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 2014년 10월 4일(토) 맑음

알싸한 아침 바람이 코끝을 스친다. 올해 들어 가장 쌀쌀한 날씨라고 한다. 오랜만에 긴팔 옷을 입고 외출. 낮에는 아직 후덥지근한 느낌. 일교차가 심하다. 빛나는 가을 햇살 속에 살랑살랑 부는 가을바람이 목덜미를 상쾌하게 어루만진다.

‘차량 공회전 좀 자제하면 안 되나.’

아침부터 주택가에서 검은 세단 한 대가 매캐한 연기를 내뿜는다. 운전기사는 시동을 걸어놓고 탑승할 주인을 기다린다. 지난 몇 년간 쭉 보아온 풍경이다. 기사는 차량 먼지를 털고 닦아내거나 오늘처럼 휴대전화를 조작하고 있다. 시동을 걸어놓은 채로. 차안을 따뜻이 데워놓거나 시원하게 해놓고 차 주인을 모시려는 것일 터. 문제는 배기가스를 코로 흡입하는 사람이 느끼는 불쾌감이다. 공회전이 쓸데없는 공해를 유발함을 알기나 아는지. 공회전도 단속에 적발되면 과태료 5만 원을 물게 돼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부분 매연 단속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공회전 단속하는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다. 지자체에서는 공회전 제한 지역을 정해 놓고 집중단속을 벌인다고 하지만.

겨울엔 차량 시동을 걸어 출발하기 전에 반드시 공회전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요즘 차량은 기화기 방식이 아니다. 전자제어 방식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공회전이 꼭 필요하지 않다. 입으로 내뿜는 담배연기에 대해서는 많은 이가 알레르기 반응이라고 할 정도로 예민한 편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차량 꽁무니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도 유해하다. 단속이 좀 광범위하게 제대로 실시됐으면 좋겠는데. 무엇보다 스스로 운전자들이 자제했으면. 기름값도 비싼데.

횡단보도를 건널 때 갑자기 귀를 찢는 듯한 크락슨 소리가 크게 울린다. 저리 시끄럽게 울리지 않아도 될 텐데. 그뿐만이 아니다. 차 한 대가 신호위반까지 하면서 성급히 출발해 사람을 놀라게 한다. 나는 위험한 가을의 보행자, 서울은 무법천지다.

“불꽃놀이 구경인지, 인간 구경인지 모를 여의도 불꽃놀이 축제.”

오후 6시. 등산 가방을 짊어진 채 5호선 지하철을 타고 여의나루역을 찾았다. 벌써 인산인해다. 1백만 명이 모였다는 인파 사이를 비집고 들어 겨우 자리를 펴고 앉았다. 그러나 7시 반부터 하늘에 폭죽이 솟아올라 멋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마자 한강변 둔치는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신발을 벗고 조용히 앉아 시간을 기다려온 사람들 쪽으로 밀고 들어오는 지각 입장객. 자리를 밟는 구둣발, 흙 묻은 운동화들. 가을하늘에 수놓아지는 불꽃을 스마트폰에 담으려고 일어서는 사람, 관람에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욕심내 이동하는 사람으로 인해 몸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린다. 특별한 볼거리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중국인 관광객이 유난히 떠들썩한 목소리와 함께 극성이다. 불꽃놀이가 끝난다. 한강공원을 가득 채운 엄청난 양의 쓰레기. 바로 옆에 커다란 쓰레기통이 마련돼 있는 데도 마구 버린 쓰레기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우울한 축제, 쓸쓸한 가을이다.

“이번에야말로 진정성 있는 대화로 화해와 상생, 협력의 계기가 됐으면….”

한반도 주변 풍향이 급변하고 있는 걸까. 북한 고위급대표단이 남한을 깜짝 방문했다. 파격적인 외교행보다. 북한의 서열 2·3·4위 세 사람이 전격적으로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해 김정은 제1비서의 ‘따뜻한 인사’를 전했다. 북한은 멀찌감치 2차 고위급회담 날짜를 정했다. 다음 주가 아니라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로. 이 대목이 궁금하다. 왜 그랬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막연한 추측이지만 나열해본다. ‘시간벌기일까. 북한은 남한 방문 이후 한국과 미국의 태도 변화를 바라는 것일 터. 최근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도 한 변수가 됐을까. 북한이 지금 원하는 것은 주로 미국과의 관계개선 문제 아닌가. 평화협정 체결, 대사급 수교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다른 나라와 대등한 지위에 서려고 하는 것 아닌가. 나아가 연방제 통일과 미군 철수도 원한다는 것. 그렇다면 혹시 중간선거와 북미관계 개선 조치를 앞둔 미국의 종용에 의한 것은 아닐까. 미사일 방어망과 사드가 변수가 되지는 않았을까….’

의제가 무엇이건 간에 문자 그대로 대통로(大通路)가 열렸으면. 이번에야말로 어느 쪽이 일방적으로 시혜적인 베풂을 한다는 입장이 아니라 같은 민족으로 서로 주고받고 했으면. 우리에게도 이익이 되고 남한경제에도 돌파구가 됐으면 좋겠다. 북한경제도 어렵다고 하지만 우리도 경기가 많이 안 좋지 않는가. 자영업자의 폐업이 속출하고 생계형 주택담보대출이 늘었으며, 직장인의 고용불안과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남북이 경제협력을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자는 것임을 솔직히 인정하면 어떨까.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인데, 하루를 마감하며 필자만의 단견일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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