위의 성적을 올린 것 자체만으로도 메달 못지않은 값진 성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여자배구의 분전은 세계 최강 양궁이 금메달 4개를 딴 것과 함께 도쿄올림픽에서 한국팀이 보여준 최고의 장면으로 평가받을만 했다.

올림픽 이후 여자배구의 중심적 인물인 김연경에게 큰 인기가 쏠릴 수밖에 없었다. 광고 모델 제의가 줄을 이었다. 2016년 리우올림픽 예선경기 한일전에서 자신의 공격이 실패한 뒤 혼잣말로 욕설하는 모습이 TV 중계에 그대로 잡히며 ‘식빵 언니’라는 별명을 얻게 된 그는 이미지를 살려 파리바게뜨와 SPC삼립 식빵 모델로 광고를 찍었다. 앞으로 김연경의 이름을 딴 식빵이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그는 치킨 프랜차이즈 BBQ의 모델로 6개월 출연 계약을 맺어 ‘치킨 언니’가 되기도 했다. 롯데제과 월드콘, 언더아머 등 모델로도 활동, TV 광고에서 자주 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의 광고 게런티는 1년 계약 기준 1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광고계는 추정하고 있다.

그의 열풍은 2012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의 김연아 모습을 보는 듯하다. 김연아는 당시 한국 스포츠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피겨 금메달을 차지해 국민적인 관심을 모으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김연경은 올림픽 메달을 따지 않았지만 김연아 못지않게 팬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가 이처럼 높은 인기를 누리는 것은 선수로서의 성실성과 솔직성이 바탕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최고의 스타이면서도 자만하거나 남에게 군림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해내며 동료 선수들에게 힘과 희망을 불어넣어 줬다. 귀국 공항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의 축전에 감사인사를 요구했던 것에 대해 “제가 감히 대통령님한테 뭐…”라고 어색해하다가 “감사하고 감사합니다”라고 솔직하게 대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연경은 이제 대표팀은 떠나지만 그의 선수생활마저 접지는 않는다. 수년 전 그의 에세이 제목처럼 ‘배구 선수 김연경’은 아직 끝이 아니다. 흥국생명을 떠난 김연경은 10월 중국 상하이 유베스트에서 뛰기 위해 출국할 예정이다. 김연경은 앞으로도 팬들과는 코트에서 계속 인연을 이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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