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새벽에 배달된 신문을 펼치니 6.4지방선거를 앞둔 기사거리가 많은 면을 차지하고 있다. 국민이 싫증내는 정치이건만 그래도 사람들은 정치에 관해 관심이 많은 편이다. 도시에서 만나는 지인들도 그렇고 어쩌다 지방을 다녀보면 연세가 지긋하신 노인들도 정치에 대해서는 손바닥 안을 보는 것처럼 훤히 꿰고 있는데 전문가가 따로 없다. 그러다보니 정치는 분명 미운데도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당신’처럼 국민 속에서 자리 잡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지방선거에 나설 예비후보자가 등록해 활동하고 있는 지금, 선거일이 불과 100일이 채 남지 않은 이때까지 선거룰이 정해지지 않은 것은 정치권의 잘못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무책임의 극치를 보인다. 지난해 말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와 선거룰을 다루기 위해 설치된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여야 의원들이 입씨름만 계속하다가 성과 없이 끝이 났으니 제도다운 제도를 만들겠다고 호언한 정개특위 위원들은 처음부터 국민을 기만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야당의 끈질긴 대선공약 지키기 주장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먼 산 바라보기 식으로 공세에 힘을 뺐다. 새누
리당과 대선 후보가 “문제가 많은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하겠다”는 공약은 시간만 질질 끌다가 폐기처분할 요량이었음이 나타난다. 황우여 대표는 연두기자회견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대신 ‘개방형 예비경선(오픈 프라이머리)’을 여야 공동으로 입법화 하는 방안을 공식 제안한 것은 오래전부터 정당 공천을 유지하겠다는 의도로 여겨지게 된다.

지난 2월 25일, 새누리당은 전국위원회를 열어 상향식공천과 전략공천을 기초선거에까지 확대실시하기로
당헌·당규를 개정했다. 이로써 새누리당과 대선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웠던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는 물 건너가게 됐지만, 지도부가 “혁명적인 공천안”이라며 그 대안으로 내세운 상향식 공천에 대해 당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즉, 상향식 공천은 현실성이 떨어지며 돈 선거의 위험성이 커 문제가 상존한다는 지적이다.

새누리당이 정당공천 폐지 대신 그 대안으로 마련해 당헌에 채택한 상향식 공천제도는 현재 지구상에서 미국의 일부 주가 실시하고 있는 정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예비 경선제도다. 정당제도가 잘 발달돼 있고, 주마다 특색 있는 선거제도를 운영해 지방정치가 비교적 잘 되고 있는 미국의 오픈프라이머리 제도는 민주주의와 후보자에 대한 성향, 정당의 입장을 잘 알고 있는 미국 유권자들에게는 맞는 내용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선거풍토와는 다르다.

그렇다면 미국의 민주, 공화 양 정당이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의 대의원 선출방법이 어떠한가
를 명확히 알 필요가 있다. 그래야 오픈프라이머리 제도가 우리나라의 정당정치나 선거풍토의 현실에서 적합한 선진적인 제도인지, 아니면 새누리당이 대선 공약을 파기하면서까지 기초선거 정당공천을 유지하기 위해 꼼수를 쓴 것인지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대의원 선출 방법은 두 가지다. 당원에게만 허용되는 ‘코커스제도’와 당원과 일반주민(비당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오픈프라이머리제도’로 구분되는바, 어느 방법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연방정부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각 주(州)의 주법과 민주·공화 양당의 주 당규와 규정에 의해 결정된다. 그중에서 오픈프라이머리는 정당의 간부회의나 지역전당대회의 폐쇄성과 비민주성을 개선하고자 채택된 제도라 할 수 있다.

정당의 대선 후보 경선은 미국 각 주의 선거법에 의하다보니 정당별로 각기 다른데, 민주당은 일반주민을 포함하는 오픈프라이머리 25개주, 당원들만 투표하는 클로즈프라이머리 12개주, 당 대의원만이 후보를 선출하는 코커스 14개주로 돼 있다. 이에 반해 공화당은 오픈프라이머리 22주, 클로즈프라이머리 11주, 코커스 14주로 돼 있는바, 현황에서 보듯이 일반시민을 포함하는 오픈프라이머리제도는 어느 당이든 미국 51개주의 반에 채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오픈프라이머리는 미국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정당의 예비경선이기는 하나 미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로는 정당민주주의에 치중된 미국사회가 공화·민주 양당으로 구분된 정당제도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즉, 정당의 주인인 당원이 당내 후보에 대해 주권행사를 해야 한다는 명확한 점이다. 새누리당이 내세우고 있는 기초선거 등에서 상향식 공천 제도는 좋을 것 같아 보이지만 우리의 현실과 선거풍토에서는 문제점이 많다.

지난 대선 후보 경선 때 모 정당이 비슷한 제도로, 온갖 동원 경쟁의 난장판과 폐해를 이미 경험했다. 기초선거 정당공천을 유지하기 위해 상향식 공천을 내세우려듦은, 그 폐해가 불 보듯 뻔히 보임에도 포장하려는 ‘참 나쁜 정치’에 매몰되는 정치권의 술수가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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