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기 서강대 언론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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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청와대는 KBS를 확실히 부역자, 나팔수의 역할을 시켰다. 전임 정부가 임명한 강규형 이사를 강제로 퇴거시킴으로써 대통령을 고발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법원은 1, 2심에서 강 명지대 교수에게 손을 들어주자, 문 대통령은 다시 해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고를 해둔 상태이다. 이사 선임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용어의 대표성과 거버넌스(governance)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고, 필자는 KBS(Korean Broadcasting System)에 대한 용어 풀이를 한다.

현행 방송법 제46조는 “이사는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해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현재 관행에 따라 정부 여당 7인, 야당 4인 총 11명으로 구성되어있다). 이 조항에는 지역성이 고려돼 있지 않다. KBS노동조합의 이영풍 정책공정방송실장이 배포한 자료에 의하면 ”NHK는 12명 이사 가운데 전원 지역 대표성을 구현했고, BBC의 경우 14명의 이사 중 4명(28%)을 지역 할당으로 구현하고 있다”라고 했다.

집중토론 ‘국민과 함께하는 분권형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방향(05.14)’에서 발제를 한 황근 선문대 교수는 KBS 이사가 하는 주요 업무는 “사장을 선임하는 일과 수신료(현행 2500원) 인상이다”라고 했다. 정권이 바뀌면 KBS는 전리품으로 생각하면서 방송을 파행적으로 운영하게 마련이다. 어떤 원리(rules), 원칙(discipline)도 이 정권의 부역자, 나팔수 역할을 자임한다.

필자는 KBS란 용어를 중심으로 공영방송의 정체성에 관해 논의를 한다. 우선 체제(System)라는 말이다. 이 이름은 미군정이 붙여준 용어로, 유기체(organism)를 가정한다. 마치 인간의 몸에 각 부분이 있고, 하나의 중앙통제를 통해 각 부분은 해당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은 서로 교통하며, 그리고 상부와 하부가 원활하게 움직이게 한다. 피는 각 부분에 영양을 공급하고, 그 역할을 통합하도록 한다. 여기에 동원되는 용어는 역할(roles), 조직(organization), 제도(institution) 그리고 체제(system), 체제는 사회 전체를 체제로 두면, KBS는 하부체제로 간주한다. 이 하부 체제는 전 국민을 상대로 서로 의존관계에 있도록 한다. 체계이론을 완성시킨 파슨(Talcott Parson, The Social System, The Free Press, 1951)에 의하면 AGIL(adaptation, goal attainment, integration, latency) 등으로 체계가 서로 작동하는 원리를 성명했다. 경제, 정치, 법, 문화 등을 몸속의 피와 같이 KBS는 통합한다.

KBS는 정치권력의 하수인이 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각 부분의 기능을 도외시하는 것도 문제이다. 제3 세계와 사회주의 국가에는 그 기능이 가능하지만, 선진된 자유주의, 시장경제 헌법 체제 하에서는 그렇게 하면 동맥경화증에 걸린다. 21세기 ‘지구촌’ 하에서 대한민국이 그렇게 반헌법적으로 움직이면, 그건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 KBS 역사는 이사 선임의 대표성부터 달라져야 한다. 언제까지 KBS가 정권의 부역자, 나팔수 역할을 할지가 의심스럽다. 우선 조직(organization)의 문제이다. 사회는 고도로 전문사회로 가고 있다. KBS가 전문화가 되는 사회를 준비하고 좋은 거버넌스로 사회의 핵심가치 영역, 토론의 영역, 일탈의 영역 등을 구별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더욱이 현재는 KBS 본부노조가 부장, 국장 이상을 독식하고 한다. 전문성의 정도에 따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패거리 천국으로 선전, 선동, 조직, 세뇌, 동원을 일삼는다. 좋은 조직(governance)은 각자의 전문적 역할(roles)과 전문적 규칙(professional rules)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하고, 그 대가를 받게 된다. 지금과 같이 신분집단으로 운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들의 노동은 결국 그들의 행복과 국민의 행복이 함께 할 때 의미를 지닌다. 그 역할의 집합이 제도(institution)이다. 제도가 원활할 때 좋은 거버넌스가 된다. 그게 가능하면, 사회의 하부 체제로서 KBS는 기능을 다 하게 된다.

처음 KBS 이름을 붙인 것은 파슨스 제자인 미군정의 버치(Leonard Bertsch)이다. 당시 서울신문은 같은 하바드 사회학과 박사 출신 하경덕(河敬德)이 맡고, 서울중앙방송국은 버치가 맡았다. 그때 체계(system)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체계가 이념과 코드로 운영되지 않는다면 물리학의 원리로 KBS의 조직과 역할의 실증적 분석이 가능하다. 그 때 뉴스는 과학(a science)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뒤르껭은 사회적 사실(social facts)이라는 말을 했다. 사실은 물리적 공간과 시간 안에서 현실을 반영한다. 뒤르깽은 사실을 사물(things)로 봤다. 이 사물은 전달성, 보편성, 강제성이 있다. 개인의 밖에 있는 어떤 것이지만, 그것이 나를 강제한다.

개인의 사고가 밖에 떨어져 누구에게도 유용한 정보로 작동한다. 이념과 코드가 들어가면 당장 정보의 왜곡이 일어난다. 물리현상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누구도 합당하게 연구 가능한 과학의 영역이다.

‘지구촌’ 하에서 ‘사물 인터넷’이 형성된다. 물론 인터넷은 가상공간이다. 공간이 없는 세상이다. 그 공간은 물리학의 영역이 아니라, 통계학 및 수학의 영역이다. 사이버 세계는 모든 사고를 2진법의 수(數)로 환원을 시킨다. 그러나 개인과 집단 그리고 환경을 다루는 물리학과 사회학이 분석대상으로 제외된 공간일 수 있다. 아바타는 가상일 뿐이다. 인간의 감정과 정서를 반영하기에는 부족하다. ‘사회적 사실’은 사회적이라는 말이 있다. 그 공간을 대변했을 때 대표성이 필요하다.

전국을 체제로 보면, 지역의 대표성이 우선돼야 한다. 프로그램 제작은 시간과 공간 안에 콘텍스트를 필히 반영해야 하고, 출입처 중심의 취재시스템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 그 취지가 가능하게 되면 KBS가 만들어내는 뉴스와 여타 프로그램은 국민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 지금 KBS 프로그램은 과학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물리학과 사회학의 영역으로 어떤 품격을 발견할 수 없다. KBS 구성원은 정체성을 상실하고, 정권도 정체성을 잃고 있다. 헌법 정신과 국가의 운영원리는 전혀 딴판이다. 정권을 잡은 선동정치인이 제멋대로(charisma 속성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KBS를 운영한다. 가부장제, 가산제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통제가 현재 이 땅에서 일어난다. 과학적 분석이 불가능 조직이어서 KBS는 체계(system)의 용어를 쓸 수 없다. 즉, KBS가 개명하고 민영화로 가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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