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지난해 박근혜정부 출범 열흘을 앞두고 새 정부의 6개 부처 장관들에 대한 인선 발표가 있었다. 그중에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복심(腹心)으로 알려진 유정복 의원(경기 김포 지역구)이 안전행정부 장관 내정에 포함되다보니 일부에서는 자기사람(친박) 심는다고 의아해했다.

하지만 유 의원은 안행부의 전신인 내무부에서 잔뼈가 굵었고 경기도에서 김포군수와 김포시장을 거치는 등 20여년 간 지방행정에 몸담았으며, 그 후 국회의원에다가 이명박정부 때는 친박계 몫으로 농수산식품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던 전문성 있는 인사였다.

박근혜정부의 내각에서 중앙기관과 지방을 지원할 서무기능을 가진 안행부 장관에 새누리당 유정복 의원을 내정한 것은 그의 관료적·정치적 전문성을 고려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안 의원이 장관에 내정되고 정부조직법 파동으로 임명이 되기 전인 내정자 신분에서 가스사고가 터진 구미시 등 지역 현장을 누비면서 장차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주무장관으로서 능력을 보여줬고, 안전행정부 장관으로 임명된 이후에도 경험을 살려 지방을 지원하고 중앙부처를 돕는 국정 수행의 한 축으로서 소임을 다해왔던 터인데, 그가 그토록 하고 싶어 했고 자긍심을 가졌던 안행부 장관 자리에서 자진사퇴를 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이미 알려진 대로 새누리당 인천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다는 구실이다. 유 전 장관은 성실하면서도 신중한 사람이다. 필자는 유 전 장관이 사무관 시절에 중앙행정기관에 함께 근무한 적이 있어 그의 성품을 안다. 그는 23회 행정고시(1979년)에 합격해 현재의 안전행정부 전신인 내무부에서 계장(사무관)으로 지방행정, 지방재정 등 종합업무를 두루 경험한 바 있으며, 소탈하고 겸손하여 조직 내에서 상사와 동료, 부하 직원들과 융화가 잘되는 엘리트였다.

경기도 김포에서 국회의원에 재선된 유 전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으로 있을 때 비서실장을 하는 등으로 친박계로 분류돼 정치활동을 해왔다. 그런 관계로 2010년 8월 초 이명박정부가 친이와 친박의 화합인사를 위해 내각 개편을 할 당시 친박계 몫으로 농수산식품부 장관에 임명됐는데, 그 때 이야기다. 그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기자가 유 전 장관이 박근혜 전 대표(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대표 역임)의 사람임을 알고서, “입각 제의를 받고 박근혜 전 대표에게 보고를 드렸을 때 박 전 대표가 어떤 말을 했는가”를 물었다.  

그러자 유 전 장관은 “제가 언급하기 적절치 않다. 박 전 대표는 그런 문제에서 보통 가타부타, ‘그렇게 하라, 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씀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했다. 그러던 유 전 장관은 지난 6일 새누리당 인천시장 후보로 나서기 위해 안행부 장관직 사퇴 직후 “박 대통령이 ‘인천이 국가적으로도 중요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이 됐으면 하는 게 (국민의) 바람일 것이다. 결단을 했으면 잘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는 인터뷰로 정치권에서 대통령의 선거개입이 아니냐 들고 일어나는 빌미를 주었다.

그러면서 지난 5일 자신의 블로그에 “오늘 안전행정부 장관직 사직원을 제출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안행부 장관직 수행에 최선을 다해 온 저로서는 이제 인천의 발전과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온 몸을 던지겠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인천을 열망하는 시민의 요구에 꼭 부응하겠습니다. 많은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안행부 장관직에서 사퇴를 했지만 유 전 장관은 국회의원으로서 여전히 정치인 신분이다. 이번 6.4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 새누리당 최종 후보로 낙점돼 야당과 한 판을 붙게 될지 아직은 모를 일이지만 그는 다시 다분히 정치적이고, 정치의 길에 나서고 있다.

고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유정복 전 장관의 입을 통해 알려진 박근혜 대통령의 지원(?) 발언은 연고지가 아닌 인천지역에 후보로 나서는 당사자로서는 득을 봤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과거 이명박정부에서 장관으로 발탁되던 당시 박근혜 전 대표가 무슨 말을 했느냐고 물었을 때는 자신이 언급하기 적절치 않고, 보통 가타부타 식으로 말씀하지 않는다는 말과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이번에는 대통령이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이 됐으면 하는 게 국민의 바람일 것이다”는 격려까지 받았으니 그 내용을 언론에 충분히 알리고 싶었음은 당연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정열을 바쳐 내무행정에 몸바쳐왔던 터라, 풍부한 정·관계 경륜을 바탕으로 안전행정부 장관으로서 처리해야 할 막중한 과제들, 무늬만 지방자치가 아니라 주민이 주인 되는 완전한 자치제도 정착에 노력하고 경찰 수장으로서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국가행정의 틀을 고치며, 국민의 안전과 6.4지방선거를 책임지고 있는 주무 장관직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정권의 안전을 위해 선거전에 뛰어든 유 전 장관의 행동을 어떤 잣대로 평가해야 할까? 그가 설령 낙선해도 이 정부에서 그럴듯한 한 자리가 보장됨을 감지한 눈치라 한다면 잘못된 판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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