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신현배
지금으로부터 2백여 년 전, 경상북도 영주와 충청북도 단양 사이에 있는 소백산의 ‘대재(죽령)’라는 고개에는 도둑 떼가 들끓었다. 이곳에 도둑들의 소굴이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재물을 털거나 목숨을 빼앗는 것이었다.
단양 고을 원님은 산도둑들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산도둑들에게 피해를 본 백성이 하루에도 몇 명씩 찾아와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기 때문이었다.
“사또! 저는 장터마다 돌아다니며 비단을 파는 장돌뱅이입니다. 이번에 단양 장에 오려고 대재를 넘어오던 중, 도둑들에게 비단을 모두 빼앗겼습니다. 갖고 있던 돈도 전부 털렸고요. 하루아침에 장사 밑천을 잃었으니 이제 무엇으로 장사를 한단 말입니까?”
“사또! 세상에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저는 대재를 넘다가 열일곱 살 된 아들을 잃었습니다. 도둑들은 우리가 가진 것을 모두 빼앗고, 제 소중한 아들의 목숨까지 앗아 갔습니다. 도둑들에게 말대꾸 한 마디 한 죄밖에 없는데….”
백성들은 원님에게 자신의 기막힌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 사연을 듣고 있자면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잘 알겠다. 도둑들을 잡아서 빼앗긴 재물을 찾아 줄 테니 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라.”
원님은 이렇게 말하며 백성들을 돌려보내지만 원님의 말을 믿는 백성은 아무도 없었다. 도둑 떼가 그렇게 날뛰어도 관가에서는 도둑 하나 못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도둑들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귀신처럼 자유자재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다. 도둑들을 잡으려고 여러 차례 군사들을 고개로 보냈지만 모두 헛일이었다. 귀신같이 알고 산 속에 꼭꼭 숨어 버리니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원님은 도둑 때문에 뜬눈으로 지새우는 날이 많았다.

‘도둑의 무리를 한꺼번에 죄다 잡아들여야 할 텐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
원님은 밤을 꼬박 밝히며 생각을 거듭했다. 그러나 도둑을 잡을 좋은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도 원님은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백성들의 하소연을 듣고 있었다. 모두가 도둑에게 당한 사연이었다.
도둑에게 소를 빼앗겼다는 농부가 물러간 뒤 원님이 말했다.
“다음은 누구냐? 들여보내라.”
“예이.”
원님 앞에 나온 것은 허리가 꾸부정한 할머니였다.
“그래, 무슨 일로 왔는가?”
원님이 할머니에게 물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말해 보아라.”
“그냥은 말씀 못 드리고… 잠시 귀 좀 빌려 주십시오.”
“귀를?”
원님은 별일이다 싶어 할머니를 쳐다보다가, 이윽고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말해 보아라.”
원님은 할머니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러자 할머니는 원님의 귀에 대고 한참 무어라고 소곤거렸다.
원님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귓속말을 들었다.
할머니가 귀에서 입을 떼자, 원님의 얼굴 표정은 밝아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도둑 때문에 얼굴에 근심 걱정이 가득하더니 말이다.

원님을 찾아온 할머니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소백산의 산신이었다.
산신은 오래 전부터 밤잠을 설치고 있었다. 산 속에 사는 도둑들이 매일 밤 술을 마시며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때문이었다.
산신은 귀를 틀어막으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고얀 놈들! 낮에는 강도질로 사람들을 괴릅히고, 밤에는 소란을 피워 나를 괴롭혀? 이놈들, 본때를 보여 줘야겠다. 모조리 관가에 잡아넣어야겠어.’
산신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렇게 결심했다. 그러고는 허리가 꾸부정한 할머니로 변장하여 원님을 만나러 갔던 것이다.
산신 할머니는 단양 고을 관아에서 나왔다. 그리고 곧장 대재 고개를 찾아갔다. 고갯마루에 선 할머니는 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사방 숲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다자구야, 들자구야! 다자구야, 들자구야!”
할머니는 쉬지 않고 계속 외쳤다. ‘다자구야, 들자구야’ 소리는 산골 구석구석 널리 울려 퍼졌다.
도둑들도 이 소리를 들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지?”
“다자구는 뭐고 들자구는 뭐야? 희한한 주문도 다 있네.”
도둑들은 소굴에서 나와 우르르 고갯마루로 몰려갔다.
할머니는 여전히 ‘다자구야, 들자구야’를 외치고 있었다.
“꼼짝 마라!”
도둑들은 칼을 뽑아들고 할머니를 위협했다. 그러고는 할머니를 붙잡아 자신들의 소굴로 데려갔다.
도둑 무리의 두목이 할머니에게 물었다.
“조용한 산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다니 겁도 없구나. 그 주문은 도대체 뭐냐? 다자구는 뭐고 들자구는 뭐냔 말이다.”
할머니가 대답했다.
“다자구는 제 큰아들 이름입니다. 들자구는 제 작은아들 이름이구요.”
“아들 이름을 왜 산 속에서 부르느냐?”
“그것은…. 두 아들이 이 산에 있다는 소문을 들어서입니다. 둘 다 5년 전에 집을 나갔거든요.”
두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잃어버린 아들을 찾으러 왔구나? 미안하게 됐다. 내 부하 가운데는 다자구, 들자구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어. 5년째 아무 소식이 없다면 죽었다고 봐야지. … 할멈!”
“예….”
“이 곳에 온 이상 살아서는 돌아갈 수 없다. 할멈은 우리를 위해 밥도 짓고 빨래도 해라.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그리하여 할머니는 도둑들의 소굴에서 살게 되었다. 도둑들을 위해 밥도 짓고 빨래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즈음, 원님은 군사들을 불러 놓고 말했다.
“너희들은 대재 고갯마루로 출동하라. 고갯마루에는 큰 바위가 있을 것이다. 그 바위 뒤에 숨어 있어라.”
“예!”
군사들은 원님의 명대로 대재 고갯마루로 가서 큰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어느 날, 두목이 할머니를 불렀다.
“할멈.”
“예.”

“잔치 준비를 해라. 내 부하들이 잡아온 황소도 잡고 술도 담가라. 사흘 뒤에 내 생일 잔치를 벌일 것이다.”
할머니는 두목이 시키는 대로 잔치를 준비했다. 황소도 잡고 술도 담그고 이것저것 음식을 마련했다.
잔칫날이 되었다. 도둑들은 할머니가 만든 기름진 음식과 술을 먹으며 흥겹게 놀았다.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고, 신이 나서 춤을 추었다.
이 때 할머니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빠져 나왔다. 소굴 위쪽에 솟아 있는 큰 바위 위에 올라서더니, 대재 고갯마루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들자구야, 들자구야!”
할머니는 ‘다자구야’는 부르지 않고 연거푸 ‘들자구야’만 몇 번 부르다가 소굴로 돌아왔다.
두목이 물었다.
“할멈, 오늘같이 좋은 날에 왜 고함을 지르는 거야? 뭐 기분 나쁜 일이 있어?”
“아닙니다. 오랜만에 기름진 음식을 보니 아들 생각이 나서 이름을 불러 본 겁니다.”
“아들이 둘이라면서 왜 큰아들 이름은 부르지 않고 작은아들 이름만 부르나?”
“예, 두 아들 이름을 한꺼번에 부르자니 목이 메어 작은아들 이름부터 불렀습니다. 큰아들 이름은 나중에 천천히 부르겠습니다.”
술자리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독한 술을 물 마시듯 한 탓인지, 도둑들은 술에 취해 하나 둘 쓰러져 갔다. 나중에는 모두가 곯아떨어져 버렸다.
이 때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소굴 위쪽에 있는 바위에 올라가 또 큰 소리로 외쳤다.
“다자구야, 다자구야!”
할머니의 외치는 소리는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대재 고갯마루 큰 바위 뒤에 숨어 있던 군사들은 ‘다자구야’ 소리를 들었다. 군사들은 이 소리를 신호로 바위 뒤에서 나와 우르르 도둑들의 소굴로 쳐들어갔다.
술에 곯아떨어져 있던 도둑들은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붙잡혔다. 모조리 오랏줄에 묶여 감옥에 갇히고 만 것이다.
할머니가 원님에게 귓속말로 소곤거린 것은 도둑들을 잡기 위한 신호였다. ‘들자구야’는 ‘도둑들이 술잔을 들고 자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들자구야’를 외치면 좀더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그에 비해 ‘다자구야’는 ‘모두 다 잠이 들었다’ 뜻이었다. 따라서 ‘다자구야’를 외치면 득달같이 달려와 기습하라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군사들과 이런 신호를 주고받아 도둑 떼를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소백산 대재에서는 이런 민요가 불려지기 시작했다.
다자구야 다자구야
언제 가면 잡나이까
들자구야 들자구야
지금 오면 안 됩니다
다자구야 다자구야
그 때 와서 잡으라소
들자구야 들자구야
소리칠 때 기다리다
다자구야 다자구야
그 때 와서 잡으라소.
그 뒤 할머니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단양 고을 원님은 군사들을 시켜 할머니를 찾게 했지만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그제야 원님은 할머니가 소백산을 지키는 산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산신 할머니를 ‘다자구 할머니’라고 부르며, 대재 고갯마루 큰 바위 앞에 돌로 제단을 쌓고, 해마다 원님이 직접 와서 할머니를 위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신화 이야기 해설>
죽령은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과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사이에 있는 소백산의 고개다. 높이가 689미터로 죽령재·대재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아달라 왕 5(158)년에 죽죽 장군이 왕의 명령으로 고개를 개척하고 지쳐 죽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래서 죽죽 장군의 이름을 따서 이 고개를 ‘죽령’이라 이름 붙였다는 것이다.
죽령은 높고 험한 고개다. 옛날에는 이 고개에 호랑이가 수시로 나타났으며, 도둑 떼가 들끓었다고 한다. 이곳에 도둑의 소굴이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재물을 털거나 목숨을 빼앗았다. 이와 관련하여 이 지역에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다자구 할머니’ 신화다.
도둑들이 죽령을 넘는 사람들을 괴롭히자 한 할머니가 나타나 지략을 발휘하여 도둑들을 모두 물리치게 했다는 것이다. 단양 고을 원님은 그제야 할머니가 소백산을 지키는 산신임을 깨닫고 산신 할머니를 ‘다자구 할머니’라고 부르며 해마다 산신제를 지내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다자구 할머니를 기리는 죽령 산신제가 언제 처음 시작되었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조선 시대에 죽령 산신당(죽령사)을 지어 나라에서 해마다 제사를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당시에는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는 산신당인 ‘국사당’이 있어 국행제를 올렸다. 단양 죽령 산신당에서도 단양·제천·풍기·영춘·청풍의 고을 수령들이 한자리에 모여 조선 말까지 해마다 국행제를 올렸다고 한다.
국행제는 경술국치로 중단되었지만, 지금도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 마을에 있는 죽령 산신당에서는 해마다 3월과 9월에 다자구 할머니인 죽령 산신에게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비는 할머니 산신제를 지낸다고 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다자구 할머니가 여신으로서 국행제에 모셔졌다는 것이다. 산신이라면 남신과 호랑이가 대부분이지만, 다자구 할머니가 나라의 어려움을 해결한 ‘호국 여산신’이기에 모셔진 것으로 보인다.
고대에는 산신이라면 거의 다 여성이었다. 그런데 조선 시대에 와서 성리학이 통치 이념이 되면서 산신은 모두 남성으로 대체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그림이나 조각을 보면 산신은 대부분 남신으로 표현되어 있다.
다자구 할머니 신화는 죽령 지역뿐 아니라 경기도 양평·시흥, 경북 경주·영주·대구 등 여러 지역에서 전해지고 있다. 이들 이야기는 채록 지역이 저마다 달라도 ‘모두 다 잠들었다’는 뜻인 ‘다자구야’와 ‘다 깨어 있다’는 뜻인 ‘들자구야’로 신호를 보내 도둑을 잡거나 상대편에 승리를 거둔다는 공통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야기에 따라서는 도둑 대신 왜적·역모군·백제군 등으로, 다자구 할머니 대신 여인이나 마고할미 등으로 나오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