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스템 무너지면 복원하기 어려워… 정경분리 필요”
“우리 사회 작은 부분, 작지만 세심한 경제정책 펼쳐야”
비상계엄·탄핵 정국 여파에 한국 금융시장 불안 이어져
“동절기·내수 부진 감안해 취약계층·소상공인 지원해야”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구윤철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특임교수가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천지일보 사무실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에 대해서 밝히고 있다. ⓒ천지일보 2024.12.24.](https://cdn.newscj.com/news/photo/202412/3215081_3266260_5445.jpg)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경제가 정치에 너무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경제가 불안한 만큼 정치는 정치 일정대로, 경제는 경제 나름대로 분리해서 정치로 인해 위축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 이후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면서 우리나라 경제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에 몰렸다. 정치적 영향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탈하며 코스피가 2400선까지 떨어지고 원/달러 환율도 한때 1450원대까지 치솟는 등 불안한 상황이 나타났다. 성탄절과 연말 특수로 붐벼야 할 골목상권은 불확실성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며 꽁꽁 얼어붙은 상태다.
이 같은 탄핵 정국에 대해 구윤철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특임교수는 ‘정치와 경제의 분리’를 강조했다. 구 교수는 “경제시스템이 한 번 무너지면 복원하기 어려운 만큼, 정치적 사안과 경제를 분리해 국민의 삶과 행복을 유지해야 한다”며 “이럴수록 경제가 더 잘되도록, 각종 문제가 없도록 점검하고 정책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구윤철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특임교수가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천지일보 사무실에서 “작은 예산, 작은 정책을 통해 사람들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도록 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고 밝히고 있다. ⓒ천지일보 2024.12.24.](https://cdn.newscj.com/news/photo/202412/3215081_3266264_5740.jpg)
◆“체감할 수 있는 작은 예산·정책 중요”
구 교수는 재무부를 시작으로 재정경제원, 기획예산위원회, 기획예산처(현 기획재정부), 청와대, 국제기구, 기획재정부 등에서 국가 전체 정책과 예산을 다루는 일을 해 온 경제 전문가다. 기재부 예산실장과 제2차관을 거쳐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30년 넘게 국가 예산 및 정책과 동고동락한 그는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에 대해 “작은 예산, 작은 정책을 통해 사람들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밝혔다.
“2017년이었죠. 예산 실장을 할 때, 국방부에서 병영 생활관에 2~3년 안에 에어컨을 달아주겠다고 찾아왔어요. 그런데 제가 집에서 자려고 해도 더운데, 병사들은 어쩌겠어요. 다른 비용을 절약해서 한 번에 다 달아주자고 했죠.”
이에 책정된 예산은 F35 전투기 한 기를 살 정도였다. 구 교수는 다른 쪽에 들어갈 예산을 절약해 생활관에 에어컨을 1년 안에 달아주도록 했다. 이듬해 구 교수는 자신의 주장이 옳았다는 걸 알게 됐다. 2018년 7~8월 자연 재난에 포함될 만큼 거센 폭염이 찾아온 것이다.
“제 사무실에 앉아있는데, 한 병사가 찾아와서 ‘충성’이라며 인사했죠.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그 병사가 ‘에어컨을 달아주셔서, 훈련하고 생활관에 들어오면 너무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생각했어요. 야, 이게 진짜 아름다운 예산이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구윤철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특임교수가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천지일보 사무실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에 대해서 밝히고 있다. ⓒ천지일보 2024.12.24.](https://cdn.newscj.com/news/photo/202412/3215081_3266265_5928.jpg)
구 교수는 또 다른 일화로 미혼모 위탁 시설 예산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때는 구 교수가 미혼모 보호 시설을 방문했을 때였다. 구 교수는 센터에서 미혼모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뭘 배우고 싶어도 아이를 돌보느라 배울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구 교수는 이에 시설에 보모 두 사람씩 투입하도록 했다. 보모들은 하루 5~10시간씩 아이들을 돌봐줬고, 이들이 아이를 돌봐주는 동안 미혼모들은 제빵 등 기술을 배우러 갈 여력이 생겼다.
“시설에 들어가면 2년 뒤에 나가야 해요. 자립해야 하는데, 애를 두고 어딜 가겠습니까. 아무것도 못 배우고 시간이 지나갔는데, 보모들이 오면서 제과, 제빵 같은 기술 배우고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된 거죠.”
구 교수는 물가 등 거시적인 경제정책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의 작은 부분을 세심하게 챙기는 정책은 훨씬 체감도가 높아지고 국민이 행복하게 될 수 있는 정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 나름의 프로세스로 운영돼야”
구 교수는 “경제는 경제대로, 정치는 정치대로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3일 비상계엄이 구두로만 선포된 데다, 5시간 동안 병력이 움직였던 것에 그쳤던 것을 감안하면 경제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준 것이 아님에도 다음날부터 주식과 환율이 불안한 모습을 보인 것을 일례로 들었다.
“정치는 정치대로 정리해나가되 경제는 이와 단절해서 흔들리지 않도록 운영해야 합니다. 정부도 ‘회식은 회식대로 해 달라’고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사람이 정치적 상황 변동에 따라 불안해하다 보니 경제가 위축이 되고 소비가 안 되고, 결국 성장이 둔화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되거든요. 정치는 알아서 정리하게 두고, 국민의 행복을 위해 맡은 바 위치에서 할 일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구윤철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특임교수가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천지일보 사무실에서 “경제는 경제대로, 정치는 정치대로 운영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천지일보 2024.12.24.](https://cdn.newscj.com/news/photo/202412/3215081_3266278_2145.jpg)
구 교수는 경제가 계속해 정치적 영향을 받게 되면 취약계층의 생활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구 교수는 “지금 동절기가 됐는데, 한부모, 독거노인, 일용직 임금 근로자들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경제가 정치적 영향을 받아 막히다 보면 이들 취약계층이 추운 겨울에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연탄이나 전기 난방에 대해 지원해주거나, 긴급 생계비 지원 등을 진행해야 한다”며 “어려운 계층들이 추운 겨울에 얼어 죽는 사고를 막아야 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구 교수는 또 소상공인,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구 교수는 “최근 식당에 가보면 점심 장사는 좀 되다가도 저녁엔 손님 없어서 한숨 쉬는 사장님들이 많다”며 “이런 분들에 대한 은행 융자가 있다면 갚는 것을 조금 연장시켜주거나, 보증을 통해 장사 못 해 망하는 일이 없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계엄으로 해외에서 한국을 불안하게 봤는데, 탄핵 집회도 ‘K-데모’ ‘K-집회’로 불릴 만큼 평화적이고 축제같이 진행되고 있다”며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이게 한국의 문화다. 안전하다’라는 걸 어필해서 호텔 예약도 하도록 하고, 물건을 사도록 해서 내수가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교수는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경제팀이 평상시보다 더 촘촘하게 사안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불안한 심리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우리 한국 경제가 과거보다는 더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구윤철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특임교수가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천지일보 사무실에서 “적극적으로 세심한 정책을 펼치되 신용평가사들과 소통을 하거나, 심리적 안정을 통한 매도 수요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천지일보 2024.12.24.](https://cdn.newscj.com/news/photo/202412/3215081_3266281_2315.jpg)
◆“가장 필요한 건 불확실성 제거”
“환율이 1400원에서 1430원으로 오른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1430원으로 올라서 그대로 유지되면 사람들이 예측할 수 있거든요. 주식시장도 마찬가지로 떨어진 상태에서 유지되면 안정화되는 겁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안정감을 줄 수 있도록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앞으로 끌고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구 교수는 탄핵 정국으로 혼란스러운 금융시장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구 교수는 “비상계엄이라는 것 자체가 투자자 입장에선 상당히 부정적”이라며 “투자하기보단 빠르게 팔아야 한다, 현금을 보유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급락이 생긴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불확실성을 제거해 주식시장을 포함한 금융시장을 장기적으로 안정화시켜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세심한 정책을 펼치되 신용평가사들과 소통을 하거나, 심리적 안정을 통한 매도 수요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심리적 안정이 외부적인 충격을 받을 때 제일 중요한 만큼 해당 부분이 안정화되도록 국민이나 기관투자자, 외국인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절차와 함께 앞으로 발전 방향을 알려주면 투자자들의 심리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구윤철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특임교수가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천지일보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12.24.](https://cdn.newscj.com/news/photo/202412/3215081_3266284_2414.jpg)
구 교수는 이 부분에서 필요한 것이 혁신이라고도 강조했다.
“대한민국은 총체적으로 혁신이 필요합니다. 현재 시스템은 1960~1970년 경제개발 초기에 설정된 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행정구역도 바뀌지 않았고, 정부 시스템도 부분적으로 변화됐지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 만들어진 것과 차이가 없습니다. 미국, 독일, 일본, 프랑스 등 선진국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라도 혁신이 필요합니다.”
구 교수는 이를 위해 교육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 시스템은 골고루 다 잘해서 평균치가 높다면, 한 분야에서 특화된 사람을 발굴해 세계적으로 나갈 수 있는 인재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구 교수는 “진짜 혁명은 이 시점부터 진행해야 한다”며 “국가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바꾸는 혁명 없이는 우리나라 경제가 세계 1등으로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인재를 키우지 않는다면 인력 공급이 되지 않고, 해외로 인재가 유출될 수밖에 없다”며 “이 혁신은 인공지능(AI)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AI가 작동될 수 있는 IT 기술이 발달해 있는 데다, 제조업 기반이 뛰어나고 HBM(고대역폭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할 수 있는 기업을 유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 교수는 이 같은 기반을 바탕으로 한국과 국내 기업들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최근 노벨 화학상, 물리학상을 물리, 화학에 대해 전무한 AI 전문가가 받았습니다. 그가 개발한 AI에는 물리학에 관한 모든 정보가 들어있는데요, 이걸 가지고 새로운 연구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 대혁신을 위해선 AI를 활용한 인문학, 인류학, 철학, 경제학 등을 개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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