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제 언론인

공인의 거짓말은 단순히 사람 간의 신뢰를 깨는 수준을 넘어 사회를 분열시킨다.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여파로 국가 전체가 심대한 타격을 입고 있다.

군사독재 시대의 망상에 사로잡힌 듯 그는 “자유 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붕괴시키려는 반국가 세력에 맞서 결연한 구국의 의지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밝혔다. 그 누구도 수긍할 수 없는 계엄 선포 이유다. 동맹국조차 냉소하고, ‘내란 수괴’ 피의자 선상에 오르게 됐다.

윤 대통령은 아마도 ‘빅 브라더’를 꿈꾼 게 아닌가 싶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싶은 욕망에 눈이 멀지 않았으면 대통령으로서 상상하기 힘든 비상계엄 헛발질을 어찌했을까.

이해할 수 없지만, 현재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는 과거 반공 이데올로기의 기억을 자주 인출했다. 사실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현재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맥락적 차원에서 자유 민주주의 이념을 궤변처럼 마구 남발한다.

그의 행실은 또 조지오웰 소설 ‘1984’를 떠오르게 한다. 소설 주인공 윈스턴은 정부의 감시와 통제가 철저한 일당 독재 전체주의 국가에서 살아가고 있다. ‘빅 브라더’가 늘 지켜보는 세상이다.

국민들은 구국의 영웅 빅 브라더의 통치를 따르는 정도가 아니라 그를 신처럼 숭배해야 한다. 이를 감시하기 위해 나라 곳곳에 텔레스크린을 설치하고 우민화 정책을 편다. 역사와 현실 날조는 일상적이고, 국가 공인 테러리스트가 판친다. 국민에겐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는 슬로건을 주입한다.

대한민국을 이렇게 만들려는 몽상가가 있다는 건 큰 불행이다. 친위 쿠데타 실패로 위기를 넘겼으나 국가 이미지 실추가 이만저만 아니다. 태국 여행객이 환전소에서 한국 돈 환전을 거부당했다는 소식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전해졌다.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싱가포르 등 주요국들이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국 여행과 관련해 주의, 경고하고 있다. 비상계엄 후폭풍이 외교, 무역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혁신에 나설 순간임에도 기득권에 함몰된 여권으로 인해 국론 분열, 국민 갈등의 내홍이 더 깊어질 것 같다. 너무도 착잡하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한강이 스웨덴에서 계엄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쓴 작가답게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맨몸으로 장갑차 앞에서 멈추려 애쓰셨던 분, 맨손으로 무장한 군인들을 껴안으면서 제지하려는 모습을 보았다. 진심과 용기가 느껴졌던 순간이다.”

A씨도 한강이 거론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계엄 선포 방송을 보는 즉시 인천에서 득달같이 국회로 달려갔다. 정문이 굳게 잠겨 있어 담을 넘으려는 순간 군인들의 총부리가 얼굴을 향해 겨누고 있었다. 겁에 질리긴 했으나 죽을 각오로 총부리를 무시한 채 용감히 월담에 성공했다. A씨 같은 용감한 시민들의 국회 진입을 특전사 군인들이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

민심은 망상가의 무모한 국회 무력화를 허용하지 않았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소설 ‘1984’ 주인공이 살던 오세아니아가 아니다. ‘1984’ 등장인물들은 2+2는 5라는 거짓 주장에 저항하지 못했다. 그러나 2024년 ‘서울의 밤’ 가담자들은 1980년 ‘서울의 봄’을 깔아뭉갠 군인들과 달랐다.

몽상가가 이런 민의를 조금이라도 파악했다면 무한 권력을 꿈꾸는 빅 브라더 탐욕에 눈이 멀진 않았을 것이다. 그에겐 공감하며 행동하는 사고인 ‘아트 씽킹(Art Thinking)’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정치적 대립 속에서도 관계, 매개, 상호작용을 통해 의사소통할 줄 알았다면 무력으로 정적을 ‘싹쓸이 정리’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 지도자는 시대적 과제의 해결사 이어야 한다. ‘바이든 날리면’을 비롯해 명품백 수수방관, 해병대 사령관 구명 로비, 국회의원 선거 개입 등의 행태는 지도자 모습이 아니다. 계엄 사태 주동자들의 증언으로도 그의 거짓이 속속 드러났다. 점철된 거짓말과 무책임한 국정 운영으로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한다.

우리는 구시대의 붕괴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공존하는 기이한 세계에 살고 있다. 가장 부유한 26명이 지구인구의 절반인 38억명과 맞먹는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극단적 불평등 속에서 물질적 욕구를 채우려는 무한성장과 기술 숭배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빈부격차, 기후위기로 인류 공멸이 불가피하다. 거짓 없이 공존의 가치를 알고, 이를 실현할 사람이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하기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