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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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올림픽에서 여자골프는 확실한 금메달 후보로 여겨졌다. 2연패를 노린 세계랭킹 3위 박인비를 비롯해 2위 고진영, 4위 김세영, 6위 김효주 등 참가국 가운데 가장 많은 4명이 출전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여자골프의 세계화를 이끈 박세리 감독이 골프 4인방을 지도해 도쿄올림픽 금·은·동을 모두 휩쓸 것으로 일부 언론은 예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노메달에 그치는 부진한 성적을 보였다. 고진영과 김세영이 공동 9위, 김효주가 공동 15위로 대회를 마쳤으며 믿었던 박인비는 공동 23위로 처졌다.

올림픽에서 양궁과 함께 세계 최강을 자부하던 여자골프로서는 크게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성적표였다.

도쿄올림픽 3주 후인 지난주 올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AIG여자오픈에서도 부진한 성적이 이어졌다. 김세영이 공동 13위에 올랐을 뿐 아무도 10위 이내에 들지조차 못했다. 한국여자골프는 올해 올림픽을 포함한 메이저 대회에서 단 1명의 우승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2010년 이후 11년 만의 일이다.

골프 성적은 항상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성적이 들락날락할 수 있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 2010년과는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는 점에서 우려할만하다. 다른 나라 선수들이 ‘한국 타도’를 부르짖으며 열심히 추격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 선수들이 오히려 뒷걸음질을 하기 때문이다.

세계여자골프는 이미 본격적인 경쟁시대에 들어간 느낌이다. 미국은 물론 동남아, 일본 등에서 유망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올해 도쿄올림픽과 KPMG챔피언십 우승자 미국의 넬리 코다는 일약 세계랭킹 1위에 올라섰다. 태국의 신예 패티 타와타나낏과 필리핀의 유카 사소는 ANA 인스피레이션과 US오픈에서 각각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계 호주인 이민지는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올랐다. 스웨덴의 안나 노르드크비스트는 AIG 여자오픈에서 챔피언에 등극했다.

올해 한국 선수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 우승은 3월 KIA 클래식 박인비, 5월 HSBC 월드 챔피언십 김효주, 7월 VOA 클래식 고진영이 차지했을 뿐이다. 2019년 같은 기간에 한국 선수들이 11승을 따낸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지난해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투어 일정이 예년처럼 진행되지 못했지만 메이저 대회 4개 대회 중 한국 선수들이 3승을 거뒀다.

골프 전문가들은 한국 여자골프가 올해 부진을 보인 이유로 코로나19로 인해 한국 선수들이 미국 진출을 꺼리고 한국 투어에 더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한국 투어 시장이 미국 투어에 못지않아 굳이 까다로운 코로나 방역문제를 감수하고 미국에 전념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미 한국여자골프가 더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보장을 받은 것이 아닌 만큼 앞으로 세계 정상을 향해 집중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우승을 내줄 수 있다. 올해 올림픽과 메이저 대회 무관의 성적이 이를 입증해 보여준다. 한국여자골프는 올해의 뼈아픈 성적을 교훈으로 삼아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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