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한국역사유적연구원 고문, 학술논문 공개
남송 절강성 칠천 묘덕암에서 1159년 간행 기록
죽지에 유려한 목판인쇄… 남송 인쇄문화의 정수
개인 소장, 고려 초기에 전해진 증거 ‘구결’ 보여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국보급으로 평가되는 송나라 조판(雕版) 인쇄본인 불서 ‘종경록(宗鏡錄)’이 한국에서 발견됐다.
전체 길이 약 6.3m(세로 27㎝, 글씨 크기 1.2x1.2㎝)에 달하는 긴 두루마리 불서는 남송 소흥(紹興) 기묘(己卯)년인 1159년에 절강성 장흥현 칠천 묘덕암(妙德庵)에서 주지 모도곡(茅道谷)이 공양미 3백석을 희사해 인출한 것이다.
남송대 최고의 종이로 알려진 소흥산 대나무 종이를 사용했으며 판각자는 장석(張石)으로 일남산 보령사 주지가 쓰다(僧識)라고 밝히고 있다.


이 ‘종경록’은 중국 고대 불서를 연구해온 한국역사유적연구원 이재준 고문(고미술사학자, 전 충청북도 문화재위원)이 지방의 지인이 소장한 것을 고증, 학술논문으로 공개한 것이다.
이 고문은 “‘종경록’은 1장에 모두 10행씩, 1행의 글자 수는 20자로 49판에 세로로 약 9000자를 새겼는데 이는 송나라 조판 체제와 같으며 당나라~오대 시기 불경과는 다른 양식”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종경록’ 판식은 당나라에서 유행하던 유계(有界)는 없으며 당과 신라 서체로 인출한 고려 재조대장경의 14~17자와도 상이하다”고 밝혔다.

‘종경록’은 당나라 말기 오대 고승(唐末五代高僧)인 영명연수선사(永明延壽禪師, 904~975)의 저술로서 선사는 법안종삼조(法眼宗三祖), 정토종육조(淨土宗六祖)로 숭앙된다. 종래의 복잡하고 난해한 문구를 삭제해 이 책을 저술했다.
이 고문은 “‘종경록’은 고대 문헌을 쓰는 법을 배우기 위한 좋은 참고서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저술로 영명선사는 불교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여러 선종장로들과 토론, 답변을 요약․정리했으며 다수 선승들의 의견을 기록해 놓은 불서”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종이의 색은 백색이 농후 얇은(淺紙) 것으로 보아 죽지(竹紙)로 보이며 남송 시기 항주의 조판(雕版) 인쇄문화의 우수함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며 “‘종경록’ 권11에는 신라 고승 원효대사의 구법(求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한국 불교계에서도 인기 있는 불서”라고 밝혔다.

이 ‘종경록’은 고려 초기 남송 수도 절강성 항주(杭州)에서 고려 초기에 전래됐으며 절에서 소장하고 읽은 것으로 보인다.
이 고문은 논문에서 “‘종경록’에는 다수의 구결(口訣)로 토를 달고 있으며 이는 한글이 창제되기 이전 가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하고 “두루마리의 보존 상태로 보아 불복(佛腹)의 복장물로서 근세에 발견돼 민간에 수장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첨언했다.
당 송대 인출(印出) 불서는 중국에서도 희귀해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취급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 같은 송나라 불서가 찾아지면 대부분 국보로 지정된다.
이 고문은 “우리나라 박물관이나 서지학계에서도 고려대장경 간행과 불교전적의 모체가 된 송나라 불서를 소장하고 연구하는 풍토를 주문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