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기 서강대 언론대학원 명예교수

not caption

산업화 역사는 1961년 박정희 대통령부터 시작했다. 그 당시 대부분 중소기업으로 성장을 했다. 그 과정에서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 위주로 성장 정책을 바꿨다. 정부가 그렇게 했다기보다, 중소기업이 발 벗고 나섰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 후 정권들은 앞 다투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성장시키겠다고 난리를 쳤다.

최근에도 소득주도성장, 포용적 성장, 균형성장 등 말을 늘어놓았다. 좌익정권들이 별 짓을 다해도 신자유주의, ‘지구촌’ 하에서 중소기업이 성장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만큼 세계의 벽은 높아 권력·돈을 뿌려 투자한다고 관료조직이 성공하지 못했다. 원칙(discipline)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구촌’의 벽에 비해 중소중견 기업의 경제관이 퍽 아마추어적이다. 전문직의 프로가 아니면 ‘지구촌’ 시장을 뚫을 수가 없다. 국가라고 다를 바가 없다. 현 정권은 1961년부터 쌓아올린 물적 토대조차 붕괴시키고 있다. 폭력의 힘으로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52시간 노동제를 강행했다. 원리 원칙 없이 밀어붙인 것이다. 한은 통계에 따르면 “지난 4년간 주 40시간 이상 양질의 일자리가 195만개 줄고, 그 대신 40시간 미만 단기 일자리만 213만개 늘었다”라고 했다. 자영업자는 줄도산이다.

청와대는 ‘지구촌’의 심각성을 감지하지 못한다. 국민은 청와대에 냉담하다. 이 정권 취임 4주기 특별연설을 기해 4월 26~30일 사이 YTN과 리얼미터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국정 수행 긍정 33%, 부정 62.6%라고 한다. 동아일보 사설(05.11)은 〈자성은 없고 자찬만 넘친 ‘J노믹스 4년’의 자평〉에서 “문 대통령은 5월 10일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소득주도 성장과 포용정책을 거론하면서 ‘코로나 위기가 흐름을 역류’시켰긴 했지만 ‘고용·사회 안전망 강화, 분배지표 개선 등 긍정적 성과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소주성 등이 ‘코로나를 이겨낸 큰 힘이 되고 있다’고도 했다”라고 했다. 현실은 참담하다. 이 정부 들어 중소중견기업의 줄도산은 물론이고, 대기업 혐오까지 들고 나와 자본가를 코너에 몰고 있다. 국민연금을 통해 연금 사회주의로 몰고 가고, 대선공약이라는 이유로 공기업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박차를 가했다. 노동생산성은 올라가지 않고, 식구만 불어났다. 원칙을 가진 수월성의 기업 문화는 평준화의 길을 걷고 있다.

잘 나가는 기업은 규제로 자유도가 점점 낮아진다. 상속세는 65%까지 부과하고, 3000억원 이상 이익을 내는 기업은 법인세를 27.5%까지 받는다. OECD국가 중 우리만 법인세를 올려 받는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자본가 혐오의 ‘징벌적 조세정책’을 편 것이다. 대기업 삼성이 20%의 국부를 담당한다. 별 이유 없이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의 목줄을 잡고, 청와대는 삼성 이재용 부회장에게 감옥살이를 시킨다.

매일경제신문 사설(05.11)은 “요사이 전 세계 사람들이 삼성 관련 뉴스에 연일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 유족이 낸 것보다 3배 이상 많은 삼성가의 12조원 상속세에 입이 떡 벌어졌는데 이번엔 삼성전자 법인세 부담에 또 한 번 놀라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세계 5만 7000여 기업의 법인세 유효세율(법인세÷세 차감 전 순익)을 조사한 결과 삼성전자의 법인세 부담률은 27.8%에 달했다… 사실 3년 전만 해도 구글의 법인세 유효세율(53.4%)은 삼성전자(24.9%)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그런데 2017년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후 상황이 확 바뀌었다. 미국을 비롯한 대다수 나라가 기업 유치를 위해 앞다투어 세금 깎아주기에 나선 반면 우리만 법인세를 올리는 역주행을 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 원인은 친중, 종북 정책에서 찾는다. 노동자 중심 사회는 자본가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촛불 혁명’이란 것이 퍽 ‘프롤레타리아’ 독재처럼 들린다. 지금까지 대기업 중심으로 성장해온 국내 기업을 ‘적폐’로 취급하고 칼을 휘두른다. 국가 폭력을 쓰지 못해 안달이 났다. 무원칙의 탐욕, 즉 권력과 돈에 대한 집착이 지나치다.

사실 마르크스 사회주의가 현실에 맞는 것도 아니다. 21세기의 삼성이나 대기업은 자본가가 득세해, 착취하는 분위기는 많은 부분에서 일치하지 않는다. 생산양식=생산력+생산관계(노동+자본)로 본 마르크스 관점에서 현대사회는 생산력(기술)이 크게 작동한다. 기술을 발전(R&D)시키기 위해서 엄청난 자본이 소요된다. 자본이 없으면 원천 기술의 개발은 그림의 떡이다.

칼 마르스크 자본주의 비관과는 달리, 막스 베버는 경제의 합리성, 효율성에 관심을 뒀다. 이념적 접근 보다는 원리 원칙에 따른 현실적 이익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그는 자본가의 착취라는 원리보다는 조직 원리(discipline)에 더욱 관심을 갖는다. 큰 기업의 조직의 힘이 으뜸 요소인 것이다. 베버는 자본의 논리보다는 관료제(bureaucracy)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대기업 직원은 중세 villicus(quasi-property), 즉 영주의 땅을 식업으로 받아 대리 경작을 시키면서, 일정한 세를 받는 형식과 유사하다. 당시 그 땅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성(城)의 소유이거나, 봉건영주의 것이다. 또 다른 관리제는 교구청의 ‘성직급 조직’에서 싹이 튼다(Gerth and Mells, 1946, p.207). 그들도 땅을 받아 그걸 농노에게 주고, 세를 받는다. 성직급 조직이 현대 관료제로 형태를 변형시킨 것이다.

이들 조직은 ‘종교적 의미’(聖)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삼성이나, 대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는 단순한 직위와 돈으로만 환산할 수 없는 지분을 갖고, 신분집단을 유지한다. 대부분 중소기업이 직위와 돈벌이에만 관심을 가진 조직 원리와는 전혀 다르다. 대기업은 활황이고 중소기업은 갈수록 난망인 이유이다. 시도 때도 없이 원리 원칙 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청와대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주용석 워싱턴 특파원(05.07)은 〈獨 ‘백신특허 포기 못한다’ 반발… ‘바이든 구상’ 출발부터 삐걱〉에서 “‘독일 정부는 6일(현시 시간) 대변인 성명을 통해 ‘지식재산권 보호는 혁신이 원천이며 (미래에도) 그렇게 유지돼야 한다’며 백신 특허 포기에 반대했다. 그러면서 ‘현재 백신 생산을 제약하는 요소는 생산력과 높은 품질 기준이지 특허가 아니다’고 지적했다”고 했다. ‘지구촌’ 하에서 자본가만 폄하하는 사고는 현실성이 없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