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칼 마르크스가 북한에 생환했다. “아니 건장한 프롤레타리아는 모두 어디로 가고 온통 영양실조 환자들뿐인가?” 얼마 뒤 김일성이 뒤따라 생환했다. “아니 지금쯤 사회주의 완전승리가 이룩되어야 하는데 왜 자본주의 맹아기에서 몸부림치는가?” 겨우 장마당 경제로 근근이 유지되는 북한 경제, 마르크스나 김일성이 보아도 이상하지 않을 리 만무할 것이다.

지금 북한이 심각한 빈익빈 부익부로 신음하고 있다. 지방의 노동자 농민들은 끼니를 걱정할 만큼 궁핍이 창궐하지만 평양의 특권층들은 자본가 흉내를 내며 떵떵거리고 있다. 국제사회의 제재로 북한의 경제난이 심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중국 언론이 평양 상류층의 호화로운 생활상을 전해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발행하는 국제 시사잡지인 ‘환구(環球)’는 최근호에서 신화통신 평양특파원 두바이위(杜白羽) 기자의 평양 시내 르포기사를 실었다. 평양에서 1년여 근무한 두 기자는 지난 5월 시내에 문을 연 ‘해당화관’이 최고 상류층을 겨냥한 ‘소비의 성지’라고 소개했다. 해당화관은 쇼핑시설은 물론 음식점과 헬스클럽, 수영장, 사우나, 안마시술소, 미용실 등을 두루 갖췄다. 스위스에서 유학한 김정은은 이런 시설을 선호하며 벌써 몇 차례 현지지도를 했다.

요금은 안마 30달러(3만 3500원), 수영 15달러(1만 6700원), 사우나 5달러(5600원) 등으로 평양의 다른 시설들보다 50%가량 비싸지만 상류층 사이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해당화관 2층의 음식점에서 판매하는 불고기 정식은 1인분에 50~70달러(5만 6천 원~7만 8천 원)로 외국인이 느끼기에도 턱없이 비싼 수준이다.
해당화관은 한번 갔다 오면 100달러(11만 2천 원)가량은 쉽게 쓰는 고급시설이지만 평양의 상류층은 이를 애용하고 있다. 두 기자는 해당화관에서 만난 북한 상류층의 외모나 행색이 중국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상류층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전했다. 해당화관이 개업하기 전까지 북한 최고의 고급 명소였던 대동강외교단회관은 최근 고객 유치를 위해 새로운 전략을 내놨다.

이 회관의 수영장은 그동안 요일별로 내외국인을 구분해 입장시켰지만 지난 6월 중순부터는 요일에 관계없이 함께 입장할 수 있게 했다. 초기에는 수영장 레인을 내외국인이 구분해 사용했지만 현재는 이 구분도 사라졌다. 두 기자는 이곳을 찾는 북한 상류층 중에 전문 수영장비를 갖춘 남성과 노출이 심한 수영복을 입은 볼륨 있는 여성들도 다수 목격했다고 전했다.

명품 손목시계를 차고 수영하는 북한 남성에게 대화를 걸자 그는 “두바이에서 구매한 방수가 되는 롤렉스 시계”라고 자랑했다. 기자가 다시 시계의 가격을 묻자 그는 “친구가 준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우리 한국에서도 롤렉스 방수시계를 차고 풀에 뛰어들기는 힘들다. 너무 고가의 시계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북한인들이 사치품의 가격을 밝히기를 꺼릴 때 흔히 쓰는 방식이라고 두 기사는 소개했다. 두 기자는 최근 1년여 사이에 북한에 서양식 변화가 많이 이뤄졌으며 ‘북한의 맨해튼’ ‘리틀 두바이’로 불리는 평양 창전거리에는 고급 음식점과 외화가 통용되는 상점들이 늘었다고 전했다. 또 북한에서 지난 2009년 화폐개혁 이후 인민폐와 달러 등 외화 유통이 계속 확대되고 있으며 일반인도 대부분 일정액의 외화를 소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북한의 비공식 환전소에서는 인민폐 1위안(180원)이 북한 돈 1200원이고, 미화 1달러(1120원)는 북한돈 7320원으로 알려졌다. 이는 북한 당국의 공식 환율인 미화 1달러당 북한 돈 1천 원과 7배 이상 차이가 난다. 북한 당국이 주는 북한 일반인의 월급이 북한돈 3천 원 가량에 불과해 시장에서 1만 원에 팔리는 사과 500g도 살 수 없는 수준인데 반해 북한군 대장은 매월 김정은으로부터 1300달러가 카드로 입금된다. 평양의 특권층들은 지금 정체불명의 ‘우리식 사회주의’에서 상대적 부를 마음껏 즐기고 있다. 이 정도면 북한은 평등사회가 아니라 빈익빈 부익부의 최절정 나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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