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찌라시 잔치를 벌이나
요즘 툭하면 ‘찌라시’는 표현이 나온다. 아마 올해를 가장 뜨겁게 달군 단어 하나를 고르라면 단연 ‘찌라시’가 아닐까 싶다. 이 말은 일본말(散らし)이라는 점에서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우리말로는 ‘사설 정보지’등으로 불리는 일종의 전단지 같은 것을 말한다. 증권가 주변에서는 이런 사설 정보지가 거래될 정도로 이미 정보시장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을 정도이다.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적어놓은 것이라면 거래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아니 읽어보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는 귀담아 들을 가치가 있다고 보기에 이런 사설 정보지를 찾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권가 뒷골목에서나 나올 법한 ‘찌라시’라는 표현이 청와대 대변인의 입에서 나오더니 이제는 박근혜 대통령까지 청와대 공식 자리에서 이 표현을 썼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어쩌다 우리 대통령까지 ‘찌라시’라는 표현을 거침없이 쓰고 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말을 두고 왜 일본 말을 쓰느냐는 식의 국어 계몽의 충정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던진 ‘찌라시’라는 표현은 ‘정윤회 문건’의 성격과 수준을 그대로 규정해 버렸다는 점이다. 그것도 적절치 않은 ‘찌라시’라는 단어를 동원해 아주 강한 부정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뜻이다. 목적을 위해서는 개념에 대한 고민이나 그 적절성 문제는 개의치 않는다는 뜻으로도 들리는 대목이다. 이쯤 되면 박 대통령의 성격 규정에 반기를 들 관료들이 몇이나 있을까. 검찰인들 ‘찌라시’를 뛰어 넘는 수사가 가능할 것인가. 박 대통령의 ‘찌라시’발언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사실상 사태의 종결을 의미한다. 더 이상 저급한 ‘찌라시’에 현혹되지 마시라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래서일까. ‘정윤회 문건’의 키맨으로 급부상한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도 관련 내용을 ‘찌라시’에서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온통 저급한 ‘찌라시’ 잔치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