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고난의 행군’으로 모든 것이 바닥난 1998년 이후 북한의 대남전략은 풍요로운 대한민국의 경제적 자산을 퍼오는 데 주된 목적을 두게 된다. 즉 다시 말해 당분간 폭력혁명에 의한 체제전복을 유보한 채 우선 허약해진 자신들의 빈곤체제를 보강하는 데 대남정책의 1차적 목표를 두게 된 것이다. 김정일은 당시 대남일군들과의 담화에서 “지금 우리 저수지는 말라있고 남쪽 저수지에는 물이 넘친다. 사방에 구명을 뚫어 남쪽의 넘치는 물이 우리 쪽으로 흐르도록 만들라”고 공개적인 지시를 내렸다.

이때부터 북한에서는 독(venom)묻은 돈을 날라가기 위한 정책이 행동에 옮겨졌고 그 첫 작품이 바로 금강산 관광사업이다. 그런데 실은 금강산관광으로 가져간 돈은 북한에겐 독은 묻어있지 않고 꿀(honey)만 묻어있는 유익한 돈이었다. 모든 것이 차단된 금강산 관광은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물 팔아먹던 그 방식 그대로이다. 그러나 개성공단으로부터 날라가는 돈은 아닌 게 아니라 독이 잔뜩 묻어 있는 돈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앞면에는 독이, 그리고 뒷면에는 꿀이 묻어있는 이중적인 돈이다.

왜 독인가? 우선 첫째로 개성공단에 출근하는 5만 3천여 명의 근로자들은 일단 잠은 사회주의체제에서 자고, 하루 일과 대부분을 자본주의 직장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북한 당국에서 볼 때는 ‘위험한 노동력’이 되어 버렸다. 북한에서 개성공단에 출근하는 사람들은 ‘신이 내린 직장인’으로 소문이 파다하다. 그들이 감춰가지고 간 우리 초코파이는 한류 열풍의 주된 소재가 되고 있다.

두 번째로 개성공단은 북한군 2군단의 최정예 6, 9사단을 빼고 군사시설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화훼단지를 만들어 버렸으니 강경파에게는 두려움이 없을 수 없다. 제아무리 북한 주민들의 인터넷은 열차라고 하지만 구전뉴스는 초음속처럼 빠르다보니 북한 내륙 깊숙이 개성공단의 소문은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북한의 강경파로선 개성공단은 백해무익하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우리 통일부 장관의 마지막 독촉에 북한이 아직 묵묵부답하고 있는데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분석할 수 있다. 첫째는 아직 북한의 디시전 메이커들이 합의를 보지 못했을 수 있고, 둘째로는 이참에 아예 독 묻은 돈을 깨끗하게 포기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문시 된다. 또 파격적인 역제의를 통해 다시 남북관계의 이니셔티브를 장악해 보겠다는 속셈일 수도 있다.

김정은 체제의 딜레마는 개혁과 개방의 길로 가자니 북한 체제가 너무 허약하다는 것이고, 한국과 계속 대화의 문을 열어놓자니 박근혜정부의 신뢰프로세스가 두렵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퍼주기’도 아니고 ‘안 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또 주기’는 더더욱 아니며 바로 ‘잘 주기’라고 할 수 있다. 통일부 장관이 마지막 통첩을 보내며 동시에 인도적 지원을 재개한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아내며 서로 신뢰의 길을 가자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남북관계는 정상관계로 접어들게 될 것이고 북한 체제로선 이와 같은 ‘정상관계’가 무척 두렵다는 것이다. 항시적인 교류협력의 시대, 북한 체제로선 아직 이에 대해 자신감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북한은 9월의 김정은 방중일정도 잡아야 하는 절박함 때문에 다시 한반도 정세를 긴장으로 몰고 가는 것도 쉽지 않다.

근년에 들어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의 저서 <컨실리언스(Consilience)>가 <통섭>으로 번역, 출판되면서 학계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에서 통섭의 논리가 대두되고 있다. 번역서에서는 통섭의 한자어를 ‘統攝’으로 정하고 ‘큰 줄기를 잡다’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분단 68년, 이제 남북관계도 뭔가 큰 줄기를 잡을 때가 지난 것은 아닌지 통치자들의 반성과 성찰이 절실한 때이다. 위의 통섭에서 섭은 ‘끌어당길 섭’ ‘쥘 섭’ ‘가질 섭’인즉 이제 남북의 지도자들은 서로 끌어당기고 쥐여주는 대통섭의 시대를 열기 위해 팔을 걷어부쳐 달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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