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저 분이 대통령을 하면 남자답게 잘 할 것 같네요.” “말로야 무얼 못할까요. 번지르하게 장광구설만 늘어놓는구먼요.”

“과연 누가 과거 박정희 대통령처럼 목숨 떼바쳐놓은 듯 소신껏 밀고나갈 배짱이 있을까요.”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 시선이 곱지 않은 가운데 30일 여야 대표 연설이 펼쳐졌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의 대표연설은 시원시원했다. 유머러스한 그의 평소 성품에 비쳐볼 때 다소 낯설다 할 정도로 진지했고 날카로웠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먼저 정치인으로서의 책임감과 반성론부터 앞세웠다. 그리고 고육지책으로 공무원연금개혁을 밀어부쳐야 하는 절절한 심경을 표현했다. 뼈를 깎는 듯한 아픔과 표밭에서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해야 할 것은 해내겠다는 강한 의지였다. 연설을 접한 지인들이 보내온 문자메시지 내용은 각양각색이었지만 어쨌건 간에 여야 모두 내용은 좋았다는 평가였다. 극심한 불황과 세월호 사태로 인해 여야 공히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나름대로 알맹이가 있었다는 의견이 많았다.

여기서 대북 문제는 다소 미흡했다. 여당 대표로서는 경제살리기, 고통분담, 정치개혁 등 또 다른 현안에 주력하고자 했기 때문이었을까. 정부를 향해 가끔씩 주목되는 ‘통 큰’ 제언을 던지기도 했던 김 대표가 이날만큼은 남북관계에 관해 침묵했다. 우리 외교당국이 신뢰를 잃고 표류하고 있다고 일침을 놓은 문 비대위원장 연설을 보자. 그는 “중국은 우리 정부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일본은 한국 정부의 의도적 대립외교를 무시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에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러시아 부분은 아쉽다. 지금이 마치 구한말 열강의 각축과도 같은 데도 말이다. 최근 우리 돈으로 26조 원이 소요되는 북한 철도망 현대화 프로젝트에 러시아 기업이 참여하기로 한 사실이 알려졌다. 러시아는 그 대가로 북한의 티타늄, 금, 석탄 등 지하자원을 채굴하는 엄청난 이권을 갖는 모양이다. 다시 말해 북한 철도망을 깔아주거나 보수해주는 대신 알토란같은 북한의 희토류 금속을 무려 20년간 캐가기로 보장받은 것이다. 북한과 러시아는 이달 처음으로 루블화 결제를 시작하고 고위급 교류를 활발히 진행하는 등 친선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필자의 뇌리 속에 우리가 해야 할 큰 공사를 러시아가 하게 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다 차려준 밥상을 우리가 애써 외면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바로 공전되고 있는 남북고위급회담 때문일 것이다. 앞서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도 “통일을 하면 2040년까지 국방비로만 500조 원 이상을 절감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일차원적이고 소극적인 차원의 언급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해 보자. 거창하고 중장기적인 남북통일에 앞서 소박하고 단기적인 남북교류만으로도 남북한이 함께 윈윈하며 경제를 얼마든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이 간과돼서는 안 된다.

전단 살포가 남북대화를 막을 줄이야. 새정치연합 문재인 비대위원은 “정부가 남북대화의 걸림돌이자 남남갈등으로까지 번지는 대북전단살포를 방관하는 건 이해가 안되는 일”이라며 “일부 단체의 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를 벗어나 심각한 안보문제가 됐다”고 비판했다. 문 의원은 남북 모두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일 것을 당부하면서 “북한당국도 대화하는 데 조건을 달지 말고 먼저 마주 앉아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자세를 가져 달라”고 촉구했다. 문 비대위원장도 “남북 고위급 접촉이 삐라와 함께 허공으로 날아갔다”며 “삐라 하나 관리 못하는 정부나 삐라 때문에 대화를 못하겠다는 북한, 모두 패자”라고 지적했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대해 ‘퍼주었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대증적 접근으로만 바라본 데 따른 것이다. 남북대치상황이 외국 자본의 한반도투자를 위축시켜 손해 보는 액수가 가히 천문학적이라는 점을 외면했다. 여기에 남북화해시대를 맞으면 국방비는 물론, 우리 젊은이들의 군복무 과정에서 겪는 정신적 육체적 부담 경감도 만만치 않음은 물론이다. 북한과 등지고 있는 사이에 중국 러시아 일본이 야금야금 정치 경제적 실리를 챙겨가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 정부 당국자들의 무소신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남북대화라는 큰 명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과제보다 냉전시대의 산물인 대북전단 살포 관행에 더 집착했다. 남북대치는 어디까지나 우리 문제이지만 이처럼 남북한이 ‘삐라’를 둘러싸고 기싸움에 몰두하는 듯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해외, 특히 경쟁국에서 얼마나 쾌재를 부를 지도 생각해보자. 북한도 대승적 차원에서 진정성 있고 ‘통 큰’ 자세를 보여주기를 기대해보자.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에게 말한 후 크게 인구에 회자된 말이 바로 ‘통 크게’ 아니었던가. 대북전단 문제도, 5.24해제문제도, 남북경협 문제도 모두 회담테이블에 갖고 나와 함께 다뤄보며 일괄타결에 노력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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