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제 언론인

주권자를 무시하는 권력은 무지막지한 폭력이다. 분열, 다툼, 분쟁, 전쟁을 서슴지 않아 세상을 생지옥으로 돌변케 한다. 유대인을 박멸해야 할 세균처럼 몰아간 히틀러의 파시즘에 열광했던 세태가 반복되는 부조리를 막을 수는 없을까?

이문영의 장편소설 ‘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에서 서로의 고통을 들으려 하지 않는 세상을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 “집 앞 전봇대 위에서 까치들이 지저귄다. 왼쪽 귀는 ‘깍깍깍’으로 들었겠지만, 오른쪽 귀엔 ‘하하하’로 들렸다.” 소통 부재에다 “위험한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들은 관측 대상에 못되니, 만만해지지 않으려면 위험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조용히 한해를 되돌아보아야 할 시점에 느닷없이 탄핵 소용돌이에 휘말린 정국이 참으로 당혹스럽다. 국민이 다시 응원봉을 들고 권위주의 권력에 저항하고 나섰다. 4.19 혁명, 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촛불혁명에 이어 또 국민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정상 국가에서 일어날 수 없는 불행한 일이다. 대통령의 절대권력이 국민 희망을 짓밟아 버린 상황에 모두 고통스러워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이 고통과 괴로움, 불안으로 가득하다. 세계인이 ‘고통 사회’에 사는 것 같다. 반이슬람 극우주의자가 독일의 크리스마스마켓으로 차량 돌진해 20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한 북한군을 향해 드론 공격이 가해지고 있다. 파면 위기에 몰렸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팔레스타인 전쟁으로 권력을 유지한다.

지난해 9월 네타냐후 총리와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뉴욕 유엔총회에서 만났을 때 통치 스타일과 관련해 ‘오만, 불통, 포퓰리즘 리더십’이란 쓴소리가 나왔다. 이스라엘의 지성인 유발 하라리 교수는 네타냐후에 대해 무능하고, 사익을 추구하며, 책임질 줄 모르는 인물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포퓰리스트 독재자 네타냐후는 무능한 총리다. 국익보다 사익을 추구해 나라를 분열시켰다. 사람들을 요직에 임명할 때 자격보다 충성심을 따졌다”고 일갈했다.

네타냐후는 가자지구 참극을 희생양 삼아 파면 위기를 모면한 상태다. 그는 1996년 이후 세 번째 총리로 지내면서 뇌물수수, 사기,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되자 법원 무력화를 기도했다.

내란 수사 과정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이 섬뜩하고 무섭다. 계엄을 주도한 군 장성의 진술에 따르면 자칫 북한과의 무력 충돌 상황이 우려된다. 6월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해병부대의 케이(K) 자주포 해상사격을 6년 만에 재개했다.

이어 무인기의 평양 상공 침투와 북한 오물 풍선 원점 타격 시도 등으로 북한을 오판하게 할 수 있었다. 자칫 국가비상사태가 실제로 도래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국가 안보를 볼모로 한 무모한 시나리오를 상상했으리라 믿고 싶지 않다.

민주주의(democracy)는 그리스어의 demos(인민)와 kratos(권력, 지배)를 합성한 개념으로 ‘인민에서 나온 권력을 갖는 제도’다. 국민이 국가 주인이지만 비대해진 사회에서 직접 민주주의 실현이 어려우니 선거를 통해 주권을 위임하는 대리인인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입법, 행정, 사법의 권력 분립을 민주주의 기본 원리로 삼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선 청와대 권력이 의회, 정당, 내각을 하위로 본지 오래됐다. 박상훈 정치학자는 보수나 진보 계열 정권 모두를 향해 ‘청와대 정부’라고 표현했다. 대통령들이 “청와대에 권력을 집중시켜 정부를 운영하는 자의적 통치 체제”를 유지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는 진단이다.

윤 대통령이 국민, 야권과 소통하지 못하니 ‘위험한 존재’가 되기로 작심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일고 있다. 여야 정당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혁신과 합리를 외치고 있지만 적대적 공생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권력을 번갈아 쥐는 두 정당만이 다양하기 그지없는 정치, 경제, 사회 문제와 국민 요구를 대변하고 해결하기 어렵다. 탄핵의 강을 넘어 개헌을 통한 정치 대개혁이 필요할 때다.

국가 권력이 올바르지 않으니 지방 권력도 무소불위처럼 주민을 괴롭히는 사례가 너무 많다. 지면이 부족해 다음에 그걸 얘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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