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를 견디는 법

천영애

새들은 추방된 이방인처럼 국경을 넘고 새들이 낸 길을 따라 서러운 행렬이 이어진다 숲속에서 길을 잃었다 존 케이지의 피아노 소리가 나무의 눈을 털어 내고 새들은 부러진 나뭇가지에 앉아 운다 견디는 일이 끔찍해서 울고 있는 새들

오늘도 종일 아팠다 누구도 밥 한 끼  챙겨 주지 않았고 안부를 묻지 않았다 철저히 유폐되었고 추방되었다 케이지가 종일 피아노를 쳤다 죽음으로 해어졌던 이들이 전부 나타나 춤을 추었다 보르헤스의 난해한 문장이 배후가 되었고 어긋나 버린 삶이 무참해서 울고 싶었다

그늘이 깊다 다만 최후를 견디고 있을 뿐이다.

 

[시평]

이 시는 새들의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내면적 고뇌와 상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새들은 국경을 넘는 이방인의 모습으로 묘사되며, 이는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소외와 단절을 상징한다. 

시의 중심에는 존 케이지의 피아노 소리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소리는 나무의 눈을 털어내고 죽음으로 헤어진 이들을 춤추게 하는 힘을 지닌다. 그러나 케이지의 피아노 소리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예술조차도 고독과 상실을 완전히 치유하지 못함을 인정한다.

또한, 보르헤스의 난해한 문장은 시에 또 다른 층위를 더한다. 시인은 이러한 문학적 요소들을 통해 독자에게 삶의 의미와 고통에 대한 사색을 촉구한다.

마지막 구절은 시의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늘은 고통과 외로움의 상징이며, 견딘다는 행위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지는 인간의 숙명을 암시한다. 이 구절은 단순히 슬픔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인간이 어떻게 고통 속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도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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