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선종 후 바티칸 ‘콘클라베’ 준비 돌입
135명 추기경, 차기 교황 가리기 위해 모인다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으로 바티칸이 장례 절차와 함께 새 교황 선출을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21일(현지시간) 교황의 선종 이후 바티칸은 전통적 교황 관저인 사도궁 교황 아파트와 생전 거주했던 산타 마르타 침실을 봉인했다.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케빈 패럴 추기경이 ‘인터레그럼’ 기간 교황 직무를 대행한다.
교황의 시신은 이르면 23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치돼 9일간의 애도 기간인 ‘노벤디알레’를 거칠 예정이다. 교황의 고향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비공식 애도 행사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장례식은 선종 후 4~6일 사이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대규모로 거행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 전 세계 정상들의 참석이 예상된다.
◆‘콘클라베’, 천년 역사의 신비로운 교황 선출 의식
새 교황 선출 절차인 ‘콘클라베(Conclave)’는 라틴어로 ‘열쇠로 잠근다(cum clave)’는 뜻으로 13세기부터 이어져 온 가톨릭교회의 가장 비밀스러운 의식이다. 1268년 교황 선거가 5년이나 결론을 내지 못하자, 주민들이 추기경들을 감금하고 빵과 물만 제공하며 선출을 독려한 역사적 사건에서 유래했다.
콘클라베는 교황 선종 후 15~20일 사이에 시작되며 80세 미만 추기경 135명이 모두 바티칸에 도착한 후 공식 개시된다. 추기경들은 바티칸 내 ‘산타 마르타의 집’에 머물지만, 실제 투표는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로 유명한 시스티나 성당에서 진행된다.
외부와의 소통은 철저히 차단된다. 참가자들은 전화, 인터넷,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을 이용할 수 없고 성당 입구는 봉인되며 어떤 정보도 외부로 유출되지 않는다. 심지어 전자 도청 장치까지 설치해 외부와의 통신을 차단한다.
투표 절차는 경건하고 엄숙하게 진행된다. 추기경들은 “하느님이 증인이시니, 내가 최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투표할 것”이라는 맹세를 한 뒤 투표용지에 손글씨로 후보자 이름을 적는다. 후보 지명 과정은 없으며, 투표는 완전히 개방돼 있다.
투표는 하루에 최대 4회 진행된다. 오전 두 번, 오후 두 번씩 진행되며, 5일째 되는 날은 기도와 성찰을 위한 휴식일로 정해져 있다. 각 추기경은 투표용지를 제단 앞 잔에 넣으며 “그리스도께서 내가 심판받을 때 증인이시니, 내가 생각하기에 선출돼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투표합니다”라고 선서한다.
당선 기준은 투표 참가자의 2/3 이상(현재 기준 90표 이상)을 얻어야 한다. 13일간 투표해도 결정되지 않으면 결선 투표로 넘어가며, 이 때도 2/3 찬성이 필요하다.
매 투표 후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투표용지와 함께 젖은 짚을 태워 검은 연기를 내보내고, 교황이 선출되면 마른 짚을 태워 흰 연기를 피워올린다. 현대에는 화학 물질을 첨가해 연기 색깔을 더 확실히 구분할 수 있도록 한다.
◆선출 후 첫 공식 모습까지
새 교황이 선출되면 ‘수락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상자가 수락 의사를 밝히면서 교황직이 시작된다. 즉시 카메라리우스(교황청 재무장관)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묻고, 교황은 자신의 교황명을 선택한다.
이후 흰색 교황복(소티나)을 입고, 붉은색 모자인 모제타와 붉은색 신발로 갈아입는 의식을 거친다. 성 베드로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에서 “하베무스 파팜(우리에게 교황이 있다)”이라는 선언과 함께 대중에게 첫 모습을 드러내고, ‘우르비 엣 오르비(로마와 전 세계에)’ 첫 축복을 내린다.
이번 콘클라베에서는 한국의 유흥식 추기경을 포함해 유럽 53명, 아시아 23명, 북미 20명, 아프리카 18명, 남미 17명, 오세아니아 4명의 추기경들이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콘클라베는 며칠에서 몇 주까지 다양한 기간 동안 진행됐으며, 가장 긴 경우는 1268년부터 1271년까지 2년 9개월이 걸렸다. 반면 가장 짧은 콘클라베는 1939년 교황 비오 12세 선출 당시 단 하루만에 결정됐다.
차기 교황 선출을 두고 보수와 진보 간 치열한 대결이 예상되는 가운데, 비백인 교황의 탄생 가능성도 주목받고 있다. 가장 먼저 꼽히는 인물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페터 에르도(72) 대주교다. 2005년과 2011년 유럽주교회의협의회 대표로 선출된 그는 유럽 추기경들의 폭넓은 신뢰를 받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시절인 2014년과 2015년 가족 관련 회의를 조직했다.
라인하르트 마르크스(71) 추기경은 독일 뮌헨 대주교다. 2013년 교황의 핵심 보좌관 중 한 명으로 지명됐다. 그는 바티칸 재정 개혁과 성직자 성폭력 문제 대응에서 개혁적 입장을 보이며 주목을 받았다.
마크 우엘릿(80) 추기경은 캐나다 출신이다. 교구장 선발을 관장하는 바티칸 주교성 장관직을 10년 넘게 수행했다. 보수적인 성향이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신임을 받아 2023년까지 재직했다. 남미 교회와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피에트로 파롤린(70) 추기경은 바티칸 국무장관이다. 2014년부터 교황의 외교 업무를 총괄하며 유력한 교황 후보로 꾸준히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로버트 프레보스트(69) 추기경은 미국 시카고 출신이다. 과거 페루 대주교를 지낸 뒤 현재는 바티칸 세계주교선정심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미국 출신 교황’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남미 주교회장직도 겸하고 있어 가톨릭 최대 신자 분포 지역의 대표성을 지닌 인물이다.
로버트 사라(80) 추기경은 기니 출신으로, 바티칸 전례국 장을 지낸 보수 성향의 인사다. 오랜 기간 아프리카 출신 교황 후보로 거론돼 왔다.
크리스토프 쇤보른(80) 추기경은 오스트리아 빈 대주교다. 보수적이었던 베네딕토 16세의 측근이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노선에도 협조했다는 점에서 양 진영의 가교 역할이 기대된다.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67) 추기경은 필리핀 마닐라 대주교 출신이다. 아시아인으로서는 드물게 교황 후보군에 포함된 인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교전도부 책임자로 임명한 바 있다.
마테오 주피(69) 추기경은 이탈리아 볼로냐 대주교이자 이탈리아 주교협의회 의장이다. 교황의 우크라이나 평화 특사로도 활동했다. 진보적 성향으로 종교 간 대화 활동에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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