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마포까지 ‘줄 관망’… 정책 신뢰도 추락에 시장 혼란
잠실 ‘엘리트’ 단지선 하루 만에 2억원 낮춘 급매까지 등장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한 달 만에 번복된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에 서울 부동산 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급매물’과 ‘계약 파기’ 문의가 쏟아지며, 강남에서 마포까지 전 지역이 혼란 속 관망세로 돌아섰다. 시장에선 “예측 불가능한 정책이 집값 불안만 키운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20일 부동산업계와 연합뉴스에 따르면 전날 서울시와 국토교통부가 강남 개발지역뿐 아니라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 아파트 전체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재지정했다.
송파구 잠실동의 한 중개업자는 “한 달 만에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이라며 “이 바닥에 잔뼈가 굵은 인근 중개사들도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정책에 다들 놀라는 중”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추가 대책을 예상했지만) 불과 한 달 만에 허가구역 해제를 번복할 줄은 몰랐다”며 “23일까지 갭투자 기회가 있지만, 이렇게 예측하기 어려운 정책 속에 누가 집을 사겠느냐”고 말했다.
◆강남 단지 급매 등장, 계약 파기 문의도
현지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이번 허가구역 재지정 대상지인 서울 강남 3구와 용산구 일대 아파트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예상했던 막판 매수세 대신 침묵과 불안이 퍼지고 있다.
송파구 잠실동 ‘엘리트(엘스·리센츠·트리지움)’ 단지에서는 중개업소들이 단속을 피해 일제히 문을 닫은 상황에서도 집주인들이 급히 매물을 내놓고 있다. 리센츠 전용면적 84㎡는 허가구역 해제 후 호가가 32억원까지 올랐지만, 지정 발표 직후 29억~29억 5천만원까지 1억~2억원 낮춘 매물이 하루 새 3개나 등장했다.
잠실의 한 중개사는 “집을 팔아야 하는 사람들이 재지정으로 매수자가 끊길 것을 우려해 급매로 돌렸다”며 “반면 매수자들은 가격 하락 가능성에 일제히 관망세로 돌아섰다”고 전했다.
다른 중개업소 대표는 “허가구역 해제 당시 가격이 급등했지만 실제 거래된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며 “정책의 신뢰가 무너지자 시장도 롤러코스터처럼 출렁이고 있다”고 했다.
서초구 반포동 역시 매수 문의가 끊기며 정적이 흐른다. 반포동의 한 중개사는 “허가구역 지정 소식에 매수자들이 한 발 빼며 거래를 보류하고 있다”며 “임차인이 있는 집을 팔아야 하는 집주인들의 문의만 쏟아지지만 우리도 정확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주택을 구입하면 2년간 매수자가 직접 살아야 하는 만큼, 기존 세입자의 임대차 계약 기간이 남아 있을 경우 사실상 매매가 어렵다. 계약 만료가 가까웠거나 세입자 퇴거 확약이 있어야만 거래가 가능하다.

강남권에서는 최근 고점에 계약을 체결한 사람들이 계약을 파기할지 모른다는 불안도 나온다. 강남구 대치동의 한 중개사는 “고점 매수자들이 집값 하락을 우려해 계약을 파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압구정동의 한 중개사도 “그동안 아파트값이 올라서 계약금 배액을 물고 계약을 깬 사례가 있었는데, 이번엔 반대로 고점에서 사기로 한 매수자들이 예약금을 포기하고 거래를 취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마포·성동·강동도 ‘관망세’
이번 토허제 재지정에서 제외된 마포구나 성동구, 강동구 등으로 수요가 몰릴 것이라는 예상도 아직 현실화하지 않았다. 일부 집주인들이 호가를 높이려는 움직임은 있지만, 매수자들이 선뜻 거래에 나서지 않아 관망세가 짙다.
마포구 아현동의 한 중개사는 “규제에서 빠졌다고 집값을 올리려는 사람이 있지만 전반적인 매수세가 약해 향후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성동구 성수동의 중개업소 대표도 “이 지역이 반사이익을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아직 조용한 상태”라며 “강남 집값이 하락하면 이곳도 함께 떨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강동구 고덕동의 중개사는 “이번에 지정되지 않았지만 정부가 투기를 막기 위해 결국 금융 규제를 강화할 것이므로 거래 위축은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현장에선 이번 토허제 지정으로 서울 전세 물량이 줄고, 이로 인해 전셋값 상승이 우려된다는 전망도 나온다. 서초구 잠원동의 중개사는 “최근 전세 시장이 강세인데, 허가구역 재지정으로 매매 물량이 묶이면서 전세 공급마저 줄어들 수 있다”며 “시장 불안이 더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