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유적연구원 답사반 현지 조사 성과

장중하고 미려한 3층 석탑… 복원 시급해

고려 석탑 부재가 뒹굴고 있는 홍천군 동면 신봉리 절터 유적 ⓒ천지일보 2024.04.26.
고려 석탑 부재가 뒹굴고 있는 홍천군 동면 신봉리 절터 유적 ⓒ천지일보 2024.04.26.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강원도 홍천군 동면 신봉리 절터 유적에 도괴돼 있는 석탑은 3층으로 층급받침은 3단이며 고려시대의 소작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한국역사유적연구원 사지 답사반(반장 배정임)이 지난 20일 현지를 조사한 후 내린 결론으로 주변에 많은 석탑의 부재가 뒹굴고 있어 복원할 경우 문화재급으로 전망했다.

신봉리 사지는 홍천군의 명찰 수타사(壽陀寺)의 전신인 일월사(日月寺)로 전해지고 있으며 답사반은 문화재적 가치와 사지의 규모를 밝히기 위한 발굴조사가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고려시대 승려 정원이 쓴 수타사 '사적기' ⓒ천지일보 2024.04.26.
고려시대 승려 정원이 쓴 수타사 '사적기' ⓒ천지일보 2024.04.26.

17세기에 만들어진 수타사의 역사를 기록한 ‘홍천현동공작산수타사사적(洪川縣東孔雀山水墮寺事蹟)’과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乾鳳寺及乾鳳寺末寺史蹟)’ 등에 따르면 신라시대 원효(元曉)가 우적산(牛跡山)에 일월사를 창건했으며, 조선 1569(선조 2)년에 현 위치인 공작산으로 옮겨 지으면서 수타사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전한다.

고려시대 승려 정원이 쓴 '사적기(1861년)'에도 “통일신라 성덕왕 때 원효(元曉)가 창건했으며 고려 광종 때 중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 때에는 네 차례의 중건이 있었으며, 산세가 아름다워 일월사(日月寺)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고려 때까지는 선수행(禪修行)의 도량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임진왜란 때의 병화로 불타버렸다.

그 뒤 법륜(法倫) 등의 노력으로 지금의 수타사로 이건해 대웅전 등 일부 건물이 복원됐다. 이후에도 열 차례의 중건·중수가 있었으며 범종 등을 안치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이 답사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역사유적연구원 이재준 고문은 “비록 탑이 도괴돼 있지만 현장에서 확인되는 부재를 조사한 결과 기단면석과 옥신석, 옥개석 등 부재가 대부분 원상태로 남아있어 복원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석탑은 일반형으로 여러 매로 이루진 기단과 초층 옥개석의 경우도 2매로 결구 돼 있는 크고 장중한 석탑”이라며 “현재 수타사 경내에 있는 고려시대 3층 석탑보다 먼저 조성됐으며 더 크고 잘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현장에는 낙엽이 쌓여 와편이나 토기 등 시대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수집이 어렵지만 향후 발굴을 하면 사지의 영역이 잘 남아있어 역사와 규모 등을 밝혀줄 유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역사유적연구원 답사반과 홍천역사유적연구원 및 홍천문화원 홍천학연구소 일행의 답사 모습 ⓒ천지일보 2024.04.26.
한국역사유적연구원 답사반과 홍천역사유적연구원 및 홍천문화원 홍천학연구소 일행의 답사 모습 ⓒ천지일보 2024.04.26.

이번 답사는 한국역사유적연구원 답사반을 비롯해 이병규 홍천역사유적연구원 회장, 용석준 홍천문화원 홍천학연구소장과 김동성․백승호 연구원이 함께했다.

홍천문화원 홍천학연구소(소장 용석준)는 그동안 여러 차례 신봉사지에 대한 연구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으며 이의 복원을 홍천군청에 건의한 바 있다.

이날 조사단이 실측한 탑재는 초층 옥신석 한 면의 폭이 95x95㎝, 높이 85㎝로 사면에 우주(隅柱, 기둥모양)가 모각돼 있으며, 초층 옥개석(2매로 결구)은 한 면의 폭이 130㎝, 높이 45㎝로, 2층 옥개석은 160㎝x155㎝, 높이 40㎝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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