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어랏, 저게 뭐야?”
주말이었던 지난달 30일. 잠실벌을 가득 메운 야구팬들 앞에서 일어난 돌출행동에 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프로야구 롯데 포수 강민호(29)가 심판진을 향해 2루 송구하듯 물병을 길게 집어던져버린 것이었다. 4위를 놓고 숨막히는 대결을 펼치고 있는 두 팀이었다. 롯데는 LG에 2대 3으로 패했고, 사건은 그 직후 발생했다. 강민호의 손을 떠나 LG 덕아웃 쪽을 향해 투척된 물병은 1루석 쪽 관중석 그물을 맞고 떨어져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모습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동영상 사이트 등을 통해 퍼지며 논란이 됐다. 강민호는 이 행동에 대해 사과했고, 다음날 한 경기를 결장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징계도 받았다.
“넌 내게 반했어~”
강민호는 대형 프렌차이즈 스타이다. 타석에 들어서면 대중가요를 패러디한 경쾌한 롯데 응원가가 야구장 가득 신나게 울려퍼진다. FA대박을 터뜨려 롯데와 75억 원에 재계약한 그는 도루 저지율 국내 최고인 국가대표 포수에 홈런 타자이다. 성격도 밝고 구김살 없다. 미남형 얼굴에 아직 미혼이기까지 한 강민호를 보러 야구장을 찾는 팬들이 많다보니 롯데구단도 그를 타 구단에 내보내지 않고 붙잡았다. 그런 강민호가 왜 그랬을까.
스타의 돌출행동 이후 인터넷에는 실망했다는 팬들의 댓글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한 네티즌은 “스트라이크존은 심판의 재량이다. 오심이니 무어니 해도 결정적으로 콜을 하는 건 주심이다. 심판의 콜에 불복하고 자신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는 건 성숙한 프로선수의 자세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다른 네티즌도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의도가 어떠하건 간에 아이들도 보고 있을 텐데 분명 잘못한 짓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와 별도로 심판도 오심 논란에 휩싸였다. 9회말 투아웃에서 LG 마무리투수 봉중근이 롯데 2번타자 정훈을 상대로 던진 5구가 문제였다. 주자가 2명이어서 정훈이 포볼을 얻으면 만루가 되고 봉중근과 롯데 다음 타자 손아섭의 투타대결이 볼 만할 뻔했다. LG의 위기였다. 그런데 볼 카운트 스리볼 원스트라이크에서 던진 턱없이 높은 볼에 뜻밖에 스트라이크 판정이 났다는 것이다. 한 네티즌은 “유독 엘지 경기에서 엘지에게 유리한 판정이 많이 나는 것은 엘지가 운이 좋은 것인지 다른 무언가 있는 것인지…”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심판이 봉중근 투수와 신일고 동문이라는 점을 들어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일각의 편파판정 의혹은 구체적 근거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잦은 오심 논란에, 승부조작 의혹에, ‘심판개입설’ ‘특정 구단 밀어주기’라는 엉뚱한 뒷소문까지 불거졌던 프로야구다. 현재 팬들의 눈높이도 높다. 만에 하나라도 팬들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일은 없어야 한다. 비디오를 활용한 합의 판정 제도가 확대돼야 한다. 봉중근의 공은 중계하던 SBS 스포츠 ‘피치 존’ 그래픽 분석에서도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났다. 포수가 미트를 거의 머리 위까지 높이 들고 하이볼을 포구했는데도 스트라이크 판정이 내려지자 중계팀도 당황했다. 방송 캐스트조차 심판 콜 이전에 이미 볼이라고 판단하고 “높다”라고 성급히 외쳤으나 스트라이크로 판정되자 당황해하며 “높은… 스트라이크 선언이 되네요”라고 정정했다. 오심 논란이 너무 잦다. 오심이 속출하면 승부의 공정성이 문제가 되고 경기도, 선수도, 감독도 맥이 빠진다. 그러면 팬들이 외면하고, 결국 그렇게 되면 프로야구 경기 관중석은 텅텅 빈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좀 뜬금없는 생각이지만 존 로크의 저항권 이론을 떠올려 본다. “권력을 부여한 것은 국민이다. 합법적으로 집권했다 하더라도 권력자가 폭정을 휘둘러 시민의 권리를 위협하면 그것으로 그들은 통치의 권리를 상실한 것이며 그들에 대해 시민들은 더 이상 복종할 필요가 없다….” 이는 동양의 역성혁명 이론과도 맥이 닿는다. KBO나 프로야구 심판들이 차제에 한 번 되새겨보아야 할 말이다. 팬들 앞에 공정해야 하고, 겸손해야 한다. 그 권력이란 바로 야구를 사랑하는 팬들이 준 것이기 때문이다.
약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의 마음에 진심으로 통하며 낮은 곳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준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다녀갔다. 아직도 그분의 말씀이 큰 울림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대형화 비즈니스화된 한국 종교계의 개혁 자정 노력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자진해 세금을 내겠다는 선언도 들리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로 ‘배·사람·시스템’ 모두 총체적 부실인 한국의 자화상이 전 지구촌에 드러났다. 재난관리시스템과 대국민서비스가 엉망임이 벌거벗은 채 다 공개된 것이다. 그러나 이 시간까지 속 시원한 진상규명도,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국정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정치권에 미루고, 다시 정치권은 서로 갈라져 팽팽한 평행선을 달린다. 그런 사이에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고 오열하는 유족들의 슬픔과 아픔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존 로크나 맹자가 지금 이 나라를 보면 무어라고 할까. 프로야구며 종교계며 정치권이며 그들이 진정 팬과 민심을 두려워하긴 하고 있는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