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조직 개편안 발표
금융위 기능, 재경부·금감위로
금소원 분리 및 공공기관 지정

금융권 “감독·규제 대상이냐”
부처 간 칸막이 우려도 나와
금감원 직원들, 검은옷 시위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이억원 금융위원장. ⓒ천지일보DB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이억원 금융위원장. ⓒ천지일보DB

핵심요약

◆李정부 조직 개편 본격화

이재명 정부가 금융당국 조직 개편을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 조직 개편안에 따르면 내년 1월 2일부터 기재부는 예산처와 재경부로 분리된다. 금융위는 사실상 해체되고, 금융감독 기능을 총괄하는 금감위가 18년 만에 부활한다. 금감원의 소비자 보호 기능은 신설되는 금소원이 맡게 된다.

◆금융권·내부서 반발 잇달아

이에 대해 금융권 안팎과 금융당국 조직 내부에선 불안과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직 개편안에 따라 ‘4분할’ 구조로 금융감독체계가 개편돼 주무기관이 2곳(금융위·금감원)에서 늘어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금감원 권한을 금감위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과거 갈등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이재명 정부가 금융당국 조직 개편을 본격화하고 있다.

해당 조직 개편안은 금융정책 기능을 재정경제부(재경부, 기획재정부에서 기획예산처를 분리한 조직)로 이관하고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를 부활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 금융감독원(금감원) 역할 중 소비자보호 기능을 떼어 독립 기관인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을 두는 등 역할을 재정렬하는 안도 담겼다.

이 과정에서 금융정책 추진 동력이 약화되고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이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강력한 칼을 쥔 감독자가 다시 등장할 것이라는 불안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부, 기재부·금융당국 조직 개편

지난 7일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정부 조직 개편안에 따르면 내년 1월 2일부터 기재부는 예산처와 재경부로 분리된다. 국무총리 소속으로 신설되는 예산처는 예산 편성뿐 아니라 저출생, 기후 위기, 산업구조 혁신 등 중장기 전략을 맡고 재경부는 경제·금융정책 총괄·조정, 세제, 국고 업무 등을 담당하게 된다.

재경부 산하에는 공공기관 지정과 경영 평가를 전담하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설치될 예정이다. 이 위원회는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민간 인사와 재경부 장관이 공동 위원장을 맡고, 별도의 상임위원도 둘 계획이다.

금융위는 사실상 해체되고, 금융감독 기능을 총괄하는 금감위가 18년 만에 부활한다.

금융위의 국내금융 정책 기능은 기재부에서 분리된 재경부로, 감독 기능은 신설되는 금감위로 이관된다. 금감위 산하에는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가 설치된다.

금감원의 소비자 보호 기능은 신설되는 금소원이 맡게 된다. 금소원은 소비자 보호 기능 강화를 위해 별도의 독립 기관으로 격상돼 공공기관으로 지정된다. 금감원 역시 공공기관으로 지정될 예정이다.

이번 조직 개편안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 때부터 예고돼왔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국무총리실 산하에 기획예산처를 신설해 기재부의 예산 편성 권한을 이관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예산 편성, 재정 관리, 경제정책, 세제 등 방대한 기재부의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철거반’ 이억원·이찬진, 개편 수용

이 같은 조직 개편안과 관련, 이억원 금융위원장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조직 개편안에 ‘수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15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인적인 편지를 통해 “우리 조직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설렘과 미래만을 이야기하기에는 안타까운 상황인 것도 사실”이라며 “갑작스러운 조직 개편 소식으로 인해 여러분들이 느끼는 혼란과 두려움, 그리고 각자의 인생 계획, 꿈, 가족의 삶에 닥칠 불확실성을 걱정하는 마음과 그 무게를 충분히 공감한다”고 밝혔다.

그는 “공직자로서 국가적으로 최종 결정이 내려지면 정해진 결정에 따라야 하는 것도 우리의 책무”라면서 “조직의 모양은 달라질 수 있어도 금융 안정과 발전을 통한 국민 경제에 기여라는 우리가 지금까지 지켜온 가치와 사명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금융위 직원들이 그 책무와 의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잘 뒷받침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강조하는 한편, “시장과 국민의 요구와 기대가 여전히 높다”며 ‘대관소찰(大觀小察, 크게 보고 세밀히 살피라)’의 자세를 주문했다.

이 원장도 “금감원은 공적 기관으로서 정부 결정을 충실히 집행할 책무가 있다”며 임직원들에게 수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 원장은 전날 임원 회의에서 “감독체계 개편은 새 정부 출범 이후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수개월 논의와 당정대 협의를 거쳐 공식적인 정부 조직 개편안으로 최종 확정·발표된 사안”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원장은 금감원 본연의 역할 수행을 거듭 강조하며, 이세훈 수석부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입법 지원 태스크포스(TF)를 즉시 가동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전날 국회가 금융위 설치법 개정안 등을 발의한 만큼 추가 개정이나 수정이 필요한 부분에 의견을 내는 등 국회 법률 개정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서울=연합뉴스) 이찬진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취임식에 입장하고 있다. 2025.8.14
(서울=연합뉴스) 이찬진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취임식에 입장하고 있다. 2025.8.14

◆금융권 “제2의 이헌재 나올 것”

이에 대해 금융권 안팎에선 정부가 금융을 ‘감독·규제’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조직 개편안에 따라 ▲재경부(정책 수립) ▲금감위(감독 규율·정책 심의) ▲금감원(검사·제재 집행) ▲금소원(소비자 분쟁·보호)으로 이어지는 ‘4분할’ 구조로 금융감독체계가 개편돼 주무기관이 2곳(금융위·금감원)에서 늘어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2002년 가계 신용카드 대출 부실 사태에서 정책·감독 이원화의 한계가 불거졌음에도 정책·감독 주체를 다시 늘리는 것인 만큼 유사 사태가 발생할 경우 컨트롤타워 응집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가계부채, 부동산 규제, 금융산업 구조조정 등 정책과 감독이 맞물려야 효과가 나는 사항들이 산재한 만큼 부처 간 칸막이가 생기면 대응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소비자 보호 기능 분리 역시 실효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소비자 피해 구제와 금융회사 제재가 긴밀히 연결돼야 하는데, 기능을 분리하면 민원 처리 과정이 오히려 분산되고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이헌재 전 금감위원장처럼 강력한 집행력을 가진 ‘금융 총사령관’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감독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강화되는 만큼, 금융사에 대한 고강도 조치나 구조 개편이 뒤따를 수 있다는 관측에서다.

실제로 지난 1998년 외환위기 직후 이헌재 전 금감위원장은 ‘부실에 예외는 없다’는 원칙 아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한 바 있다. 당시 금감위는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퇴출 작업에 착수해 종합금융사 30여곳과 은행 5곳 이상을 폐쇄 또는 정리했고, 보험사와 상호신용금고 등도 대거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 같은 전례에 비춰볼 때, 금감위 신설 이후 ‘제2의 이헌재’의 등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금융권 안팎의 시각이다. 또 정치권 영향력 확대, 과잉 규제, 감독의 불투명성 등도 개편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논쟁 지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당국 내 반발 움직임 커져

금융당국 조직 내에서도 불만과 불안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융위의 경우 조직 개편에 따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 있는 직원 일부가 세종 기재부로 이동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위는 ‘서울 근무’라는 장점 덕분에 행정고시 재경직 최상위 합격자들이 선호해온 부처다. 지난해 행시 수석과 차석 합격자가 모두 금융위를 선택했을 정도다.

금감원과의 통합 과정에서 과거 갈등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의도에서 금융위가 금감원 건물에 입주해 있던 당시, 금감원 노조는 ‘금감원 건물에서 나가라’는 플래카드를 걸기도 했다. 이를 감안하면 두 조직 간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금감원 직원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금감원 직원들은 지난 9일부터 출근길 ‘검은 옷’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일부 직원은 개별적으로 용산 대통령실 인근과 국회 앞에서 1인 시위에도 나서고 있다.

이들은 “어설픈 금융업법, 원점에서 다시 하라” “금융 전문가로서 부끄럽지 않느냐, 금융위는 정신 차려” “금융위 설립 법 개정에 금감원 의견을 반영하라” 등의 목소리를 냈다.

비대위는 성명서를 통해 “정부 결정이 금융소비자, 금융시장, 국가경쟁력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는 경우에도 정부 결정을 따라야 하나”라며 “이 원장이 정부 결정을 충실히 집행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은 금융소비자, 더 나아가 국민은 뒷전으로 하고 윗선 눈치 살피기에만 급급한 행태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서울=연합뉴스) 금융감독원 노동조합원과 직원들이 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감원 로비에서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고 금감원에서 금융소비자보호원을 분리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규탄하고 있다. 2025.9.9
(서울=연합뉴스) 금융감독원 노동조합원과 직원들이 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감원 로비에서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고 금감원에서 금융소비자보호원을 분리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규탄하고 있다. 202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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