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남편의 글이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아내가 집안에서 옷을 입지 않고 다닌다”는 글이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을 둔 30대 남편은 아내가 샤워 후 아무런 옷도 걸치지 않은 채 집안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불편하다고 하소연했다.
여러 차례 대화로 행동을 바꾸려고 했지만 아내는 “집인데 뭐 어때”라며 개의치 않았고, 심지어 아들이 그 행동을 따라 한다고 했다. 이 사연은 가정 내 예의와 부모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경험하는 사회는 ‘가정’이다. 부모의 말과 행동, 생활 습관을 통해 도덕과 예의, 인간관계의 기초를 배운다. 부모의 행실 하나하나는 단순한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자녀에게 전해지는 교육적 메시지로 작용한다. 특히 성(性)과 관련된 행동은 아이의 정서 발달과 가치관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전문가들은 “아동이 부모의 나체를 자주 접하면 성적 경계 의식이 흐려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성적 호기심이 일찍 자극될 뿐 아니라, 이후 남녀관계에서 거리 두기와 자기 보호 개념이 약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사춘기 자녀에게는 성적 구분과 거리감 형성이 매우 중요하다. 부모가 이를 가볍게 여기면 아이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거나 이성과의 관계에서 경계를 제대로 세우지 못해 성범죄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
일부는 “가족끼리인데 뭐가 문제냐”는 반응도 보인다. 그러나 ‘자연스러움’과 ‘무분별함’은 다르다. 가정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건 좋지만 그 행동이 가족 구성원에게 불쾌감이나 불안감을 준다면 선을 넘은 행위다. 특히 배우자가 불편함을 호소한다면 행동을 고치는 게 옳다. 가족은 자유보다 존중이 우선돼야 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부부 중 한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는데도 “나는 바꾸지 않고 이렇게 살겠다”고 고집하면 그 가정을 오래 유지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이나 마찬가지다. 가정의 평화는 대화와 배려에서 출발한다. 상대의 감정을 존중하고 다름을 조율하는 과정이 부부의 인격이다. 자녀는 그 과정을 보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예의와 배려를 배운다.
부모의 행실은 말보다 강력한 교육적 효과를 낸다.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말처럼, 부모의 행실은 그대로 아이에게 각인된다. 가정 내 복장, 언어, 부부간 존중, 어른으로서의 품격은 모두 아이가 보고 배우는 교과서가 된다. 집은 방종의 공간이 아니라 품격 있는 관계를 익히는 첫 사회라는 걸 부모는 잊어서는 안 된다.
“집이니까 괜찮아”라는 말은 아이에게 위험한 신호다. 가정에서 예의와 질서가 사라지면 사회에서도 예의와 규범을 구분하지 못한다. 가정의 질서가 흔들리면 개인의 품격이 무너지고 결국 사회의 기본 질서도 약해진다. 가정에서 ‘편안함’이 ‘무질서’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편안함은 질서 속의 평온함이다.
부모의 책임은 단지 자녀를 먹이고 입히는 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인격과 가치관을 길러주는 삶의 첫 번째 스승이다. 부모의 언행은 아이에게 평생의 기준으로 남는다.
아이 앞에서 술에 취해 언성을 높이거나, 서로를 비난하고 무시하는 부모의 모습은 자녀의 마음속에 ‘어른의 일상’으로 새겨진다. 반대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은 아이에게 품격 있는 삶의 본보기가 된다.
가정은 가장 작은 사회이자 인격이 자라는 학교다. 부모의 한마디, 행실 하나가 자녀의 정서를 만들고 가치관을 세운다. 부모의 품격은 자녀를 통해 세상으로 확장된다. ‘집이니까 괜찮다’는 말보다 ‘가정이니까 예의가 필요하다’는 가르침이 우리 사회의 품격을 높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