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노선 수서~동탄 구간이 개통된 지 2주째다. 정부는 일주일 만에 7만 2천여명이 GTX를 활용했다고 홍보했다. 국토교통부 발표에는 기존 예측했던 평일 승객 수의 46% 수준에 그쳤지만, 오는 6월과 올해 말 추가 개통 후에는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담겼다. 다만 GTX가 ‘누구의 입장’에서 희망적인 미래를 가져올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실제로 GTX A노선 중에서도 수서~동탄 구간만 개통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정부의 주장은 전혀 허무맹랑하지 않다.
이미 동탄에서 서울로 출퇴근 하는 직장인들 사이에선 호평이 잇따르고 있다.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면서 1시간 반 이상을 이동에만 써야 했지만, GTX 일부 구간 개통만으로도 출퇴근 시간이 30분 이상 줄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지옥철’을 타며 출퇴근을 반복하는 경기도민이라면 이를 반기지 않을 수 없다.
GTX를 반기는 건 직장인뿐만이 아니다. 15년 전부터 전 경기도가 염원하던 사업이었고, 이름부터가 GTX다. 이동시간을 대폭 줄이면서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서울 주택 의존도도 줄이고, 문화·의료 인프라 접근성까지 개선했다. 그러니 경기도민 중 GTX를 싫어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경기도 부동산 관계자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동탄신도시를 비롯해 GTX가 지나는 지역을 따라 집값이 줄줄이 올랐다. 이미 실수요가 몰리고 있고, 고금리 기조가 여전함에도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GTX 개통이 이제 막 시작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기 지역 공인중개사들이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것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이때 가장 크게 웃는 사람은 누굴까? 바로 정부와 정치인들이 아닐까 싶다. 15년 전부터 추진해온 사업이니 어떤 정권이 완성시켰느냐는 사실상 크게 중요하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로 수년간 곤욕을 치른 점까지 감안한다면 GTX 개통은 윤석열 정부의 치적 사업이 될 수 없다.
다만 현 정부는 이를 자신들의 치적 사업으로 홍보하고 있고, 이 시기를 지나치지 않고 Z노선까지 확장할 기세로 공수표를 던지는 지역 정치인들의 행보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GTX 사업 자체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정부는 연초부터 GTX 시대를 열겠다며 134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A·B·C노선에 더해 D노선까지 수요가 있다 하더라도 E·F노선은 실효성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건설사들도 D노선에만 관심을 가질 뿐 E·F노선은 수익성이 나오지 않는다며 쉬쉬하는 판국이다.
정부는 일단 만들어 두면 언젠가는 쓰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걸까. 사업비도 민간에서 대부분을 조달하겠다고 단언했지만, 일부 노선엔 전혀 관심이 없는 기업들의 반응을 보자면 협의와 조율을 거치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이마저도 ‘우리나라 국민 2명 중 1명은 수도권에 사니까’라는 생각에서 일단 벌이고 본 것이라면 이해가 가능한 대목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수도권 인구 비중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 회원국 가운데 1위를 달리고 있다. 정부가 뚜렷한 비전은 없어도 일단 수도권에 무언가 일을 벌이는 게 충분히 이상하지는 않은 상황이다. 정부와 정치인들이 표심을 위해 수도권 과밀화를 부추기는 건 지극히 이해타산적이라는 의미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GTX는 명백하게 수도권 과밀화를 부추기는 사업이다. 그리고 균형발전은 현 정부뿐만 아니라 이전의 여러 정부에서 필요성을 인정한 방향성이다. 수도권 과밀화가 저출산 등 부작용을 낳는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석학들이 연구했다. 국회마저 세종으로 옮기겠다는 마당에 서울의 접근성을 개선시켜주는 GTX는 지역균형발전을 정면으로 역행하는 정책임에는 틀림없다.
이미 15년 전부터 추진된 사업이니 잘잘못을 따지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총선 표심을 위해 GTX를 치적 사업으로 내세우는 건 정권이 바뀌었더라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은 0.6명이다. 표심을 위해 지역균형발전을 역행하는 GTX를 치적 사업으로 만들었으니, 저출산이라는 위기를 극복할 실효성 있는 대책도 마련돼야 할 것이다. 현 정부가 이 위기를 다음 정권에 이양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