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주총 철회 공시… 두산에너빌, 주가급락으로 비용 부담 커져

[천지일보=김정필 기자]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결국 무산됐다. 최근 발생한 ‘12.3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 주가가 급락함에 따라 회사 측의 주식매수청구권 비용 부담도 덩달아 커지면서다.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가 보유한 두산밥캣 지분을 두산로보틱스로 합병하는 개편안을 추진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왔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자사가 보유한 두산밥캣 지분을 두산로보틱스로 이관하는 분할 합병안을 의결할 임시 주주총회를 열지 않기로 했다고 10일 공시했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가 추진했던 두산밥캣 분할합병안이 백지화됐다는 의미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이날 공시를 통해 “분할합병 승인을 위한 임시 주총을 앞두고 예상치 못했던 외부 환경 변화에 따라 주가가 급격히 하락해 주가와 주식매수청구가격 간 괴리가 크게 확대됐다”며 “종전 찬성 입장이었던 많은 주주들이 주가 하락에 따른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위해 반대 또는 불참으로 선회했다”고 설명했다. 바로 최근 있었던 12.3 비상계엄 사태가 예상치 못했던 외부 환경 변화의 요인으로 풀이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이어 “이에 따라 분할합병 가결요건의 충족 여부가 불확실해졌고, 당초 예상한 주식매수청구권을 초과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면서 “회사는 불확실성을 남겨두는 것보다 빠르게 의사결정을 진행해 회사 방향성을 알려드리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판단해 임시 주총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대표도 이날 홈페이지에 게재한 4차 주주서한을 통해 “갑작스러운 외부 환경 변화로 촉발된 시장 혼란으로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오는 12일로 예정된 임시주총을 철회할 수밖에 없게 됐다”며 “대단히 송구하다는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분할합병 추진 과정에서 주주들의 반대가 심해지자 주식매수청구권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주식매수청구권은 주가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약속된 주가에 주식을 사주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가 돌발 변수가 됐다. 두산에너빌리티 주가가 지난달 말 2만 2000원대에서 비상계엄 사태 이후 1만 7000원대까지 뚝 떨어진 것. 이는 두산에너빌리티가 제시한 주식 매수 예정가액(2만 890원)을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상당수 주주가 주식매수청구권 권리를 얻기 위해 분할합병에 반대 의사를 표시할 것으로 예상됐다.
또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수책위)는 ‘10일 기준 주가가 주식 매수 예정가액보다 높은 경우’를 조건으로 찬성 표결을 행사하고 그 외에는 기권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수책위는 이 같은 결정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약속한 주가와 실제 주가의 괴리가 커지자 두산에너빌리티는 예상보다 큰 비용 부담을 안게 됐고, 그 결과 분할합병의 실익이 사라지게 되자 이를 철회한 것이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주식매수청구권 규모 한도는 6000억원이다. 이는 회사가 이번 분할합병 성공 때 자사 성장산업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금액에 맞먹는다. 한도를 넘을 경우 추가 자금을 확보해 분할합병을 추진할 수는 있다. 다만 현재 재무 여건과 미래 투자 계획이 고려됐다.
앞서 두산그룹은 지난 7월 클린에너지, 스마트 머신, 반도체·첨단소재를 3대축으로 하는 사업 구조 개편을 발표했다. 이러한 개편의 핵심으로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로 편입하는 안을 제시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보유한 두산밥캣(지분율 46.06%)을 분리한 뒤, 포괄적 주식교환 방식으로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려 했으나 금융당국과 주주들 반발에 철회했다.
이후 두산은 10월 말 새로운 사업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당시 두산은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두고, 기존 합병 비율을 소폭 상향한 새로운 개편안을 공개했다.
두산그룹이 지난 7월 제출한 사업 지배구조 재편안이 지난달 22일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으며 분할합병 문턱을 넘는 듯했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의 요청에 따라 증권신고서를 여덟 번 정정했다. 하지만 이날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가 임시 주총을 열지 않기로 결정함에 따라 사업 개편을 위해 반년간 드린 공이 결국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
향후 합병 재추진 여부도 관심사다. 합병 목적 중 하나가 신규 원전과 원전 수출에 따른 설비 투자를 위한 것이었는데, 비상계엄 이후 정권 교체 가능성이 제기되며 원전 정책이 뒤집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다른 일각에서는 로봇 시장 선점을 위해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합병 시너지는 여전히 필요한 만큼 향후 합병 재추진 가능성도 거론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