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묘한 시점에 강한 임팩트
국가정보원이 28일, 이석기 국회의원을 비롯한 통합진보당 간부들의 자택 등 10여 곳을 압수수색했다. 또 홍순석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등 3명을 체포했다. 이들에게는 파출소와 무기저장소 등의 국가시설 습격을 모의 준비하고, 총기 등을 준비해 인명살상 방안을 논의했다는 내용의 ‘내란음모’ 혐의가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말만 들어도 충격적이다. 그것도 국정원이 2년 6개월 내사를 벌인 끝에 이번에 전격 체포와 압수수색에 나선 것이다. 내란을 모의하고 구체적인 얘기까지 오간 녹취록까지 확보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통합진보당 주장처럼 ‘용공조작사건’으로만 접근할 일이 아니다. 크든 작든 ‘알맹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그 알맹이, 즉 사건의 팩트를 확인하는 일이 핵심이다.
이 점에서 서로 상반된 두 가지의 경우를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국정원이 판단한 대로 실제 이들이 비밀조직이나 비밀회동을 통해 구체적인 내란 계획까지 공유했으며, 관련 증거도 명확하다면 문제는 오히려 간단하다. 말 그대로 법대로 하면 된다. 형법과 국가보안법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물론 통합진보당도 그대로 온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관련 인사들은 정치권에서 퇴출당하는 일도 배제하지 못할 것이다.
문제는 두 번째의 경우이다. 국정원에서 ‘내란음모’까지 언급 했음에도 정작 그 알맹이가 빈약하거나 조작 또는 고의로 부풀린 사실이 드러난다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먼저 국정원을 향한 민심의 분노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헌정사에 결정적인 오점을 남길 정도의 치명타가 될 것은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여론의 분노가 국정원을 넘어 박근혜정부를 향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만약 국정원의 ‘용공조작’으로 결론이 모아진다면 그 책임을 대통령에게 물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박근혜정부 5년은 이 사건으로 인해 국민의 신뢰를 한꺼번에 잃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국정운영 자체가 위태롭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결론이 어느 쪽으로 나더라도 한 쪽은 치명상이 불가피하다. 그러므로 사건수사 초기부터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섣부른 언론 플레이나 사건의 본질을 물타기 하는 공세는 처음부터 걸러내야 한다. 명색이 ‘내란음모’에 관한 범죄이다. 당파나 이념적 색깔론으로 덧칠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확실한 정황과 구체적인 증거 그리고 치밀한 법리를 통해 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해야 할 것이다. 그 후에 합당한 법적,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이 수순이다. 워낙 엄청난 사건이기 때문에 자칫 정치권이 또 소모적인 정쟁을 하거나 여론마저 양쪽으로 갈라져서 서로를 무차별적으로 비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일종의 승부수를 던진 국정원부터 냉철하고 엄정해야 할 것이다.
