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새로운 변화의 시작인가. 또다른 논란의 발단일까. 한국교회 주요 개신교단들의 총회가 잇달라 열리고 있는 가운데 각 총회 현장에서는 교계 안팎의 각종 현안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교인 수 감소, 사회적 신뢰도 추락 등 한국교회를 흔드는 문제가 산적한 가운데 근원적 처방이 아닌 당면 논란 수습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오히려 교단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고 더 큰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각 교단의 차기 총회를 이끌 신임 임원진 선출이 마무리됐다.
◆예장통합 신임 총회장 “사랑 용서 절실”… 합동은 내홍 속 임원선거 강행
23일 서울 중구 영락교회에서 개막한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제110회 정기총회에서 신임 총회장으로 선출된 정훈 목사는 위기에 놓인 한국교회 문제를 짚었다.
정 목사는 취임사를 통해 “오늘의 한국교회는 교회의 신뢰도 추락, 세속화와 영적 쇠퇴, 교인 수 감소, 교회와 교단의 분열 등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 사회와 마찬가지로 교회 내 갈등 수위 또한 매우 높다”고 운을 떼며 “우리 교회가 다시 신뢰와 위상을 회복하려면 관용과 용납의 태도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운 문제가 있더라도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해가 상충하더라도 조금씩 양보한다면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며 “이를 통해 교회가 위기를 극복하고 부흥의 기회로 도약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섬김의 길을 걷겠다”며 “낮은 자세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총회장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정 목사는 이날 저녁 진행된 취임식 기자회견에서 예장통합 교단 분위기를 용서와 사랑으로 바꾸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신뢰 잃은 한국교회가 사회에서 인정 받기 위한 첫걸음은 용서와 사랑”에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예장통합 총회 주제인 ‘용서, 사랑의시작입니다’가 어디까지 포함하느냐는 질문도 나왔다. 한국교회가 대립하는 동성애 등의 사안까지 포함되는 것이냐는 취지의 이 질문에 그는 “많은 사람들이 ‘추상적이고 막연하다, 모호하다’는 얘기를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용서를 주제로 잡았다. 따지고 판단하며 다투는 건 쉽지만 참아 주고 덮어 주는 건 어렵다”며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첫 걸음이 바로 용서와 사랑이다. 남을 시기하고 질투, 비판하는 마음으로 구호를 외치는 것은 오히려 신뢰를 잃어버린다”고 답했다.
그는 용서가 말로만 그치지 않고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설명을 하면 너무 길어진다.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지켜봐 달라는 것.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했다.
예장통합 신임 총회장의 이러한 메시지는 이웃 교단인 예장합동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장합동은 목사 부총회장 자격 박탈 논란 등으로 빚어진 갈등이 총회 현장에서 폭발하면서 고성과 항의가 오가며 총대 간 싸움이 벌어지는 등 초유의 분쟁사태를 겪었다.
이로 인해 예장합동 총회는 회무 둘째날 오전까지 정회를 반복하며 난항을 겪었다. 총대 간의 다툼이 외부로 노출되는 것을 우려한 총회 측이 언론의 보도를 통제할 정도였다. 결국 총회를 이끈 109회 총회장 김종혁 목사는 예배 도중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예장합동은 둘째 날 회무에서 선거를 강행했고, 고성과 반발 속에 신임 총회장을 비롯한 새 임원진을 선출했다. 이날 신임 총회장으로 선출된 장봉생 목사는 “잘하겠다”는 짧은 취임사를 남겼다.
◆ 고신 총회장 최성은 목사, 손현보 목사 논란엔 침묵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최근 구속된 부산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가 소속된 예장고신 정기총회는 올해 그 어느 때보다 교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예장고신 총회는 손 목사 구속을 ‘정치 탄압’으로 규정하는 입장문을 냈다가 “중립성을 저버렸다”는 내부 역풍을 맞았다. 특히 이번 총회에는 ‘손현보 목사의 설교 및 정치 활동에 대한 교단의 신학적 입장 질의’ 등 손 목사 관련 청원이 다수 상정돼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현장에선 손 목사 징계를 촉구하는 기자회견까지 열리면서 논란 속에 총회가 시작됐다.
23일 충남 천안 고려신학대학원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를 주제로 열린 제75회 예장고신 정기총회에서 신임 총회장으로 선출된 최성은 목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고신 신학의 전통을 계승하고 세대 간 소통과 농어촌·도시 교회 간 양극화 해소에 힘쓰겠다”고 밝혔지만, 손 목사 문제와 관련해서 언급은 피하는 모습이었다.
최 목사는 교단 내부에서 손 목사를 징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에 대해 묻는 질문에 “총회장은 물론 리더십 누구도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며 “위원회에서 심도 있게 논의한 뒤 결론이 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자리에서 함께 배석한 예장고신 관계자는 “선거법 위반 건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손 목사에 대한 사법부 판결을 존중하고 이후 총회도 결과를 수용할 것”이라면서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는 만큼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총회가 먼저 언급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손 목사가 대형 교회 목사임에도 ‘도주 우려’라는 이유로 구속된 것은 과하다는 취지로 성명을 낸 것”이라며 “설교 문제는 이미 세 노회에서 안건으로 올려 이번 총회에서 다루게 될 것이고, 신학부가 결론 내는 대로 수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교단 중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신임 총회장에는 이종화 목사가 선출됐다. 이 목사는 23일 강원도 홍천 비발디파크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열고 “교회 안에서 서로 존중하고 다름을 품는 건강한 공동체를 세우겠다”는 일성을 전했다.
이 목사는 “초고령사회와 저출산, 기후위기 같은 시대적 도전에 응답하면서도 다음세대를 세우고 평신도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교단을 만들겠다”면서 “처음 사랑을 회복해 칭송받는 교회, 신뢰를 회복하는 교단이 되도록 힘쓰겠다”고 전했다. 교회 부흥 대책과 관련해서는 “목회를 지원하고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에 주력하겠다”고 다짐했다.
- [2025 주요교단 정기총회] 예장통합, 총회 개막… 女리더십 등 개혁 요구 응답할까
- [2025 주요교단 정기총회] 고함·항의에 아수라장… 취재도 제한했다
- [2025 주요교단 정기총회] 예장합동 총회, 기자까지 차단... 다툼 노출 우려
- 손현보 구속에 예장고신 “매주 설교하는 담임목사, 도주우려? 명백한 정치탄압”
- 다가오는 교단총회 시즌… 전광훈 목사 이단성 조사 또 도마 위
- [2025 주요교단 정기총회] 한국교회 ‘교인 감소’ 악순환 못 끊었다
- [2025 주요교단 정기총회] “어떻게 이럴수가”… 또 좌절된 여성의 입지
- [2025 주요교단 정기총회] 목사 정년 연장 올해도 부결, 고령화 대책은 숙제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