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현안 문제로 여야가 평행선을 달리던 때 정홍원 총리는 시급한 법안과 내년도 예산안이 연내에 처리될 수 있도록 국회에서도 여야를 떠나 대승적인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 바 있고, 박근혜 대통령도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법안들과 내년도 예산안이 하루빨리 국회를 통과돼야 하는데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새해 예산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고서는 정부는 꼼짝달싹을 하지 못한다.
헌법에서는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 대해 국회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일자로 치면 12월 2일까지 의결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법정시한 내에 통과된 사례는 의정사를 통틀어 몇 차례밖에 없다. 대선이 있던 해인 1987년, 1992년, 1997년에는 대선 일정을 의식해 여야 합의로 시한을 지켰을 뿐이고, 2000년 이후 정기 국회에서 예산안이 법정기한 내 처리된 사례는 대선이 있던 2002년이 유일했으며 올해까지 13년 동안 법정 기한을 넘겼다.
왜 이런 일이 해마다 반복될까? 그것은 정부가 편성한 예산에 대한 심의권이 헌법에 보장된 국회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예산의 수입 규모에 따라 마음대로 지출예산을 편성할 수 있지만, 심의 확정은 국회에 있는 만큼 정부가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하면 정부의 손을 떠난 것이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국회의 몫이고 국회의원의 책임이다. 예산 심의는 국회가 정부를 통제하는 수단으로서 국회의 권한이므로 정부가 밤 놔라, 대추 놔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국회는 예산 심의를 통해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첫째가 정부의 사업계획 및 사업계획 수준을 결정하고, 둘째 정부재산규모의 총액을 결정하며, 셋째 국가재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하며, 넷째 행정 활동의 특질과 그 성패 여부를 검토·평가하고 행정부를 감독·통제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그러한 국회의 기능과 활동을 통해 정부예산의 적정성을 검토하고 국가발전 목표에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헌법에서 국회의 예산안 심의·확정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국회에서는 예산을 심의하느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마치 일할 시기에는 한가하게 놀다가 다급해진 지금에야 허겁지겁하는 베짱이 행태와도 같다. 여야가 연내에 예산안을 의결하기로 합의한 만큼 예결위를 가동하느라 공휴일도 쉬지 않고 16일까지 소위원회 활동 등의 일정이 꽉 짜여 있다. 정기국회에서 마치지 못할 것이 예상되어 12월 임시총회까지 준비해두고 있는데, 문제는 시간이 없어 예산 심의를 대략하고 치우는 부실 예산이 발생될까 걱정스럽다.
부실 예산의 대표적 사례는 각종 ‘지역구 예산’ ‘선심성 민원 예산’ 등을 얹는 예산 부풀리기 관행, 실세 지역구 의원 몰아주기나 예결위원장‧기획재정위원장 등 힘 있는 의원의 지역구로의 예산 편중이다. 또한 예결위 계수조정위원들이 밀실 심사과정에서 나타나는 쪽지예산이다. 쪽지예산은 지역구 의원들과 당 간부들의 민원이 담긴 쪽지를 계수조정위원들에게 보내어 예산에 끼워 넣도록 압력을 가하는 방법으로 사용된다. 예결위원들이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예산을 심의해야 함에도 소아적, 이기적인 행태의 답함 행위가 공공연히 벌어지는 바 지난해에도 하룻밤 사이에 무려 4조 원이 ‘거래’됐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예를 들면, 지난해 예결위원장을 맡았던 장윤석 의원이 5418억 원, 강길부 기획재정위원장이 4913억 원의 지역구 예산을 챙긴 것이 잘못된 사례의 본보기였다. 그래 놓고도 예결위 소속 의원 아홉 명은 1월 1일 새벽 6시 국회 본회의에서 예산안이 통과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해외 예산 시스템을 연구한답시고 1억 5000만 원의 국회예산으로 멕시코, 코스타리카, 케냐 등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국민 여론의 집중 화살을 맞았지만 그때뿐이다.
예산 심의가 국회의 막강한 권한이니만큼 그에 따른 책임도 따라야 하지만 예결위가 특별위원회 성격이어서 전문성이 부족한 자들로 구성되는 게 가장 취약점이다. 심의에 정기국회의 회기를 풀로 활용한다고 하더라도 기간이 모자라는 판에 다른 쟁점을 예산과 연계해 싸우다보니 허송세월 하다 결국엔 겉치레 심의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한 요소들이 부실 심의를 가져와 결과적으로 행정부를 통제하는 데는 한계가 따른다. 이번 예산국회도 예외가 아니니 영락없는 후진국의 모습을 보이는데 언제쯤 예산 부실 심의가 사라질는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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