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정부, 개혁 속도전 돌입하나

‘이사 소송·교섭 혼란’ 등 예고

재계, 이번주 李대통령과 회동

개혁법안 우려 전달 가능성 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왼쪽에서 세 번째)가 지난달 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대선후보 초청 경제5단체장 정책 제언집을 보며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과 대화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왼쪽에서 세 번째)가 지난달 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대선후보 초청 경제5단체장 정책 제언집을 보며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과 대화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핵심 요약

◆상법 개정안 등 속도에 재계 긴장

이재명 대통령이 5대 그룹 총수 및 경제단체장과 첫 공식 회동을 앞둔 가운데 상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 등 노동·지배구조 관련 법안이 속도전으로 추진되며 재계가 경영 리스크 급증을 우려하고 있다. 상법 개정안은 이사 책임 강화와 주주 권한 확대를 포함해 소송 가능성이 높아지고, 노란봉투법은 원청의 단체교섭 책임 확대를 통해 하도급 노동자까지 교섭 요구가 가능해져 기업 현장에 혼란이 예상된다.

◆李대통령 개혁 속도전, 재계 반발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 초 입법 속도전을 선언하며 개혁 성과를 빠르게 내세우려 하나, 경제계는 사회적 합의 없는 일방 추진에 반발하고 있다. 노동시간과 정년 관련 정책은 사회적 합의 부족으로 속도 조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삼성·SK·현대차·LG·롯데 등 5대 그룹 총수 및 6대 경제단체장과의 첫 공식 회동을 앞두고 있다. 시점은 12일이나 13일이 유력하다. 오는 15~17일 G7 정상회의 참석을 앞둔 일정 속에 마련된 이번 회동은 단순한 인사 수준을 넘어 향후 정권의 경제정책 방향과 관련한 민감한 대화가 오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강조한 상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등 핵심 노동·지배구조 관련 법안이 속도전 양상으로 추진되며, 재계는 정책 전환의 직격탄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대기업들은 해당 법안이 경영자율성과 법적 리스크에 미칠 파장을 주시하고 있다.

◆상법 개정, 이사 책임↑ 주주 권한 강화

이재명 정부의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고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을 가능케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기존보다 훨씬 강력한 이사 책임체계 강화로 귀결되며, 주주에 의한 소송 가능성이 급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계는 “경영 리스크가 급증할 것”이라며 강한 우려를 표명해왔다.

특히 다국적 투자 펀드나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적극적으로 소송 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지면서, 해외 사례처럼 기업 경영권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점도 논란의 불씨다. 재계 관계자는 “단기 수익을 좇는 소액주주나 외부세력에 의해 기업 전략이 좌우될 위험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재계는 이 같은 변화가 이사회 구성과 의사결정 과정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기업은 법률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외이사 선임 기준을 강화하거나, 내부 법무 조직을 확대하는 등 대응 방안을 모색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비책은 중소·중견기업에는 오히려 비용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 기업 규모에 따른 불균형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노란봉투법에 원청 교섭책임 우려

또한 노란봉투법은 하도급 노동자나 특수고용노동자까지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 요구를 가능하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법안은 당초 윤석열 정부에서 재의요구권 행사로 무산됐으나,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다시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기업들은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계약 구조상 고용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수많은 협력업체 노동자들과도 교섭 의무를 지게 되는 상황을 우려한다. 노동현장에서의 분쟁이 늘고, 협상력이 약한 중소 협력업체들이 원청에 책임을 전가하면서 혼란이 가중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은 고용계약 당사자도 아닌데 교섭 의무를 지는 것은 부당하다”며 “산업 현장의 법적 책임과 혼란만 증폭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계는 특히 건설, 제조, 물류 등 다단계 하청 구조가 일반화된 산업에서 이 법의 파장이 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부 기업은 사전 리스크 관리를 위해 협력업체와의 계약 조건을 재검토하거나, 교섭 대응 조직을 신설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그러나 노조 측은 “책임 있는 원청의 역할을 요구하는 정당한 법안”이라며 “기존의 간접고용 구조가 불러온 불평등을 해소할 계기”라고 맞서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李 ‘속도전’ 선언, 정치적 배경은?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상법과 노란봉투법은 임기 초 2~3주 안에 처리하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실제로 국회 본회의 일정에 맞춰 이번 주 법안 처리를 시도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입법 속도전이 현실화되면서 재계는 “대화와 사회적 합의 없는 일방 통행”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속도전에는 정치적 배경도 깔려 있다. 개혁 성과를 조기에 가시화하고, 여소야대 정국에서 집권 의지를 관철하겠다는 계산이 엿보인다. 동시에 2030 세대와 노동계 기반 확대를 염두에 둔 노림수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하지만 경제계는 이 같은 입법 드라이브가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해치고, 기업 경영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책 실험이 정치 일정에 종속될 경우 신뢰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노동·지배구조 관련 입법은 기업 운영의 핵심을 건드리는 사안인 만큼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이해당사자 간 조율이 전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책 방향이 맞더라도 절차적 정당성과 실행 가능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되레 개혁 반발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정치권이 속도보다 공감대를 우선시하는 접근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대·중소企 온도차… 중소 “협상 여지”

재계 내부에서도 일률적인 반발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일부 중견·중소기업은 이번 정책 변화가 오히려 대기업 중심의 기존 협상 구조를 재편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이사 책임 확대나 단체교섭 권한 강화가 대기업에는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자신들에게는 새로운 협상 틀을 마련해 대기업과 보다 대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시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실제로 중소기업계 일각에서는 “협상의 판이 새로 짜이면 조건이 나아질 여지도 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기업 규모에 따라 정책 변화에 대한 이해관계와 대응 방향에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특히 협상력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지적받아왔던 만큼 새로운 제도적 환경이 마련되면 노사관계에서 불리했던 고질적인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도 감지된다. 또한 기존의 일방적인 하청 구조나 불공정 계약 관행에 대한 재조정 논의가 촉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부 기업은 정책 논의 과정을 지켜보며 실익을 따지는 분위기다. 결국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변화 그 자체보다, 그 변화가 자신들에게 어떤 새로운 룸을 열어줄지에 더 주목하고 있는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미국으로 수입되는 외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부과해온 25%의 관세를 50%로 인상한다는 내용의 포고문에 서명했다. 이번 조치는 한국시간 4일 오후 1시 1분(미국 동부시간 4일 0시 1분)부터 발효됐다. (출처: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미국으로 수입되는 외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부과해온 25%의 관세를 50%로 인상한다는 내용의 포고문에 서명했다. 이번 조치는 한국시간 4일 오후 1시 1분(미국 동부시간 4일 0시 1분)부터 발효됐다. (출처: 뉴시스)

◆대미 관세 충격… 공동대응 논의 예상

한편 이번 회동에서는 미국발 관세 충격에 대한 논의도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했던 상호관세 25% 부과가 다음달부터 전면 발효될 예정이며, 철강·알루미늄 등 일부 품목은 이미 50%까지 관세가 부과된 상태다.

산업연구원은 올해 하반기 수출 감소폭이 2.3%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특히 미국 시장에 집중된 수출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 대통령도 앞선 간담회에서 “민·관 공동대응”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며 적극적인 아웃리치를 지시한 바 있다. 이번 회동을 통해 대미 협상 전략, 수출기업 지원책, 통상 외교 강화 방향 등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시간·정년 ‘속도 조절론’ 대두

정년 연장과 주 4.5일제 도입 등도 정책 테이블에 올라 있으나, 재계의 반발이 거세고 사회적 합의가 미비한 만큼 속도 조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일률적 정년 연장은 청년층 고용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계엄령 선포하듯 시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신중한 접근을 시사했으며, 단계적 사회적 논의와 공론화 과정을 예고했다.

이번 총수 회동은 단순한 형식적 만남이 아니라 이재명 정부와 재계 간 ‘탐색전의 끝, 본게임의 시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들은 정부의 경제개혁 기조에 협력 의사를 밝히면서도, 법안 처리 속도나 실질적 제도 변화에는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관건은 정부가 어느 정도까지 의견을 수용하고, 속도조절을 할 수 있느냐에 있다. ‘참여를 통한 변화’라는 명분으로 재계와 타협점을 모색할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의지를 앞세워 강행할 것인지는 향후 이재명 정부 경제정책의 명운을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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