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서학파는 민족자존(民族自尊)과 자주(自主), 자고(自高)를 강조했던 전통학파이지만 항일투쟁에서는 계층이나 남녀의 구분을 넘어서는 전 민족적 항일투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했다. 즉, 구국운동은 계층의 구분보다 전 민족적 항거가 동력이 되기 때문에 민중의 역할과 중요성을 인지했던 것이다. 그래서 화서학파는 전통의 틀 속에 안주하기보다는 민족주체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대열에 서 있었다.
그것은 화서학파 여성의 행적에서도 나타난다. 이들은 유교적 틀의 잣대로 여성의 입지를 해석했던 기존의 편견을 넘어서서 구국활동의 일선에 안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래서 화서학파 여성의 구국활동 참여는 화서학파 가풍과 학풍의 영향이 컸으며, 민족현실을 직시한 안사람의 자발적인 행보로 이어지면서 여성자존감이 항일투쟁으로 표출되었다.
당시 화서학파의 민족의식에 기초하여 항일구국운동을 실천했던 여성으로는 여성의병장 윤희순과 백범 김구가의 곽낙원 여사, 의병장 이진용의 처 우씨 부인, 그리고 항일구국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화서학파 여성들을 들 수 있다. 그들을 살펴보면, 이례적인 부분이 있다. 전통적인 화서학파 집안에서 여성의병장이 배출되었다는 점, 특히 의병장 윤희순이 활약했던 춘천지역은 화서학통을 이은 화서문인들의 결집지이자 위정척사운동이 격렬했던 곳이었기에 이 지역에서 여성병장의 목소리가 두드러졌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씨 부인도 남편 이진용의 절개와 의병정신을 고스란히 전달받아 항일투쟁에 활약했던 일화는 반일의병장 부부로 중국정부로부터 주목받은 것에서 알 수 있다. 김구 의사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도 한국여성의 기개를 보여준 사례인데, “어서 독립이 되도록 노력하고 성공하여 귀국할 때 나의 유골과 인의 어미의 유골까지 가지고 돌아가 고향에 묻어라”고 했던 곽낙원 여사의 유언은 민족독립의 염원과 열망, 민족자존감을 아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했을 것이다.
이처럼 유교사회에서 살림을 책임지던 안사람이 구국투쟁의 일선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나라와 민족에 대한 염려가 반영된 것이었다. 또한 국가의 안위를 걱정했던 수많은 지식인을 비롯하여 이들의 의식 있는 실천이 여성의식변화를 일으키는 동력으로 작용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화서학파 여성의 행보는 구국운동의 실천자일 뿐만 아니라 민족과 여성, 그리고 독립의 정신적 가치를 돌아보게 한 시대적 역할자로 주목된다.
미래학자 존 네이스비트(John Naisbitt)는 저서 ‘메가트랜스 2000’에서 오늘날 ‘여성리더십의 급부상’을 주목하라고 말했다. 이 말의 의미를 바로 우리 역사 속에 묻혀있는 의기 있는 여성지식인, 여성의 행보에 주목하고 그들의 정신을 되새기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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