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제 언론인
‘인간의 시대에 오신 것을 애도합니다.’
S대 박정재 교수가 이런 슬픈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 지구환경을 파괴한 ‘인류세’ 지질시대를 경고하면서 생물지리학, 고기후학, 고생물학 등 다양한 학문 자료를 바탕으로 생태위기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재앙에 가까운 인간의 파괴적 행위들을 지질학적으로 복원해 지구와 화해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에 공감이 간다.
지구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물이 귀해졌고, 숲은 점점 움츠러드는 기후위기 시대라는 걸 이제 다 알고 있다. 이런대도 무분별한 소비, 파괴적 개발을 멈추지 않는다. 우편으로 배달된 대선 후보들의 공약 팸플릿을 보니 기후생태 위기의 심각성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AI 강국, 중산층 자산증식, 서민복지, 북핵 압도, 경제살리기 등을 핵심 공약으로 삼고 있다. 몇몇 후보만이 재생에너지 전력망 구축, 공공재생에너지 확대와 같이 에너지 측면에서 기후위기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20~30년 후 닥쳐올 환경 대재앙으로 인해 인류 존망을 걱정할 상황인데도 너무 안이하다. 체온이 섭씨 2~3도만 올라가도 해열제 먹고, 응급처방을 받는다. 지구가 점점 뜨거워져 1.5도 상승지점을 넘어서고 있다.
인류세의 파멸적 현장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전북의 비약적 발전을 기대하면서 세계 최대 규모로 하구와 갯벌을 메운 새만금매립지는 성장과 개발에 목멘 정치인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35년간 간척사업을 벌인 결과 수산업 피해가 심각하고 관광산업이 크게 위축된 모습만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지역경제가 피폐해지고, 농어민이 떠나고 있어 지역 소멸위기에 처했다. 죽어가는 새만금을 되살리려는 노력보다 산업단지 확장, 수변도시 조성, 신공항 건설 같은 무리한 사업만 더 추진하려 한다. 갯벌에 서식하는 조류와 충돌한 여객기의 활주로 이탈 참사 사건을 벌써 까맣게 잊었다.
가정의 달인 5월엔 생태 환경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날이 많다. 세계 철새의 날(10일), 생물 다양성의 날(22일), 바다의 날(31일)에 이어 6월 5일 세계환경의 날이 대미를 장식한다. 필자가 참여하는 환경단체가 얼마 전 세계 철새의 날을 맞아 인천 영종도 용유로 도로변 투명방음벽에 야생조류 충돌방지 스티커를 시민들과 함께 부착했다.
철새 천국인 영종도에선 새들이 방음벽에 부딪혀 죽는 사고가 빈번하다. 시민모니터링을 통해 방음벽에 스티커를 붙이면 반복되는 야생조류 충돌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식으로라도 철새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지만, 이보다 도시 구조물에 야생조류 충돌 저감 조치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다.
한강 하구와 연결된 인천 갯벌은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철새도래지다. 호주~동남아시아~시베리아 사이 철새 이동 경로의 핵심 중간 기착지이기에 전 세계 철새의 60~70%가 한반도를 거쳐 간다. 영종도 갯벌에서 저어새, 알락꼬리마도요, 노랑부리백로, 검은머리물떼새, 검은머리갈매기, 큰뒷부리도요 등 멸종위기종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며칠 전 시민, 학생들이 저어새 번식지인 인천 남동유수지 저어새생태학습관에 모여 ‘저어새 생일잔치’를 열어줬다. 주걱 모양의 큰 부리로 노를 젓듯 바닷물을 휘저어가며 먹이 사냥하는 저어새는 강화도~영종도~송도에서 번식하는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이다.
이들은 3월부터 인천 갯벌로 날아들어 알을 부화하기 시작한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의 체력을 키우고, 비행연습을 시킨 뒤 가을에 동남아시아 쪽으로 돌아간다.
갯가에서 만난 저어새가 알려준다. 철새와 게, 갯지렁이 같은 생물 보금자리인 갯벌을 더 훼손하는 건 죄악이라고. 그 말을 들으니 ‘널리 이롭게 하라”는 단군의 홍익정신이 떠오른다. 자연과 조화롭게 지내는 생태문화의 핵심 가치가 담긴 위대한 생명 존중 철학이다.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주인이 아니라, 자연을 잠시 빌려 쓰는 존재일 뿐이다.
후손들에게 지구를 잘 물려주려면 무분별한 확장을 그만두고 책임 있는 생태 실천에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요즘 인천 갯벌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시민운동에 작은 힘을 보태고 있다. 자연과의 평화공존이 새 정부 정책의 기본 토대가 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