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북한이 지난 6월,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을 개정하면서 당원증을 새로 교부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그 정치적 의미가 주목받고 있다. 일본의 대북매체인 ‘아시아프레스’는 13일 함경북도 회령시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달 30일부터 전국적으로 조선노동당 당원증 교부를 위한 회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전했다. 소식통은 “기존 김일성 주석의 사진에 김정일 위원장의 사진이 추가된 당원증을 새로 발급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1975년 김정일이 당중앙을 장악하면서 당원증 교부사업을 통해 당 조직을 재정비하고 새로 발급되는 당원증에 김일성의 사진을 넣어 당원들에게 지급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지급되는 당원증에는 김일성 초상화와 함께 김정일의 초상화도 넣어 지급하였다는 것이다. 이번에 개정된 10대 원칙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새롭게 결부시키고 당원증에도 김 위원장의 사진을 넣어 지속적인 유훈 통치를 하려는 의도로 풀이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북한은 결혼여부를 표시한 새로운 공민증도 발급하기 위해 사진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고 소식통들이 전해오고 있다. 기존의 공민증은 사진이 흑백으로 인쇄돼 있어 본인 확인이 쉽지 않았고, 결혼 여부를 표기하는 곳이 없어 가족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2011년에도 공민증 교부를 위해 주민들의 사진을 촬영했었다. 그동안 다른 사람의 공민증을 이용해 지방 출장 또는 여행을 가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번에 공민증을 새로 발급하는 것은 북한 주민에 대한 인구조사와 통제강화를 위한 조치일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지난 6월 헌법이나 노동당 규약보다 상위 규범인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을 39년 만에 개정 발표했다. 개정한 원칙에서 ‘김일성’이라는 문구를 ‘김일성·김정일’로 바꾸고 ‘김일성의 혁명사상’을 ‘김일성·김정일주의’로 변경했다. 김경희가 전적으로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10대 원칙은 향후 취약한 김정은 체제를 보강하고 북한이 준비하고 있는 일련의 체제전환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사상적 동요를 막는 ‘통치의 칼’로 활용할 전망이다.
당원증 교부는 그냥 당원증 사진이나 바꾸고 거기에 김정일의 초상화나 추가해 집어주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북한의 노동당은 당원증 교부사업을 일종의 당 재정비사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당원증 교부사업은 무려 2∼3개월에 걸쳐 장기간 동안 진행된다. 당에 충실하지 못한 당원들은 이 기간 동안 ‘반죽음’이 된다. 그냥 당에서 내보는 것이 아니라 반죽음으로 만들어 당 밖으로 축출하거나 당에 그냥 머물게 한다. 한마디로 모든 당원들을 수령에게 충직한 혁명전사로 거듭나게 만드는 것이 노동당 당원증 교부사업이다.
북한에서 당원의 인기는 이미 시들해진 지 오래다. 심지어 일부 당원들은 당원증을 매매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과거 체제가 어느 정도 작동하던 시절 노동당 입당은 출세의 관문이었다. 신분상승의 출발점이요, 간부 자격증 획득이 바로 노동당 입당이었던 것이다. 북한의 청년들이 한결같이 군 입대를 선호한 것도 바로 그 당원이 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노동당의 인기는 바닥을 쳤다. 북한 노동당은 당원증을 바꾸는 헛수고 말고 당을 개혁하거나 해산하는 일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은 한시라도 빨리 지우는 것이 북한이 사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