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북한은 지난 8일 정부의 개성공단 7차 회담 수용 통보에 회신문을 보내면서 “(우리들의) 아량과 대범한 제안에 찬물을 끼얹는 말을 삼가해 달라”고 주장한 사실이 9일 뒤늦게 알려졌다. 정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공개하면서 “적절치 못한 표현”이라고 항의했지만 중요 내용을 빼놓고 언론에 알리는 탓에 회담 전망에 혼선을 자초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8일 오후 판문점채널을 통해 우리 측이 보낸 전통문을 접수했다는 내용과 함께 이런 주장이 포함된 전통문을 남측에 보냈다. 북한은 ‘찬물을 끼얹는 말’의 구체적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북한이 정부의 최후통첩에 응한 것을 두고 우리 언론에서 ‘박스 달러를 포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해석한 것을 문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정부는 9일 판문점 연락채널을 통해 다시 통지문을 보내 “어제 우리 측이 접수한 북한 전통문의 일부 표현은 상호 존중의 자세에서 벗어난 것으로 적절치 못하다”고 지적하면서 “7차 회담에서 쌍방이 서로 존중하는 자세로 협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이 같은 요구는 당초 통일부가 공개했던 전통문 내용과는 온도 차가 크다. 통일부는 8일 저녁 북한이 판문점 연락채널 연장근무 요청 뒤 우리 측에 전달한 전통문 내용을 공개하면서 ‘남측의 통지문을 잘 받았고, 회담에서 좋은 결실을 기대한다’는 내용만 공개했다. 북한이 연락채널 가동 시간을 연장하면서까지 보낸 ‘친절한’ 이 메시지를 두고 일부에서는 남북이 7차 회담에서 ‘좋은 결실’을 거둘 수도 있다는 낙관론이 제기됐다.
하지만 정작 북한이 정부에 전통문을 보낸 의도는 ‘좋은 결실’과는 딴판인 ‘찬물을 끼얹는 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사실이 정부의 뒤늦은 공개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회담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게 했던 전통문 뒤엔 사실상 남북의 치열한 신경전이 깔려 있었던 셈이다. 정부가 결과적으로 공개 시점을 늦추는 바람에 회담 전망에 대해 잘못된 시그널을 준 것 아니냐는 비판적 지적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정부가 북측의 내용을 받은 다음에 이 부분만큼은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판문점 채널을 통해 우리 의견을 전달한 뒤 공개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며 “나름의 애로와 고충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북한이 이번에 또 다시 실무회담에 응한 이유는 대체로 세 가지다. 우선 첫째 이유는 실무회담을 회피할 경우 한반도 평화 정착에서 낙오자로 낙인찍히게 된다는 점을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결국 개성공단 실패의 책임에서 벗어나 보겠다는 것이다. 둘째 이유는 향후 9월 김정은의 중국 방문 등을 준비하고 있는 북한으로선 남북대화의 틀을 함부로 깨버릴 용기가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셋째로 현재 시장사회주의 길을 걷고자 하는 북한으로선 한 푼의 달러가 아쉬운데 굳이 개성공단을 박차 버릴 명분이 다른 그 어떤 명분 앞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개성공단은 북과 남 모두에게 소중한 것이다. 평화통일로 가는 길목에 세워진 시장경제의 저 거대한 실험실을 폐쇄할 명분은 북과 남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 [통일논단] 꿀(honey)묻은 돈과 독(venom)묻은 돈
- [통일논단] 정전과 ‘승전’이 교차하는 7.27 이후 한반도
- [통일논단] 북한의 ‘제2경제위원회’와 무기거래
- [통일논단] 북한 여자축구선수단을 환영한다
- [통일논단] 남북대화, 계속 웃을 수 있을까
- 남북, 7차 실무회담 대표단 명단 변동 없어
- [통일논단] 이산가족 상봉, 통일의 시작이자 완성
- [통일논단] 다시 시동 건 통일열차
- [통일논단] 평양의 빈익빈 부익부, 혁명전야인가 사회주의 종지부인가
- [통일논단] 65년 만에 다시 보는 평양의 태극기
- [통일논단] 북한 노동당의 당원증 교부가 갖는 정치적 의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