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황해연 기자]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전세사기 피해자 1주기 추모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통과 및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하며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2.24.
[천지일보=황해연 기자]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전세사기 피해자 1주기 추모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통과 및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하며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2.24.

[천지일보=이재빈 기자] 올해 1분기 빌라 등 주택 전세 거래량이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최근 몇 년간 주택 전세사기가 급증한 걸 고려하면, 전세에 대한 국민의 무너진 신뢰가 이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세입자와 집주인 간 계약으로 이뤄지는 만큼 전세에서 신뢰는 생명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정부 책임론이 나오지만, 과연 정부만 범인일까 하는 물음표가 찍힌다.

먼저 최근 국토교통부 실거래 통계를 보면 지난 1분기 서울 주택 임대차시장에서 전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역대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해당 통계에서 지난 1분기 전체 주택 전·월세 거래량은 총 12만 3669건이다. 이 중 전세 거래는 5만 7997건, 월세는 6만 5672건이다. 주택 임대차 거래에서 전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46.9%다. 이는 국토부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지난 2011년 이후(매년 1분기 기준) 가장 낮은 수치다.

특히 서울 주택 임대차시장에서 전세 비중은 지난 2020년 61.6%에서 2021년 58.0%, 2022년 50.3%, 2023년 47.6%로 4년째 감소 중이다. 이러한 가운데 올해 1분기 서울 빌라와 단독주택의 전·월세 거래량 6만 6170건 중 전세는 2만 4002건에 그쳤다. 전세 비중이 36.3%까지 떨어진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고 등으로 인해 빌라 등 전세 거래량이 줄고 전세입자를 구하기 힘들어진 상황 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월세를 선호하는 수요자가 많아지기도 했다. 업계에선 현재 주택 전세 시장을 두고 ‘초토화 상태’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이를 의식한 정부가 주택 전셋값을 내렸지만,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먼저 나타난 모습이다. 

앞서 정부는 빌라 보증 한도를 공시가의 150%에서 126%로 줄였다. 깡통전세를 방지하기 위한 취지의 정책이지만, 집주인 입장에선 재정적 부담이 가중됐다는 평이 있다. 보증에 가입할 수 있는 금액이 줄어드는 만큼 만기가 도래하는 세입자들에게 전세금 일부를 낮춰줘야 하기 때문이다.

또 이 정책은 전세 보증금을 하락시켜 수익성도 줄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손해를 감수하고 집을 매도하려 해도, 기대 이익이 적어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업계 일각에선 이 부분을 언급하며 정부 책임론을 내기도 한다. 정부의 정책이 오히려 역효과를 냈으니 이를 수습할 수정안을 내놔야 한다는 의미다.

빌라 등 주택시장에서의 전세사기가 심각한 문제로 불리는 이유는 피해자의 대다수가 저소득층, 사회초년생 등 경제적으로 빠듯한 계층이기 때문이다. 전세사기는 벼룩의 간을 빼먹는 범죄다. 피해자들 중 일부는 경제적 부담을 못 이겨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데 이견을 갖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정책 부작용 사례 외에도 국가가 이 문제를 책임져야 할 명분은 분명하다. 애당초 전세사기는 관련 법의 빈틈을 노린 범죄기 때문이다. 또 빌라 등 주택은 아파트에 비해 가격 공개가 상대적으로 불투명해 전세사기에 더 노출됐기도 하다. 이에 대한 보완 입법이 더 신속히 진행됐다면 문제가 더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주택 전세의 위기는 마냥 국가만 탓할 문제가 아니다. 우선 우리가 일컫는 전세사기는 뜯어보면 사고와 사기로 경우가 갈린다. 고금리 상황 등 외부 변수로 집주인이 의도치 않게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례가 있는 반면, 개인이나 개별 조직이 목적을 갖고 피해를 끼치는 사례가 있다. 

특히 다양한 유형의 전세사기범이 있지만, 가장 접하기 쉬운 상황은 집주인들이 사기를 친 경우다. 전세사기로 시장이 망가져 우는 건 집주인들인데, 웃는 사람들도 집주인들인 셈이다.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이고, 사기는 ‘의도를 갖고 사람을 속이는 일’이다. 부동산시장의 불경기 심화로 전세사고가 발생했다면, 사기는 그 와중에 사람의 의지가 개입한 것이다. 고금리 상황으로 벌어진 전세사고도 심각한 문제지만, 국민들의 전세 기피 현상을 증폭시킨 건 전세사기다. 

결국 주택 전세 시장이 이 상황까지 온 건 세입자들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개개인에게 온전한 사고 예방을 바라는 건 현실성이 없다. 반면 범죄는 개인의 도덕성에 달린 일이다. 

주택 전세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국가의 노력과 세입자와의 계약을 지키려는 집주인의 양심이 맞물린다면 당장 천지가 개벽할 변화가 이뤄지진 않더라도, 시장을 살릴 기반 정도는 마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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