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발란 등 도산 위기
면세점, 점포 폐쇄·희망퇴직
유통업계 전반 재편 불가피
삼중고에 소비심리 얼어붙어
알리·테무 C커머스 공세까지
정국 혼란에 유통 정책 표류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주식회사 오뚜기가 오는 4월 1일부로 라면류의 가격을 인상한다고 20일 밝혔다. 지난 2022년 10월 라면 가격 인상을 한 이후 2년 5개월 만이다. 오뚜기는 총 27개의 라면 유형 중 16개 유형의 라면 제품 출고가를 평균 7.5% 인상한다.주요 제품 가격은 대형마트 판매가 기준으로 진라면이 716원에서 790원으로, 오동통면이 800원에서 836원으로, 짜슐랭이 976원에서 1056원으로 조정되며 진라면 용기는 1100원에서 1200원으로 오른다. 사진은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의 라면 코너 모습. ⓒ천지일보 2025.03.31.](https://cdn.newscj.com/news/photo/202504/3254662_3315411_4920.jpg)
[천지일보=정다준 기자] 국내 유통업계가 내수침체와 구조적 한계에 동시에 직면하며 도미노 부도 위기에 놓였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고금리·고환율·고물가에 따른 장기 소비 위축, 산업구조 변화, 해외 이커머스(전자상거래) 플랫폼의 공세가 겹치면서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형 유통사들까지 잇따라 생존의 기로에 놓이고 있다.
최근에는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며 대형 유통업체까지 위기 국면으로 진입했다. 면세점 업계도 연이어 희망퇴직과 점포 폐쇄에 나서며 구조조정을 본격화하고 있다. 업계 전반에 구조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유통업계가 전방위적인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정부 차원의 명확한 대응 기조나 산업 정책은 사실상 멈춰 선 상태다. 정치적 혼란과 리더십 공백이 장기화되며 규제 개선이나 구조조정 지원 논의도 표류하고 있다.
지난 2023년 하반기부터 중소 이커머스 업체들이 줄줄이 부도를 내면서 시장에 위기 경보가 울렸다. 지난해 7월 티몬과 위메프가 미정산 사태를 겪으면서 약 53만명의 판매자와 소비자가 1조 5000억원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300k(천삼백케이), 바보사랑, 알렛츠 등 중소 플랫폼들이 폐업하거나 영업을 중단했다.
이달에는 명품 온라인 플랫폼 발란이 회생절차를 개시하며 이커머스 업계 전반에 불안이 확산됐다. 고정 자산이 거의 없는 온라인 쇼핑몰 특성상 매출 둔화와 유동성 악화에 대응하지 못한 기업들이 연이어 무너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천지일보=이시문 기자] 국세청이 국내 대형마트 홈플러스의 대주주인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를 상대로 세무조사에 착수하고 있는 가운데 11일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앞으로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5.03.11.](https://cdn.newscj.com/news/photo/202504/3254662_3315412_4948.jpg)
오프라인 유통의 대표주자인 홈플러스도 지난달 4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점포 임대료와 금융비용 증가, 경쟁 심화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한 데다 경기 침체와 소비 위축이 겹치면서 결국 구조조정 수순에 돌입하게 됐다.
한때 유통업계의 효자였던 면세점 사업도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최근 1년 사이 롯데, 신라, 신세계, 현대 등 대형 면세점 4사의 합산 영업손실은 2776억원에 달한다. 코로나19 이후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고정비 부담이 커지며 수익성이 급격히 나빠진 것이다.
이에 면세점 업계는 수익이 나지 않는 점포를 폐쇄하고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통해 인건비를 절감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반등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고환율로 인한 외국인 관광 수요 위축, 구매력 저하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공식품과 외식 부문 물가 상승이 전체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1% 상승했으며 이 중 가공식품은 3.6%, 외식은 3.0% 상승했다. 전체 물가 상승분 가운데 외식과 가공식품 항목이 각각 0.42%포인트(p), 0.30%p를 차지했다.
가격이 상승한 품목은 커피, 빵, 냉동만두, 햄, 아이스크림, 과자 등 소비자 체감도가 높은 생활밀착형 제품들이다. 올해 들어 오뚜기, 오비맥주, 롯데리아를 비롯한 주요 식품·외식 기업 40여곳이 가격을 인상했으며 일부 품목은 두 자릿수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경제 전반의 ‘3고(高)’ 현상은 유통업계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고물가로 실질소득이 감소하고 고금리는 소비심리를 위축시키며 고환율은 원자재 수입비용과 물류비용 상승을 유발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유통업 매출 중 온라인 비중은 50.6%로 절반을 넘겼다. 같은 기간 이커머스 1위 쿠팡은 40조원이 넘는 연매출을 기록하며 백화점과 대형마트 전체 소매판매액을 초월했다.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시장 내 입지가 빠르게 줄어드는 가운데 비용 부담까지 가중되며 경쟁력을 잃고 있다.
여기에 최근 들어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의 국내 시장 진출이 가속화되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이른바 ‘C커머스’ 플랫폼들은 저가 공세와 무료 배송, 간편한 앱 이용 환경 등을 앞세워 국내 소비자층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관세 회피를 위한 직구 시스템 활용해 SNS 기반 마케팅 확산 등으로 경쟁 강도는 더욱 높아지는 추세다. 내수침체로 소비 여력이 낮아진 상황에서 가격 중심의 쇼핑 경향이 강화되며 국내 유통업체들은 더욱 불리한 입장에 놓이고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현행 규제 체계가 산업 환경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규모유통업법’은 대형마트의 출점 규제, 의무휴업, 영업시간 제한 등을 골자로 하고 있는데 온라인 중심으로 이동한 유통시장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추진되던 유통 규제 완화 움직임이 대통령 탄핵 결정 이후 사실상 중단되며 정책 공백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산업구조 전환에 필요한 제도 개선 논의가 정치 일정에 밀려 후순위로 밀려났다는 우려도 나온다.
쿠팡은 지난해 기준으로 41조 2901억원의 매출을 올려 백화점(40조 6595억원), 대형마트(37조 1779억원)의 소매판매액을 모두 앞질렀다. 하지만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여전히 ‘소상공인 보호’라는 명분 아래 영업제한을 받고 있다. 홈플러스의 몰락 역시 일부에서는 이 같은 규제 환경이 작용한 결과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면세점 역시 특허수수료 부과 기준, 임차료 산정 방식, 특허 갱신 제도 등에서 제도적 불확실성이 높아 지속가능한 경영 기반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는 점포 면적이나 영업이익 기준의 수수료 체계 전환과 공항 임차료 인하 등 개선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천지일보=정다준 기자] 14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배추를 고르고 있다. ⓒ천지일보 2025.01.14.](https://cdn.newscj.com/news/photo/202504/3254662_3315417_5431.jpg)
중소 이커머스 업체들의 도산, 대형마트의 법정관리, 면세점의 구조조정 등은 유통업계가 단순한 불황이 아닌 ‘구조 전환기’에 진입했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소비 행태가 급격히 변하고 경쟁 구도가 재편되는 가운데 정책적 대응과 산업적 지원이 동반되지 않으면 추가적인 붕괴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의 리더십 부재와 정국 혼란은 이런 전환기에 더욱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통업의 산업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 구조조정 지원, C커머스 대응책, 제도 정비 등 복합적인 해법이 시급한 상황이다.
산업 전반의 위기를 목격하고 있음에도 관련 부처나 정책 당국은 뚜렷한 대응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유통 전환기보다 더 두려운 것은 ‘정책 리더십의 부재’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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